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풍뎅이 Nov 03. 2020

가을 느끼기

집에서 나설 때마다 집 앞과 큰 도로 곳곳에 있는 나무들 색에 반하게 된다. 모양새가 예쁘고 향기도 나는 꽃이 제일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가을엔 낙엽들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미세먼지 없는 푸른 하늘은 덤이고. 비록 마스크를 벗진 못하지만 이렇게 계절을 느끼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어디 멀리 가지 않고 동네 아니면 그 옆동네를 걸으며 주변만 쓱 둘러봐도 마음이 충분히 꽉 찬다. 2월 중순부터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어서 그런지 밖에 나와 별일 없이 걷기만 해도 '이런 게 행복이지' 한다.


6월 말에 이사 온 이곳이 아직은 낯설다. 예전 살던 곳만큼 편하지 않고 단골이 될 만한 카페도 찾지 못했다. 하긴 밖보다 집에 더 오래 있었으니 서서히 친해지기로 하고 우선은 이곳에서 맞는 첫 번째 가을을 한껏 느껴보고 있다.(한데 오늘 아침 날씨는 겨울...)

단풍놀이도 할 겸 지난주에는 휴가 낸 남편과 근처 산에 올랐다. 등산. 혼자 가기엔 엄두가 나질 않아 남편에게 의지하며 겨우겨우 정상까지 올랐다. 이른 시간임에도 산에 오르는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그분들은 동네 뒷산에 놀러 온 것처럼 가뿐해 보였고 난 연신 숨을 헐떡이며 기어가다시피 올랐다. 힘들다 못 가겠다 엄살을 부려가며 마침내 오른 정상에선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은 후련함을 느껴졌다. 위에서 내려다본 산들은 온통 가을빛이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유난히 힘들었던 올해의 시간들을 산은 늘 그래 왔듯 아무 말 없이 덤덤히 보내왔나 보다. 내려오는 길에는 쉼 없이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었다. 무릎이 아파 그날 밤 파스를 붙이긴 했지만 가을을 가까이서 느끼고 온 기분에 며칠 동안이나 참 좋았다.


가을은 외롭고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잎도 금방 져버리고 날씨는 추워질 테고 뭔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기 전의 기분이라고.

이제는 가을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싶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고운 낙엽들과 겨울이 오기 전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며 단단해져 가는 모습들.

지난번 등산할 때 봤던 나무들, 이름 모를 풀들과 새소리, 그 산을 몇 번이나 올랐을지 능숙해 보이던 어른들 그 모든 것들은 서로 비슷하게 닮아있었다.


어제 아이와 한 움큼 주워온 낙엽들로 도화지를 꾸며봐야겠다. 밖에서 낙엽만 보면 주머니에 넣기 바쁜 딸이 고심해서 고른 낙엽이니 더 어여쁘게 꾸며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말 지낸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