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날, 산책로에 피어있던 코스모스

아이가 수능을 보는날 우리는 비로서 어른이 된다.

by sallala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9월초 수시 원서를 접수하고나서부터 결과가 발표되는 12월 중순까지 그야말로 지옥의 시간을 보내왔다.

특히나 수능날서부터 한달여동안 말그대로 피가 마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브런치의 기록은 수능전에 딱 멈추어 있다.


수능날서부터 내 마음은 글을 써내기 어려운 상태였다.


수능전날 아이는 수험표를 받아들고 일찍 귀가했다.

아이와 나는 점심을 먹고 예비소집일에 참여하기 위해 고사장으로 향했다.

학교옆에 바로 도서관이 있어서, 내일 도서관을 거점으로 아이를 기다리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찍 잠자리에 든 아이는 새벽 2시쯤 배가 아파 잠깐 일어났다.

긴장하고 있구나....나는 다시 침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거실 소파에서 거의 뜬눈을 지새우다시피했다.

아이의 가방안에 소화제, 정장제, 타이레놀 등 온갖 종류의 약들을 챙겨 넣었다.

도시락은 준비하지 않았다. 긴장하면 아이는 어차피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두유, 단팥빵이 전부.


당일날 아침.

고사장 앞은 생각보다 혼잡하지 않았다.

신설학교인지라 교통 입지가 좋았다. 아이를 내려주고 잠깐 정차도 할수 있었다.

엄마들이 운동장 바같쪽으로 둘러쳐진 철망에 다닥다닥 붙어 자녀들이 고사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긴장과 불안감이 뒤엉켜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이의 영어 시험이 시작되었을 즈음 일찍감치 집을 나섰다.

날씨가 따뜻했다. 하늘은 청명했다. 올해 그 유명한 수능한파는 없었다.

고사장 학교 뒤편으로 야트막한 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 천을 중심으로 산책로가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었다. 야트막한 천도, 나무도, 일부러 심어놓은 코스모스도 아직도 따스한 가을볕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걸으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이가 수능에서 대박나게 해달라는 기도 따윈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어떻든, 힘들겠지만, 받아들이자.


4시 30여분. 교문앞에는 이미 많은 학부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학부모였을까? 꽃다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드디어, 아이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자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여학생들이 한차례 빠져나가고, 남학생들도 거의 다 나왔을무렵

아들이 터벅터벅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교문 안으로 성큼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고 나왔다.

고생했다.


거의 10년만에 무뚜뚝한 아들의 손을 잡아 봤다.

아들은 내게 손을 잡혔다는 인지도 하지 못하고 따라나왔다.

자동차의 문을 열때쯤 아이는

'엄마 나 수능 최저 필요없는 원서 몇개지?' 라고 물었다.


가슴이 철령 내려앉았다.

'어려웠어?'

'응'

신도시 학교에서 우리집까지 어떻게 운전을 하고 돌아왔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아이는 바로 채점을 했다.

예상 등급컷은 8시나 되어야 나올테지만, 그렇게 어려웠다는 영어에서 2등급이 나오면서

어쨌든 5지망과 6지망 대학의 수능 최저는 맞춘듯 했다.

가장 취약 과목이었던 국어 점수도 아주 나쁘지 않았다.

아이는 기분이 조금 좋아졌는지,

'엄마 나 라면 먹고 싶어'


8시쯤 EBS를 비롯한 각 사설업체에서 예상되는 등급컷을 발표했다.

수학이 컷에 걸려있다. 불안한 마음으로 계속 새로고침을 하면서 등급컷을 확인하던 나는(8시 발표이후에도 다음날 11시까지 업체에서 발표되는 컷들이 변동될수 있기애)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00업체는 1등급이 85~100점이면, 2등급이 80~85점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85가 1등급에도 들어가고 2등급에도 들어가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고 또 뒤졌다.


아.......국어와 수학은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이 있다. 예를 들어 수학은 공통과목이 74점, 미적분이나 확률학통계는 26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맞나? 수능 성적 발표난지 한달이 지나자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학이나 국어의 등급은 표준점수(원점수가 아니다)로 결정되는데, 공통과목의 표준점수에

과목의 난이도라는 보정값이 들어간 선택과목의 표준점수를 합한다음 다시 등수를 내는 것이다. (맞나?)

계산식은 복잡해서 이해할수가 없다.


다만, 확실한건 같은 85점이라도 공통과목을 더 맞은 85점이냐, 선택과목(미적분, 확률과통계)을 더 맞은 85점이냐에 따라 등급이 갈릴수 있다는 것이다. (공통과목을 더 많이 맞는게 유리하다)


물론 내 점수가 등급컷에서 월등히 높다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어떤 학생은 원점수 85점을 받고 1등급을 받지만, 어떤 학생은 원점수 86점을 받고도 2등급이 될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22년차 고등학교 교사였지만 수능날 저녁에서야 이 차이를 알았다.


피말리는 게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인터넷에서 공표되는 등급컷에서는 아이의 수학 등급은 확실해보였지만

그건 만만의 콩떡같은 이야기였다. 간혹 입시 카페에서 실제 수능 성적표에서 받은 등급이 예상보다 내려갔다는 이야기들을 심심치않게 목격할 수 있는데, 다 이런 케이스들인것이다.


아이의 표준점수는 알수없다. 왜 평균과 표준편자를 모르니까. 채점이 다 끝날때까지 아무도 알수 없는 것이다. 아이는 수학의 등급컷에서 살아남을수 있을까?


수학의 등급컷이 무너지면 아이의 1지망~4지망까지의 대학은 다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성적표가 나오기까지 앞으로 3주.

아.....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는건 그저 맥주를 들이키는 것일뿐.


일찌감치 체중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놓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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