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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부터 '가슴뛰는 일'을 찾았을까?

'가슴 뛰는 일' 이라는 환상의 기원을 찾아서

by 다정한 진로

우리는 언제부터 '가슴뛰는 일'을 찾아 헤맸을까? 오늘은 직업의 역사를 통해 '가슴 뛰는 일' 이라는 환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직업'이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니다

처음부터 인류에게 '직업'이라는 게 있었던 건 아니다. 인류가 처음 지구 위에 등장했을 때, 그땐 먹고 살기 위한 행동만 있었지, 그걸 '일'이나 '직업'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다. 그냥 사냥하고, 열매를 따고, 먹을 걸 찾아다니는 게 전부였다. 그 당시에 '가슴이 뛴다'는 표현이 있었을까? 당연히 없었다. 가슴 뛰기는커녕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남을지가 훨씬 중요한 고민이었으니까.


'노동'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긴 건 농경사회

인류가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다가 약 1만 년 전에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직업(job)' 이라는 개념보다는 '노동'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농사를 지으려면 정해진 시간과 규칙이 필요했고, 일정하게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 돌아왔다. 하지만 그땐 그저 먹고 살기 위한 활동일 뿐이었고, 사람들은 일하면서 가슴이 뛴다거나 즐겁다거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시대만 해도 노동은 오히려 천한 일이었다. 귀족들은 일을 하지 않았고, 노동은 주로 노예들이 맡았다. 즉, 노동이란 그때만 해도 '피해야 할 일', '낮은 계층이 하는 일' 정도로 인식됐다.


중세부터 등장한 '직업'이라는 개념

중세 유럽에서 길드라는 장인 조직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직업'이라는 걸 가지게 되었다. 장인이 되면 특정 기술을 배우고, 마을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사회에서 지위를 얻을 수 있었다. '직업'이 무조건 부정적인 개념이었다면은 사회에서 지위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도 등극한 것이다. 그래도 이 때의 직업은 '가슴이 뛰어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생계를 꾸리기 위해' 가지는 것이었다.

중세시대 계급별 직업 설명 : https://www.naewaynews.com/sub_read_amp.html?uid=315297

또한 사회적 신분에 따라 직업과 그로 인한 수입도 결정되다 보니 직업이라는 개념이 개인이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농부의 아들은 농부가 되고, 장인의 아들은 장인이 되는 식이었다. 농부나 수공업, 또는 특정 계층에 한정된 직업(군인, 기사 등)같은 소수의 제한적인 직업군밖에는 없었으며 직업을 통해 개인적 만족감을 얻는다는 생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산업혁명, '직업'의 의미가 바뀌는 전환기

18세기 산업혁명은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사람들이 도시에 모이기 시작했고, 다양한 직업군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관련 경제기사 : https://vop.co.kr/A00001608284.html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대규모 공장에서 근무하는 제조업 노동자층이 등장했다. 방직공장 노동자, 제철공장 노동자, 섬유공장 기계 조작원, 석탄 광부 등 제조업 중심의 새로운 직업들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공장과 설비가 등장하면서 이를 설계하고 유지보수하는 전문 엔지니어와 기계 기술자들도 생겨났다.

또한 철도망이 급격하게 확장되면서 철도 엔지니어, 기관차 운전사 등 철도 관련 기술직도 새로 생겨났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제임스 와트'와 같은 엔지니어들의 등장으로 공학자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기도 했다. 철도와 증기선이 발달하면서 기관사, 역무원, 선원, 화물 운송업자 등 물류 및 교통 관련 직업들도 크게 늘어났다. 19세기 말을 기준으로 영국 철도 부문에서만 약 62만명이 근무했다고 하니,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많은 직업이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은행업과 금융서비스의 성장으로 회계사, 은행원, 보험업 종사자와 같은 금융 전문 직종들이 생겨났고, 현재에도 존재하는 사무전문직도 이 때 생기게 되었다.

한마디로 산업혁명이라는 100년의 시간동안 제조업과 서비스, 관리 직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체 산업 구조가 완전히 재편된 것이다.


'가슴 뛰는 일'을 꿈꾸는 시대가 오다

산업혁명은 현대 직업 개념의 뿌리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전까지는 생계유지가 목적이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다양한 직업 선택이 가능해지고, 개개인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할지 선택할 여지가 처음으로 생겨난 것이다. '직업을 선택한다'는 개념 자체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는 학교라는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에게 일정한 교육을 제공하게 되었고, 이런 제도적 배경 아래 개인은 처음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할지'를 고민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이 거의 같았는데,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민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특히 20세기 초반부터 현대적인 교육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학교는 학생들에게 흥미와 적성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과거엔 "넌 이걸 배워야 해"라는 식의 강압적인 교육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넌 어떤 걸 좋아하니?", "넌 어떤 일을 하고 싶니?"라는 질문이 교육의 주요 화두가 되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진로 탐색이나 적성 검사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학교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생들은 이 과정을 통해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 잘하는 분야를 찾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가슴 뛰는 일을 해야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때 부터 사회적으로 '진로탐색'이라는 게 개인의 필수적인 과정으로 자리 잡았고, 학교나 기관들은 개인의 흥미와 재능을 발견하고 키우는 걸 교육의 중요한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교육이 만들어낸 '가슴 뛰는 일'이라는 환상

교육학과 심리학이 발전하면서 많은 학자들이 인간이 가진 흥미와 적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950년대 미국의 심리학자 존 홀랜드(John L. Holland)는 사람들이 가진 흥미와 성격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눠서 그에 맞는 직업을 추천하는 '홀랜드 코드(Holland Codes)'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흥미와 성격에 맞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 가장 행복하고 오랫동안 일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 이론을 기반을 만들어진 '대표적인 직업 심리검사'가 바로'홀랜드 검사' 이며, 현재도 중, 고등학교에서 시행중이다. 아마 학창시절에 의무적으로 해당 검사를 시행하고 결과지를 받은 분들이 꽤 많을 것이다.(나도 그랬다) 이 이론은 금세 전 세계 교육 현장에 널리 알려졌고, 적성 검사, 직업 탐색 프로그램 등에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중반,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가 제시한 '욕구 이론'이 사람들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부터 시작해 안전 욕구, 소속 욕구, 존경 욕구,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아실현 욕구까지 단계적으로 제시했다. 매슬로우의 이론 덕분에 사람들은 일을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드디어 '자아실현의 도구'로 생각하게 되었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개인의 꿈과 열정을 이루는 것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매슬로우의 욕구이론, 직업이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확장


미디어와 성공인들이 부추긴 '가슴 뛰는 일'

이러한 교육환경과 맞물려 미디어와 출판물에서도 "너 자신을 믿고 꿈을 좇아라" 같은 메시지가 끊임없이 강조되었다. 특히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자기계발 서적들이 대거 출간되면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열정을 따라가라", "꿈을 좇아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TV나 영화에서도 꿈을 이루는 성공 스토리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그러면서 "가슴 뛰는 일을 찾는 것이 삶의 성공과 행복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덕분에 사람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이제는 생계유지뿐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도 논외는 아니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경제 성장과 함께 개인의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미디어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가 증가했다.

한비야 작가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시리즈는 19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 "가슴 뛰는 일을 해라"는 메시지를 담은 대표적인 책 중 하나였다. 1996년에 출간된 이 책은 한비야 작가가 세계 오지를 여행하며 겪은 경험과 그로 인한 자아실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이 책을 내게 주시며 "꿈을 크게 가지라" 고 이야기 해 주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다녔던 교회에서도 "비전을 가지라" 는 것이 가장 핵심 설교 주제였던 것이 생생하다. 그래서 나도 어렸을 때 부터 "사람이 꿈은 크게 가져야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지" "비전을 실현하는 직업을 갖고싶어" 라는 생각을 자주 해왔던 것 같다. 물론 그 생각의 방향성 자체는 지금도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 주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 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그렇다면 실제로 자아실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직업 선택의 자유가 넓어지면서 사람들은 더 행복해졌을까? 이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사회심리학자인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 이라는 저서에서, 일반적으로 선택지가 많아질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도는 감소한다고 밝혔다. 과거엔 대부분의 사람이 부모나 지역의 영향으로 정해진 직업을 받아들였지만, 현대 사회에선 자신의 선택으로 결정해야 하는 직업 선택지가 수천 가지 이상으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더 많은 불안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건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처럼 보이지만, 선택의 과부하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
베리 슈워츠 TED 강연 URL: https://www.ted.com/talks/barry_schwartz_the_paradox_of_choice?subtitle=ko

(아주 예전 강연이지만 지금도 적용되는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전체 영상 시청 권장)


배리 슈워츠는 또한 이러한 명언도 남겼다.

인간은 별 기대감 없을 때 행복해 한다



다시 생각해 보자

이쯤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한다. 혹시 "가슴 뛰는 일" 이라는 이상적인 목표 자체가 하나의 함정은 아닐까? 직업에 대한 우리의 '너무 큰 기대감'이 만족감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사회는 계속해서 개인에게 꿈을 좇으라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의 일이 항상 즐겁고 의미로 가득할 수는 없으니까.


결국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다. 더 행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꼭 일이 행복과 직결되어야만 할까라고 묻는다면 정답은 역시 '아니오' 이다. 농경사회, 중세시대, 산업혁명 시대의 사람들은 일을 선택하지 못하는 시대 속에서 살았는데 그들이 우리보다 더 불행하게 살았을까? 라고 묻는 다면 '비교할 수 없다' 이지 않겠나. '직업'이 원래 그렇다. 자아실현으로 바뀐지 얼마 안된 존재라는 것이다. 본래 생계를 위해 탄생한 것이 '직업'이라는 것! 그 말인 즉슨 인류는 DNA적으로 일을 통해 가슴 뛰는 경험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게 설계된 존재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대치를 낮추고 아무 직업이나 가지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최소 하루에 8시간을 몸담고 있어야 하는 '직장'과 '직업'을 어떻게 아무렇게나 선택하겠는가. 나는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싶은 게 아니다. 그저 '직업'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일이 꼭 내 인생의 전부일 필요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우리가 진로를 선택할 때 시작해야될 가장 첫 마음가짐은 '가슴뛰는 일'을 못찾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짜 현실적인 행복을 위해 진로를 설계할 수 있으며, 마주하는 다양한 커리어 문제에 대해서도 유연한 태도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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