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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아 Jun 10. 2022

12년 전 나에게 사주를 봤던 사람과 마주쳤을 때

12년 전 나에게 사주를 봤던 사람과 마주쳤을 때

사람의 인연과 만남은 참 오묘하다. 사주를 보는 사람에게는 사주를 봐줬던 사람의 마지막 결론이 궁금하다. 

자신의 공부에 확신이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내 공부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나 궁금하기 때문이다. 

정말 신의 조화일까! 

꼭 증명법사처럼 사주를 봤던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잘 된 사람은 잘 된 사람으로 만나게 되고 잘 되지 않은 사람은 잘 되지 않은 사람으로 만나게 되고 그에게 풀어 준 인생이 내 눈앞에 보일 때 나도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초 여름의 햇살이 그리 싫지 않게 내리쬐던 상큼한 날이었다. 한 동안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장날이라 외출을 하니 나도 따라 엉덩이가 들썩 거렸다. 이참에 바람도 쐴 겸 라면이나 한 봉지 살까 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산을 내려갔다. 

비록 작은 스쿠터지만 124cc짜리라 꽤 탈만하다. 차들의 통행이 별로 없는 왕복 이차선의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오토바이로 타고 내려갔다. 

비가 오지 않은 건조한 날씨였지만 맑은 하늘에 뭉게뭉게 떠 다니는 구름을 보면서 신록이 우거진 가로수 길 나무 가지 사이로 가늘게 비치는 햇살을 받으며 세상 근심 잊고 마음에는 그 어떤 속박도 없는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작은 시골 장날이니 구경할 것도 크게 없다. 시장 한 바퀴 도는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특별한 먹을거리가 있지도 않고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닌 정말 작은 시장을 구경하고 라면과 심심할 때 먹을 과자를 한 봉지 샀다. 

모처럼 나왔으니 어디 갈 때가 없나 생각하다가 차로 10분 정도 가면 되는 작은 공원으로 갔다. 

벤치에 앉아 커피나 한 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다. 

장날이라 사람들이 공원에 드문드문 있었다. 산책을 하는 사람, 운동을 하는 사람, 지인들과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편의점에서 산 커피를 들고 자리에 앉아 높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망중한을 즐겼다. 

군청에서 용역 받은 사람들이 공원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 전이라 얼른 일을 끝내려는 듯 서둘러 일하는 하고 있었다. 

맑고 푸른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 멍하니 앉았는데 눈에 익은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초 여름답지 않게 낮시간은 꽤 덥다. 코로나 중이라지만 일하는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일을 하고 있었다. 나야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가끔 커피를 마실 때만 잠깐 내리고는 계속 쓰고 있었다. 

낯익은 얼굴!

몸은 야위고 얼굴은 핼쑥했다. 등은 굽었고 머리는 하얗게 세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새겨있는 깊은 상처는 그때 그대로였다. 놀랐다. 그 상처 때문에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것을 빼고 나면 내가 그를 봤을 때 모습과 지금과는 하늘땅만큼 차이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쪼그리고 앉아 묵묵히 잔디에 잡초를 제거하는 모습을 잠시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마스크도 썼고,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처럼 내 모습이 변하기도 했으니 그는 당연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앉은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다시 풀을 매고 있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다 저 멀리에 보이는 천왕봉을 바라보며 시간을 거꾸로 돌렸다.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정착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쯤 알고 지내던 분의 소개로 만났다. 

사주를 볼 줄 안다는 지인의 말에 재미 삼아 그도 자신의 사주를 보고 싶어 해서 만났다. 

넓은 마당에 황토 집을 잘 지었다. 집에는 덩치 크고 머리를 짧게 깎은 사람들이 출입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나이가 있었지만 대충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려지는 모습이었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았던 재물이 있는 사람이니 당연히 사람이 모이기도 하고 시쳇말로 건물주이다 보니 세를 얻고 세를 빼고 하는 건물 임대업 때문에 자연히 사람들 왕래가 많았다. 

주변 사람들의 모습에 약간 주눅이 들기는 했지만 그러려니 하며 그 집의 거실로 안내되었다. 

겉모습과는 달리 집안은 거의 꾸밈이 없었다. 집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시커먼 기역자 가죽소파와 부엌의 식탁이 덩그렇게 있는 게 전부였다. 

생긴 모습이 건물 몇 채가지고 있는 사람의 냄새가 아니라 시골 촌부의 모습을 하고 있어 조금은 의외였지만 시골 생활의 모습이 다 그런 것  아니겠냐고 생각했다. 

그는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나보다 나이도 한 열대 여섯 살 많기도 하지만 다짜고짜 반말을 하면서 아주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오해하겠지만 그런 것에 크게 구애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친근하게 대해 주니 분위기도 훨씬 편해졌다. 

차를 마시고 이런저런 잡담을 하다가 사주를 보았다. 

한참 보고 나서 자신의 사주가 맞냐고 다시 되물었다. 그분은 왜 자기 사주가 아닌 것 같냐고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되 물었다. 

사실 가끔 사주를 보면 죽은 사람 사주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사주를 자기 사주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이 종종 있기도 했다. 

그는 자기 사주가 맞다고 말했다. 

재물이 많다고 하는 사람이지만 사주에 재물이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가진 재산 전부가 날아가게 되어 있었다. 

눈을 반짝거리며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나도 마른입 안에 침을 한 번 삼키고 말을 딱 한마디만 해 주었다. 

"아무것도 없는 사주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있는 것 잘 지키고 사시는 게 최고의 방편입니다"

잠자코 듣고 있기만 하던 그 사람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다. 그가 내 말을 이해를 했는지 어쩐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었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두 세 사람을 향해 그는 자리를 좀 비켜달라는 듯한 눈치에 얼른 자리를 뜨는 사람들을 보고 역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약간 겁이 나긴 했지만 뭐 그리 주눅 들지도 않았다. 

나와 단 둘이 앉은 그는 재산을 지킬 수 있겠냐고 다짐하듯 물었다. 

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안된다고 그나마 말년에 일하지 않고 밥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것, 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말을 해 주었다. 

사람은 어느 정도 본능적인 느낌으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에게는 막연한 불안감 같은 것이 늘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이 집으로 오는 게 귀찮다고 했다. 

가까이하지 말고 혼자 조용히 지내면 어떠냐고 물으니 또 너무 외롭고 고독해서 그러기도 싫다고 말을 하는데, 나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욕심이 많으시군요'라고 말했다. 펄쩍 뛰면서 자기는 욕심이 없다 말한다. 완곡하게 부정을 했다. 

사람들이 점심을 먹는다고 집을 떠나고 나와 그 사람만 남았다. 

라면을 같이 끓여 먹자는 제의에 좋다고 했다. 당연히 남자 혼자 사는 집에 먹을 것은 없고 기껏 먹을 수 있는 게 라면뿐일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내 돈을 보고 와!"

푸념 섞인 말투는 그의 곁에 진정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어쩌겠어요! 세상이 다 그런 것을요. 그러니 사람 다 물리시고 사업을 접으시고 지금 사는 전원주택에서 조용히 지내시면 말년 사주가 무탈할 것입니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맛있는 라면을 함께 먹고 그의 집을 나왔다. 

한 동안 그는 심심하면 내가 사는 곳으로 놀로 오곤 했다. 나도 그 집에 가끔 가기도 했다. 

어떤 날에는 맥주 한 잔, 막걸리 한 잔  하기도 하고 또 처음 사주 봐주었을 때처럼 라면도 끓여 먹고 나이 차이가 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한 동안 뜸했던 그에게 한 번 만날 수 없냐는 연락을 받았다. 

목소리는 힘이 없고 떨렸다. 

그의 집에는 인적이 끊어지고 조용했다. 

내가 말한 대로 사는 가 보다 했더니, 결국 사주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그의 돈을 거덜 낸 장본인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자신도 아닌 그의 아들이었다. 

가지고 있는 부동산과 현금은 모두 다 날아가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열매가 수확하기도 전에 태풍에 떨어져 나가듯 그의 재산은 사라지고 몇 달 사이에 빚까지 안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자신의 말년 보금자리마저 날아가 길에 나 앉게 생겼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이미 배는 떠났다. 

방법이 없겠냐는 말에 그의 손을 꼭 잡아 주고 힘을 내라는 말을 남기고 멍한 눈빛으로 바로 보는 그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늘 그를 만났다. 아니 보았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도 산 목숨은 살아야 한다. 허리 굽고 말라버린 몸을 쪼그리고 앉아 공원의 잡초를 뽑고 있다. 

그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아마 모든 걸 다 날렸을 것이다. 그는 설마 자식은 괜찮겠지 했지만 결국 일을 벌이지 말라는 나의 충고를 잊었던 것이다. 

운명은 자기가 개척하고 이겨 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정해진 자신의 운명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사람의 삶은 자신의 힘으로만 이룰 수는 없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몽테뉴의 수상록 중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시인 루크레티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권세의 지팡이와 도끼로 인간의 일을 때려 부수고, 인간의 탁월함을 드러내 주는 모든 것을 짓밟고 우롱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을 운명이라고 하기도 하고 타고난 사주팔자라고 하자!

그 힘을 이기려 하는 인간의 교만과 자만이 욕심을 만들고 그 욕심 때문에 결국은 자신을 망친다. 

자신의 그릇, 자신의 크기를 알고 살았다면 그가 무너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찌 자신의 크기를 알고 그 크기를 인정하는 일이 쉽겠는가!

그만큼 자신을 안다는 것이 힘들다.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풀밭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 왼손에 담배 한 대 물고 깊게 들이마시고 있다. 

흐르는 땀을 닦고 앉은 그의 얼굴은 오히려 예전보다는 훨씬 편안하고 만족하게 보인다. 

자기의 사주를 받아들이고 남은 생을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자신의 삶의 십자가를 가볍게 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가 피우는 담배연기가 하늘로 뭉게 뭉개게 피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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