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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까?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이 상당히 의미없는 고민인 이유

by 다정한 진로

지난 시간까지 우리가 언제부터 '가슴 뛰는 일'을 찾기 시작했는지, 직업의 탄생과 변화를 역사적 흐름과 함께 알아보았다. 그래서 '가슴 뛰는 일' 이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 '직업'에 대해 너무 큰 기대감을 갖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말로 마무리 하였다.


그럼 여기서 추가 질문이 생긴다. '가슴뛰는 일'이 행복을 줄 수 없다면 어떤 조건이 '직업적 행복감'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그래서 이번 시간 부터는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다양한 기준'을 직접적으로 분석해 보면서, 실제 그 기준이 행복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탐구해 보려고 한다. 첫번째로 탐구해볼 질문은 바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행복할까?' 이다.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평생 여름 VS 평생 겨울? ' 처럼 어느 것 하나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반드시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게임을 밸런스게임이라고들 부른다. 직업에 있어 밸런스 게임이 있다면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만큼 전통적인 항목이 또 있을까 싶다. 당장 좋아하는 일이라는 글자로 검색만 해봐도 해당 주제로 쓰여져 있는 칼럼과 블로그 글이 수두룩 하게 많다는 것은 그만큼 가장 대표적인 진로 갈등 문제라는 소리일 것이다.


대부분의 글들에서는 여러가지 통계와 논문연구 등을 근거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을 때 행복감이 더 높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오늘 그러한 연구결과 기반의 선택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취업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진로 선택에 있어 자신만의 기준을 잡을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1. 예체능 분야 : 아무리 좋아해도 따라갈 수 없는 재능 & 적성의 영역

상담할 때 가장 안타까웠던 학생들이 바로 예체능 분야에 흥미가 있고, 좋아하지만 직업적으로 연결할 수 없는 다양한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타협하거나 포기했던 경우였다. 아래와 같은 케이스들이다.

- 아이돌 연습생으로 10여년 가까이 준비했지만 데뷔에 실패한 A학생. 외적요소 + 운이라는 두가지를 타고난 재능으로 뚫기가 어려웠다
- 연극배우를 희망했지만 불안정한 직업환경과 낮은 급여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배우를 포기했던 학생B. 특히 어려서부터 공무원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터라 안정성이 기반이 되지 않는 직업을 이어나갈 수 없었다.
- 성악가를 희망했던 C. 해외대까지 졸업했지만 성악가 모집 오디션에서 번번이 실패. 곧 결혼을 앞두고 있어 뭐라도 직업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 일의 채용 수요가 마침 풍성하고, 연봉이나 워라밸과 같은 직업조건들이 마침 또 적당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특히 예체능 분야는 더 그런 것 같다. 이정도면 나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나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아주 쉽게 느낄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예체능분야이다. 그만큼 [타고난 재능 + 서포팅 받을 수 있는 가정환경]을 함께 타고나신 분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을 [평범한 재능 + 서포팅 받을 수 없는 가정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이기기가 쉽지 않은 구조이다. 그래서 더더욱 예체능 분야는 고민이 더 필요하다. 아래의 경우는 위의 친구들이 함께 고민을 하며 나름대로 합의점을 도출하여 진로를 전환한 케이스들이니 당신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면 참고해 보면 좋겠다.

- 아이돌 연습생으로 10여년 가까이 준비했지만 데뷔에 실패한 A학생. 결국 보컬트레이너로 진로를 전환하여 직업을 선택하였고, 현재 내로라 하는 아이돌들의 보컬 선생님으로 활약하고 있다.
- 연극배우를 희망했지만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없는 직업환경과 낮은 급여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배우를 포기했던 학생B. 지금은 행정학과 전공을 살려 재무회계직무를 하고 있다. 직장인 연극동호회에 들어가서 취미로 연극을 하고 있으며, 돌아오는 9월에 벌써 10회차 연극을 한다
- 성악가를 희망했던 C. 해외대까지 졸업했지만 성악가 모집 오디션에서 번번이 실패. 지금은 사립중학교 음악교사 계약직으로 근무중이며, 스스로 교육이 잘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일하면서 느끼는 중이다


2. 사회복지 & 상담 분야 : 선한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직업환경의 벽을 넘지 못하는 곳

사회복지와 상담분야는 내가 속해있는 분야이기도 해서 참 할말이 많다. 사회복지사나 심리상담사, 나와같이 직업상담사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사실 이 일을 좋아하는 마음도 크지만, 일종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직업이라는 존재가 '생계수단'을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보니. 직업조건을 무시할 수가 없다. 낮은 급여, 고강도 업무, 불안정한 고용환경 등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사람들도 그 직업을 포기하게 만든다.

-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겠다는 소명의식을 바탕으로 어려서부터 사회복지학과 전공을 목표로 달려온 D학생. 결국 9급 사회복지공무원으로 취업에 성공하였으나, 지속되는 민원스트레스와 200초반대의 낮은 급여, 고강도 업무로 인해 평생직장임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했다.
- 가족상담에 관심을 갖고 심리상담학과에 진학했지만, 석사가 더 필요한줄은 몰랐다. 어려운 형편에 석사를 졸업하고 고된 수련과정까지 마쳐서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정규직 자리가 없는줄은 정말 몰랐다. 대학의 심리상담센터에서 계약직을 전전하다가 결혼 후 육아를 병행하면서 직업을 포기했다.
- 제대로된 기업교육을 기획하고 싶어 교육학 전공 & 교수설계 석사학을 마치고 기업교육(HRD)에 지원하려고 했지만 지원할 채용TO가 없었다. 그나마 뽑는 HRD직무는 경력 5년 이상 과장급이다. 결국 인하우스 HRD를 포기하고 컨설팅사로 입사했지만 매일 야근이 반복되는 고강도 업무에 이직을 고려하고 있다.

내가 예로 든 Case를 보고 격하게 공감하는 분들 아마 많을 것이다. 특히 교육 / 사회복지 / 상담 등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가져다 주는 직업군들이 애석하게도 직업환경이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가 정말 많다. 전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소방관이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채 5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러니 다른 직업군은 어떠하겠는가. 내가 일하고 있는 직업상담사라는 직군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분들이 시니어가 되었을 때, 제 2의 직업으로 직업상담사를 많이들 생각하신다. 자기소개서나 면접은 누구나 겪어본 과정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전문직으로 느껴지니 충분히 흥미가 갈법도 하다. 그렇지만 나에게 직업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나는 꼭 이 이야기를 먼저한다.

처음부터 대학의 직업상담사는 어려워요. 그러면 최소 2~3년은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같이 고용노동부에서 하는 사업이나 컨설팅사에서 처음 시작하게 되는데 급여가 00만원 내외 정도구요. 업무강도는 이래요~ 게다가... 계약직인곳이 수두룩해요. 그래도 괜찮으세요?


라고 말이다. 그러면 다들 '아 그래요? 그정도인 줄은 몰랐네요' 하고 놀라신다. 아마 연봉이나 직업안정성이 어느정도인지 정보를 모르셨던 것 같다. 이렇듯 좋아하는 일이지만 '직업'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려해야할 것들이 매우 많다. '재능과 적성' 이라는 영역도 무시할 수 없고, '연봉과 워라밸, 직업안정성' 이라는 가치도 소중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하는 직업군을 뽑아주는 회사, 채용해주는 곳이 많아야 한다. 이쯤되면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이라는 고민은 생각보다 굉장히 의미없는 고민이었음을 느낄 수 있다. 자 그럼 우울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좋아하는 일을 찾았던 직장인의 사례도 한번 알아보자.


3. 꿈꾸었던 직업 : 상상했던 직업과 현실의 간극이 클 때

상담을 할 때 늘 힘들어하는 사람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보면,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어 공유해 본다.

그녀는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4년을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좋아하던 그림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열정에 회사를 그만두고 미술학원을 차렸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 정말 행복할 줄 알았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림을 가르치는 일보다 학원 운영이나 마케팅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좋아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일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오히려 전보다 훨씬 더 힘들고 괴로워졌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이후에도 불만족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은 많다. 이유가 뭘까? 바로 좋아했던 일이 상상했던 것과 간극차이가 클 때 이다. 멋진 비행을 하며 글로벌 역량을 펼치는 모습만을 상상했던 스튜디어스는 진상고객응대가 쉽지않다. 직원 채용과 면접을 보는 상냥한 인사담당자를 생각했는데 으외로 엑셀을 통한 데이터분석과 행정업무가 많다. 전략기획실에 배정받아서 뭔가 창의적인것을 기획하는구나 기대했는데 알고보니 시장조사와 리서치, 보고서 업무가 담당업무의 거의다였다. 이처럼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 때로는 그 직업의 단면만 좋아했거나, 또는 정확하게 어떤업무를 하는것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추측으로 이해했을 때 우리는 실망하게 된다. 즉, 좋아하는 일이 무조건적으로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런데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다고 해서 행복이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당연한 결과이다. 연구 결과로도 드러난다.

미국 예일대 심리학자 에이미 레스니에프스키(Amy Wrzesniewski)는 직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를 3가지로 나누었다.

Job (생계를 위한 일)

Career (성장과 발전이 목표인 일)

Calling (소명, 가슴 뛰는 일)


흥미롭게도 그녀의 연구에 따르면, 일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이 선택한 일을 'Calling(소명)'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소명이라는 게 꼭 좋아하는 일을 선택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느냐가 행복을 좌우한다는 이야기다.


4. 진짜 중요한 건 일과의 관계, '의미 찾기'

그렇다면 내가 진로와 취업상담을 할 때 가장 강조하는 건 뭘까?

바로 '좋아하는 일'보다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거다.

한 번은 SSAFY 수료생이 취업 상담을 요청했다. 그는 게임이 정말 좋아서 게임 서버 개발자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업무를 하다 보니 매일 비슷한 코드만 작성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자신의 성장이 더디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게임 서버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네가 하고 있는 일이지? 그럼 그 일이 너 자신뿐 아니라 회사나 고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5개만 적어서 카톡으로 보내줘봐."


몇 달 뒤 그는 다시 연락했다. 이전과 같은 업무였지만, 자신의 일이 회사의 제품에 큰 가치를 더한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실제, 내 상담 경험에서도 이렇게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은 업무에서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좋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행복은 그 일을 통해 삶의 의미를 느끼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걸 나는 수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했다.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단순히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발견하는 삶의 의미와 만족감이다.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말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지금 내가 하는 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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