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고 하지만, 우리가 걱정을 끊을 수 없는 데는 엄청난 이유가 있다. 바로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을 체득해 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10일이니까 10번인 나를 시킬텐데...하며 마음 졸인 날이면 선생님은 꼭 "오늘 10일이니까~음~20번!"하고 다른 번호를 부르신다. 하지만 오히려 방심하고 있는 다른 날짜에 뜬금없이 내 번호를 불러 화들짝 놀라게 만드신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 법칙은 여러 번 부모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아이가 밥을 안먹어 걱정이에요~"라고 말하고 다닌 날 갑자기 밥을 잘 먹기 시작하고, "우리 애는 그래도 병치레는 잘 안해~"라고 말한 날이면 갑자기 열이 펄펄 끓는다. 뭐든 내 걱정과 반대로 되어버리니, 이것 참 걱정을 끊을 수가 없다. 최대한 많은 걱정을 해야 예기치 못한 불행이 일어나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알레르기는 정말 걱정을 해도, 안해도 불시에 찾아와 사람 마음을 너덜너덜하게 만든다. 이거 우유 안들었다고 써있으니 먹여도 될 것 같긴 한데 어쩐지 불안하다...싶으면 갑자기 아이가 목덜미를 긁기 시작하고, 모기 물린 듯한 발진이 부풀어 오른다. 새로운 음식을 먹일 때마다 한 30분 간은 아이가 기침하지 않는지, 발진이 나진 않는지 지켜보느라 걱정되고 긴장해 명치에 돌덩이가 든 것처럼 딱딱해진다.
반대로 '오늘은 어린이집 급식 메뉴에 우유 들어가는게 없으니 괜찮겠지?', '키즈노트에 오전 간식 브로콜리 스프는 패스해달라고 써놨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마음 놓고 운동하고 있는데 끝나고 나니 부재중 전화가 잔뜩 와 있다. 패스해달라는 말이 먹어도 괜찮지만 아침을 많이 먹었으니 패스해달라는 의미라고 생각하셔서 주셨고, 아이가 몇 입 먹었다가 입이 따갑다고 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안 받으니 회의 중이던 남편에게까지 전화가 갔고, 그 날 이후로는 운동할 때도 스마트워치를 몸에서 떼어놓지 못하게 됐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걱정을 해도, 안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걸 여러 번 경험하고 나니 오히려 걱정을 내려놓게 됐다. 걱정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거기에 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걱정을 하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는가? 아니다.
만약 걱정하는 일이 닥친다면, 나는 대응할 수 있는가? 그렇다.
지금까지 겪었던 몇 번의 아나필락시스에도 항상 즉각적으로 약과 주사를 사용하고 빠르게 병원으로 옮길 수 있었기 때문에 무사히 회복할 수 있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내가 곁에 있다면 빠르게 주사하거나 병원으로 데려갈 수 있을 것이고, 내가 없을 때에도 미리 말씀드려 두었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가방에 있는 약을 먹이고 바로 연락을 주실 것이다.
걱정을 너무 하다 보면 걱정에 압도돼서 그 일이 꼭 일어나게 될 것만 같은 불안에 휩싸인다. 오히려 그 일이 안 일어나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가 될 지경이다. 하지만 이 걱정은 현재의 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미래에 쓸 에너지까지 당겨 써 버리고, 최상의 결과를 내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생각해보면 상황 자체보다도 부풀려진 내 걱정 때문에 패닉이 찾아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되곤 했다.
최근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을 읽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도 역시 '걱정'을 하지 말라는 말이 주된 내용이었다. e-book으로 읽다가 걱정에 휩쓸리는 기분이 들 때마다 다시 찾아 읽으려고 종이책으로도 주문했다.
어차피 닥치면 다 감당하게 되어 있다. 최선의 준비를 해 두고, 그를 넘어서는 일이라면 그저 하늘에 맡긴 채 조금이라도 가볍게 지내야 한다. Don't Pa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