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비밀의 화원과 사라진 열쇠 (3)

by 달빛타래

하지만 복도 중앙의 세탁실 문을 열자, 다시 두 눈을 의심케 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따듯한 김이 서린 세탁실 안에서는 별채에서 수거한 빨랫감들이 수조 위를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스스로 물결을 타며 묵은 때를 벗겨내고 있었다. 세제 거품은 구름처럼 몽글몽글 피어나 옷감 사이를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세탁이 끝난 옷들은 스스로 빨랫줄로 날아가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세탁에 사용되는 물은 모두 호수에서 길어 온 것들이라네. 요정들의 축복이 담긴 물은 빨랫감 표면의 얼룩뿐만 아니라, 손님이 남긴 흔적도 말끔히 씻어내지.”

“손님이 남긴 흔적이요?”

“그래. 슬픔이나 후회처럼 옷감에 깊게 배어들기 쉬운 잔류 감정들 말일세. 그런 것들은 제때 씻어내지 않으면 점점 무거워지는 법이거든.”

웬디는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옷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만약 호숫물이 부정적인 감정을 지워낼 수 있다면, 지난날 계산대에서 겪은 진상 손님들의 짜증과 퇴근길에 느낀 고단함도 깨끗이 씻겨 내려갈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자네의 방 건너편에 있는 창고라네.”

세탁실을 뒤로하고 복도 끝자락에 있는 참나무 문을 열자,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몇 배는 넓어 보이는 기묘한 공간이 나타났다. 창고 내부는 다른 곳에 비해 정돈이 덜 되어 다소 난잡해 보였다. 수백 개에 달하는 선반 위에는 생필품과 이불 등 손님을 위한 물건부터 먼지 쌓인 램프나 주인을 잃은 각양각색의 물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에드먼드는 뒤늦게 당당하게 보여줄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민망한 표정으로 변명을 꺼냈다.


“손님 응대를 최우선으로 두다 보니, 창고 정리가 다소 소홀했군.”

웬디는 먼지가 내려앉은 선반 틈에서 살짝 튀어나온 하늘색 리본 하나를 발견했다. 리본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위해 손을 대는 순간이었다.


“아하하!”

순간적으로 달콤한 바닐라 향과 쾌활한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스쳐 지나갔다. 깜짝 놀란 웬디가 손을 놓고 반사적으로 물러나자, 에드먼드가 말했다.


“모르는 물건은 조심히 만지게. 안쪽에 있는 물건들은 손님들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 두고 간 것들이라네. 그중에서 나름 쓸만한 것들만 추려서 보관하고 있지. 손님맞이에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입구 주변에 다 있으니, 나중에 따로 확인해 보게.”

에드먼드는 창고 문을 닫고 복도로 나섰다. 본관 투어의 마지막은 3층으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이었다. 계단 앞에 멈춰 선 에드먼드는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위쪽에 안개가 보이나?”

“네, 보여요.”

고개를 높이 든 웬디는 그의 말대로 계단 끝에 드리워진 안개를 발견했다.


“3층은 내 침실이자 연구 공간일세. 아쉽게도 이곳은 마법사 외에는 발을 들일 수 없네. 만약 억지로 계단을 오르려 한다면, 숲이 자네를 이상한 장소에 떨어뜨려 놓을 거라네. 그러니 무모한 호기심은 거두길 바라네.”

“명심할게요.”

웬디는 마른침을 삼키며 에드먼드의 경고를 가슴 깊이 새겼다.


* *


하늘에 뜬 해가 능선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올 무렵, 본관 프런트에 낯선 손님이 나타났다. 다섯 번째 별채에서 체크아웃을 위해 올라온 데비 록이었다. 그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어깨 위에는 축소된 크라켄의 머리를 얹은 듯한 기이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피부는 깊은 수심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짙은 녹색을 띠었고, 고급스러운 정장 소매 밖으로 빠져나온 손가락에는 반투명한 물갈퀴가 팽팽하게 돋아 있었다.


“에드먼드. 이번에도 아주 훌륭한 휴식이었네! 특히 별채의 수압과 심해의 압력을 재현한 마법은 최고더군. 마치 고향의 바다 한가운데 누워있는 기분이었어.”

“만족했다니 다행이군, 데비. 자네의 무역 사업이 다시 번창하길 빌겠네. 심해의 보물은 언제나 육지에서 인기가 좋으니까.”

에드먼드가 장부를 정리하며 대답하는 사이, 데비의 크고 노란 눈동자가 곁에 서 있던 웬디에게 향했다. 세로로 찢어진 눈동자는 호기심 어린 빛을 띠며 몇 번 깜빡였다.


“응? 며칠 전까지 못 보던 직원인데? 산장에 새로운 생기가 감도는군.”

“새로 들어온 직원인 웬디입니다. 이제 막 일을 배우고 있어요.”

“그렇군요! 저는 데비 록입니다. 태평양 깊은 수심에서 진주와 난파선의 보물을 발굴하는 일을 합니다. 최고급 진주를 구매할 일이 있다면 저에게 연락하세요.”

데비는 정중한 말투와 함께 손을 내밀었다. 웬디는 그의 기괴한 외형에 잠시 주춤했으나, 이내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반가워요, 데비 씨. 이곳에서 머무시는 동안 편안하셨길 바라요.”

하지만 악수를 마치고 손을 떼는 순간, 웬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손바닥에는 차가운 바닷물을 머금은 듯한 끈적이는 점액질이 한가득 묻어 있었다. 심해 생물이 육지의 건조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체액인 듯했다.


“왜 그러시죠?”

“아무것도 아니에요.”

웬디는 손을 뒤로 감추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데비는 선량한 표정으로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체크아웃은 끝났네. 어차피 다음에 또 올 테니, 배웅은 하지 않겠네.”

“하하! 그거야말로 최고의 작별 인사라네!”

데비는 호탕하게 웃으며 들고 온 가방을 들고 산장을 나섰다. 에드먼드는 곤혹스러운 웬디의 표정을 읽어내고 무심하게 말했다.


“샤워실 선반에 레몬 향이 나는 파란 물병이 있을 걸세. 그걸 두 방울 정도 떨어뜨리고 씻으면 심해 존재의 흔적이 말끔히 지워진다네.”

“그냥 물로 씻으면 안 되나요?”

“일주일 내내 끈적임을 참을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 보게.”

웬디는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데비와 악수한 손을 공들여 씻었다. 개운해진 기분으로 내려온 웬디에게 에드먼드는 묵직한 열쇠 하나를 보여줬다. 열쇠의 손잡이 부분에는 눈동자를 닮은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이건 데비가 반납한 다섯 번째 별채 열쇠라네. 잠시만 들고 있게. 나는 창고에서 몇 가지 물건들을 챙겨 올 테니.”

“네, 알겠어요.”

웬디에게 열쇠를 넘긴 에드먼드는 느릿한 걸음걸이로 계단을 올랐다. 혼자 남은 웬디는 에드먼드가 작성하던 장부를 살펴보며 체크아웃하는 손님을 위한 매뉴얼을 머릿속에 새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쇠를 쥔 손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그 모습은 꼭 심장 박동 같기도, 손아귀를 벗어나고 싶은 새의 날갯짓 같기도 했다. 그 미세한 움직임 때문에 자꾸 열쇠가 손에서 미끄러지자, 웬디의 눈이 가늘어졌다.

때마침 웬디는 벽면에 가지런히 걸린 다른 별채들의 열쇠고리를 발견했다. 괜히 손에 쥐고 있는 것보다 저곳에 걸어두는 것이 훨씬 안전해 보였다. 그렇게 웬디는 비어있는 고리에 별채 열쇠를 딸깍 소리가 날 때까지 밀어 넣었다. 그렇게 마음 놓고 장부를 계속 살펴보는 사이, 침구류를 양손 가득 들고 나타난 에드먼드가 물었다.


“열쇠는 잘 쥐고 있나? 그 녀석은 다른 놈들과 다르게 말썽쟁이거든.”

“아, 저기 고리에 잘 걸어놨...”

벽면을 가리키던 웬디의 눈이 흔들렸다. 그곳에는 웬디를 비웃듯 비어있는 고리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웬디의 얼굴은 곧바로 새하얗게 질렸다.


“어, 없어졌어요! 분명 제가 이 고리에 걸었고, 걸리는 감촉까지 확인했는데!”

“이런, 내 잘못일세. 자네에게 제대로 설명했어야 했는데.”

에드먼드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탁 짚었다.

“산장의 열쇠들은 스스로 움직이는 성질이 있다네. 특히 다섯 번째 별채 열쇠는 자유분방하기로 유명하지. 녀석은 주인이 바뀌는 틈을 타서 탈출하는 게 취미거든. 그래서 손에 꽉 쥐어 온기를 나눠주거나, 전용 자물쇠 함에 가둬야 한다네.”

“죄송해요, 에드먼드 씨! 제가 금방 찾아올게요!”

웬디는 울상이 되어 프런트를 뒤지기 시작했다. 소란을 듣고 날아온 펠은 날개를 퍼덕이며 낄낄거렸다.


“그 열쇠는 다리도 없으면서 나보다 빠르게 날아가거든! 행운을 빌어, 웬디!”

웬디는 펠의 비웃음을 뒤로한 채 본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서재의 선반들과 식당의 테이블 아래를 기어다니며 은빛 광채가 보이는지 살피고, 마가렛의 부엌으로 달려가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 뒤편과 양념통 사이사이까지 훑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니?”

“제가 큰 실수를 해서요!”

마가렛은 놀란 눈으로 물었지만, 웬디는 자세히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다시 현관으로 돌아와 계단 난간 밑과 카펫의 접힌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들춰보았다. 하지만 열쇠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웬디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일한 지 첫날에 이렇게 실수를 연달아 저질렀다는 자책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본관에는 없어. 그건 확실해.”

확신을 가진 웬디는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본관 앞마당의 조약돌 틈을 살피고 별채 주변과 숲길의 먹이통까지 확인하다 보니, 어느새 헨리가 머무는 초원까지 도착했다. 헨리에게 다가가는 웬디는 이제 숨까지 헐떡이고 있었다.


“헉, 헉! 헨리! 혹시 주변에서 반짝이는 열쇠를 못 봤나요? 은색이고 파란 보석이 박혀 있는 열쇠예요!”

여유롭게 풀을 씹던 헨리는 고개를 우아하게 들어 웬디를 바라보았다. 헨리는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머리를 저었다.


“웬디 양이 말씀하시는 열쇠인지는 모르겠지만, 은빛 나비처럼 생긴 무언가가 호수 쪽으로 낮게 날아가고 있더군요. 굴레를 벗어던지고 태초의 자유를 찾아 떠나는 어린 영혼처럼 가벼워 보였습니다.”

“호수 쪽이라고요? 고마워요, 헨리!”

헨리는 멀어지는 웬디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웬디 양!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이 숲은 마음이 급한 자를 놀려주는 걸 좋아하니까요!”

헨리의 충고가 등 뒤에서 메아리쳤지만, 웬디의 귀에는 자신의 거친 숨소리와 고동 소리만 가득했다. 물결이 치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호수에 근접한 웬디는 눈을 가늘게 뜨고 수평선을 훑었다. 그때, 호수에서 반대편 숲으로 이어지는 경계 부근에서 무언가 번쩍였다. 분명 그녀가 찾는 열쇠였다!

녀석은 웬디를 오기만을 기다리듯 공중에 멈춰 서서 눈동자를 장난스럽게 굴렸다.


“너, 거기 서!”

웬디가 소리치며 달려가자, 열쇠는 다시 숲속으로 미끄러지듯 달아났다. 열쇠와의 거리를 가늠하던 웬디는 본능적으로 흙길을 벗어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우거진 수풀 사이로 몸을 던졌다. 나뭇가지가 옷소매를 스칠 때마다 따가운 느낌이 들었지만, 웬디에게는 저 은빛 광채를 다시 잡아야 한다는 간절함밖에 없었다.

그러나 웬디가 열쇠를 잡아채기 직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열쇠가 있는데, 아무리 발을 빠르게 움직여도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웬디가 한 걸음 내딛으려 하면 열쇠는 두 걸음 멀어졌고, 전력으로 질주하면 열쇠는 빛처럼 숲의 어둠으로 숨어들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당황한 웬디는 서둘러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아득히 멀었어야 할 산장이 바로 등 뒤에 나타났고, 주변의 풍경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다시 앞을 보자 열쇠는 오히려 저 멀리 보이는 산처럼 느껴졌다. 고무줄처럼 공간이 길게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자, 웬디는 지독한 멀미를 느끼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무릎을 짚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떨어져 흙을 적셨다.


“그렇게 뛰어서는 영원히 녀석의 꼬리도 못 잡을걸?”

그때, 웬디의 근처에 있던 나무 위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별채 지붕 위에서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 밍크였다. 털빛이 짙은 갈색으로 바뀐 밍크는 굵은 나뭇가지 위에 웅크려 웬디를 가엽다는 듯 내려다봤다.


“밍크! 저 좀 도와주세요! 열쇠를 붙잡고 싶은데, 거리 감각이 조금 이상한 것 같아요.”

“그건 내가 도와줄 부분이 아니야. 네가 스스로 멈추는 법을 배워야지.”

“멈추는 법이요?”

“그래. 이 숲은 마음이 조급할수록 느리게 움직이거든. 네가 서두를수록 숲은 네 발밑을 무한히 늘려버려. 목적지는 저 멀리 밀어내고 너만 제자리걸음 하도록 만드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하죠?”

밍크는 하품을 길게 하며 앞발을 핥았다.


“글쎄? 그냥 마음을 편하게 가져봐. 가벼운 산책을 나왔다고 생각하라고. 어차피 열쇠도 이 숲의 일부야. 네가 녀석을 붙잡아야 할 사냥감처럼 여기면, 녀석은 더 멀리 달아날 거야. 하지만 네가 조급함을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가면, 네가 위험한 사람이 아닌 걸 알고 멈추겠지.”

웬디는 밍크의 말을 곱씹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모습은 거대한 화원 사이에서도 서 있던 에드먼드의 모습이었다. 눈길을 빼앗는 화려한 꽃 무리 속에서도 그는 줄곧 여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웬디는 그런 에드먼드의 모습을 따라 하듯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숲의 서늘한 공기가 몸 깊숙이 들어오자, 머릿속의 안개가 걷히는 기분이었다. 다시 눈을 뜬 웬디는 달리지 않고 아주 천천히 흙길 위를 걷기 시작했다. 나무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신발에 닿는 흙의 질감과 나뭇잎이 스치며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멀게만 느껴졌던 열쇠의 은빛 광채가 조금씩 선명해진 것이다. 거기다 늘어났던 공간이 제자리를 찾아오듯 나무들의 간격이 촘촘해지고, 공기의 흐름도 부드럽게 바뀌었다.

열쇠는 다섯 번째 별채의 문 앞에 멈춰 있었다. 녀석은 이곳이 자신의 보금자리라 주장하듯 열쇠 구멍 근처에서 맴돌고 있었다. 웬디는 숨을 죽이고 천천히 다가갔다. 이번에는 빠르게 낚아채려 하지 않고, 대신 열쇠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이제 돌아가자. 에드먼드 씨가 기다리고 있어. 너도 이제 충분히 놀았잖아, 그렇지?”

잠시 머뭇거리던 열쇠는 웬디의 손바닥 위로 착 내려앉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은 탓인지 파르르 떨리던 열쇠는 움직임을 멈췄다. 그 대신 눈동자를 닮은 파란 보석이 웬디를 향해 미안하다는 듯 작게 깜빡였다.

본관으로 돌아온 웬디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본관 프런트로 향했다. 에드먼드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차를 마시며 웬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웬디가 열쇠를 내밀자, 에드먼드는 전용 자물쇠에 열쇠를 맞물리듯 넣고 열쇠고리에 걸어두었다.


“수고했네. 처음엔 다들 녀석의 변덕에 호되게 당하곤 하지. 한 번은 이 녀석을 찾기 위해 숲 구석구석까지 사흘을 헤맨 적이 있거든. 그런데 정작 이 녀석이 호수 요정들과 수다를 떨고 있더군.”

에드먼드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웬디를 바라보았다. 조급함만 가득했던 그녀의 얼굴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여유가 엿보였다. 그것을 깨달은 에드먼드는 희미하게 웃었다.


“숲에서 무언가 깨달은 모양이군.”

“네. 서두를수록 멀어진다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했거든요. 모두 밍크 덕분이에요.”

“그 게으름뱅이 고양이가 간만에 밥값을 했군. 마가렛이 따뜻한 코코아를 준비했다고 하니 마시고 푹 쉬게나. 열쇠와 씨름하느라 체력을 너무 많이 썼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웬디는 마가렛의 식당에서 달콤한 향이 가득한 코코아 잔을 받아 들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잔 너머로 올라오는 김이 웬디의 뺨을 간지럽혔다. 창밖의 숲은 어느덧 주황빛 황혼에 잠겨 있었다. 도시에서는 늘 아프고 쓰라린 패배의 연속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실수는 어쩐지 스스로를 견뎌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듯했다.


“맛있다.”

그리고 마가렛의 코코아는 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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