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 있는 사람이 부럽다고? 사실은…
상담을 하다 보면
“저는 아직 소명을 못 찾았어요.”
"나는 정말 이 일이 내 소명인지 모르겠어요."
"소명 있는 사람들 보면 너무 부럽더라고요. 저는 그냥 월급 때문에 일하는 느낌이에요."
이런 말을 현장에서 자주 듣는다.
일을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나의 존재 의미와 가치 실현의 도구’로 보는 시선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 번쯤은 이렇게 물어본다. “소명을 받았다는 건, 대체 어떤 상태나 감정을 말하는 걸까요?” 라고 말이다.
그럴 때 마다 답변 길이나 내용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말하는 포인트는 비슷했다.'나는 이 일을 할 때 설레어. 나는 천상 이 일이 가장 적성에 잘 맞아. 이 일이 나의 비전이야' 하는 자신감 또는 가슴 깊이 울어 나오는 벅차오름이라고 말이다.
‘소명’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기대감이 갖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거 같고, 내가 이 일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사명감" 도 주니까 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말을 꺼낼 때는 보통,
일이 너무 힘들어서 버틸 이유가 필요하거나
남들은 자기 일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거나
이 길이 맞는지 모르겠을 때 확신을 찾고 싶을 때 등
치열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다가 힘이 들고 지칠 때가 많다. 목마른 사람에게 사막의 물은 어떠해 보이는가? 세상 모든 영양소와 좋은 것들이 가득찬 지구 최고의 물로 보여지지 않을까? 하지만 실제로 오아시스는 깨끗해 보이는 겉과 달리 속에는 기생충, 미생물, 유해생물들이 많아 함부로 마시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물이다. 이처럼 '진로 소명'도 몇 가지 오해와 환상이 섞여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진로 소명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진로 소명이란 자신의 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사회에 이로울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게 하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게 해줌으로써 일을 자발적으로 수행하게끔 동기화시켜주는(Dik & Duffy, 2009) 것으로 정의된다.
진로 소명의 정의를 살펴보면 '삶의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로 소명을 ‘처음부터 알 수 있는 운명 같은 것’ 또는 '사람마다 정해져 있는 것' 이라고 써져있지는 않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담 현장에서 만난 많은 내담자들이 '정해져 있는 나의 직업, 운명같이 딱 맞는 나의 직업'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오늘은 '진로소명'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보고자 한다.
소명은 처음부터 ‘뚜렷하게 느껴지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일을 해보면서, 경험이 늘어나면서, 그냥 열심히 살다보니 점점 만들어지는 것이 많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상담 학생 사례가 있어 공유해 본다.
[ 내가 만났던 상담 사례에서 본 ‘진짜 소명’의 모습 ]
한 번은 대학교 1학년 때 부터 스튜어디스를 꿈꾸며 준비해 왔던 여학생이 있었다. 코로나로 항공업계가 얼어붙었을 때, “이제 어떡하면 좋죠?” 라고 상담하면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상담을 반복하면서 스튜디어스가 되고자 했던 이유를 나열해 보았다. 결과는 ‘여행을 좋아하고, 사람과의 교류를 좋아했기 때문’ 이었다. 그래서 결국 B2B 여행 상담사로 직무방향성을 바꾸어 입사지원을 했고, 합격했다. 처음엔 ‘차선책’처럼 보였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고 보니, 자신의 성향과 가치관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고, 일하고 1년 정도 후에 우연히 연락이 닿았었는데 이런 말을 했었다. “이 일이 생각보다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고객과 소통하면서 제가 에너지를 얻고 있더라고요.”라고 말이다. 이 학생의 모습에서 ‘경험을 통해 소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열정은 감정이다. 감정은 하루에도 들쑥날쑥하다. 천생연분 배우자를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부러워하는 잉꼬부부도 매일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소명 있는 사람도 지칠 수 있고, 때론 “내가 맞는 길 가고 있나?”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특별히 NGO와 복지재단 처럼 직업 자체가 사회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일일 경우, 대다수가 처음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그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실적 압박과 진행 과정에서의 불합리함, 냉담한 현실에 부딪히며 "이게 내 소명 맞나?"라며 고민 상담을 신청하곤 했다. 그런 내담자들을 만날 때 마다 내가 함께했던 작업은 바로 '소명과 직업 분리하기' 작업이었다. 실제 힘들어서 상담을 신청했었던 사례를 공유해본다.
[ ‘소명’ 과 '직업'이 분리되지 않아 힘들어했던 내담자 ]
그 친구는 말했다. "저는 요양보호사라는 직무를 ‘소명’이라 생각하고 지원했는데, 현실은 너무 힘들고 박봉이라 너무 힘들어요. " 그 친구는 6개월의 경험 끝에, '소명' 보다는 ‘지속가능한 일’을 먼저 찾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고 헬스케어 서비스 기획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결국은 직업이기에 '소명'도 현실성과 맞닿아 있을 때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의사’, ‘교사’, ‘구호활동가’처럼 사회적 의미가 커 보이는 직업만 소명처럼 느껴질 거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서비스 직군에서, 어떤 사람은 매우 반복되는 피상적인 작업 속에서도 분명한 소명의식을 느낀다. 나는 취업 컨설턴트로서 취업준비생들을 컨설팅 해주다가 2023년 부터 취업특강 및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할도 맡고있다. 처음에는 직접적으로 취업준비생들을 만나거나 컨설팅하지 않으니까 내 일이 마치 의미없는 것 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주관한 취업특강을 듣고 취업한 학생이 취업성공후기에서 취업특강이 자신이 면접을 준비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는 후기를 읽은 순간, 업무가 보람되고 재미있어졌다. 특강 교안을 만드는 것, 좋은 강사를 섭외하는 것, 취업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 안정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들이 지루하지 않았다. 이러한 작은 것들이 쌓여 취업준비생들의 취업역량강화에 도움이 된다라는 것을 발견하고 믿게 되자 일이 재미있어졌다. ‘일 자체’보다도, 그 일을 어떻게 해석하고, 내 가치와 연결 짓는지에 따라 직업만족도가 달라진다는 걸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진짜 소명은, 지금 하고 있는 일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항상 ‘운명 같은 일’을 기다리지만,
사실 소명은 아주 작고 구체적인 일 속에서 시작된다.
누군가를 도운 경험,
문제를 해결했던 순간,
고객의 피드백 한 마디,
동료에게 “너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바로 ‘소명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일이 나와 안 맞는다고 좌절하거나 소명을 못 찾았다고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명은 발견하는 게 아니라, 해석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 또는 작게 시도해보는 일이 언젠가 나만의 소명을 만들어갈 씨앗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