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이 낳은 희망
슬픔에는 5단계가 있다고 한다.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이다. 아이의 알러지 진단을 처음 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를 떠올려보면 이 슬픔의 5단계와 비슷한 심리상태를 거쳐온 것 같다.
가장 위험한 단계는 '부정'이다. 처음 알러지 진단을 받으면 놀라고, 그 다음에는 '아닐지도 모르잖아...일시적인 걸지도 모르잖아...'하며 마음 속에서 은근히 이 사실을 부정해본다. 이 부정은 곧 희망이다. 알러지가 있다고 했지만, 이 정도는 아주 미량이니 괜찮지 않을까? 거짓말처럼 그새 나아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이 희망은 해이함을 낳아 식품 성분표에 있는 '탈지분유'나 '난백분말'과 같은 우유, 계란 성분을 뜻하는 또 다른 단어들을 걸러내는 눈을 어둡게 만들고 기어코 아이가 아나필락시스를 또 겪게 만드는 빌미가 된다.
이사온 뒤 집 근처의 대학병원으로 전원하면서 그간 있었던 아나필락시스 이벤트들에 대한 히스토리를 쭉 정리해야 했다. 선생님은 "그런데, 아이가 알러지가 있다는걸 알면서 왜 자꾸 시도를 하는거죠?"라고 물으셨다. "시도한게 아니라 성분명에 있던 단어를 미처 못봐서 실수로 먹이거나, 문의했을 때 우유 성분이 없다고 했는데 들어있었다"고 대답했지만 결국 이런 실수와 상황을 낳은 것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부정, 그리고 위험한 희망에서 비롯된 해이함과 부주의함이었을 것이다.
"아이 알러지 수치가 크게 변화가 없어서 아마 성인이 되어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땐 하....정말 오장육부의 깊은 곳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말 덕분에 희망을 내려놓게 되고, 빠르게 수용에 이르게 된 것 같다. 아이가 평생 알러지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곧 없어질거야"라고 말해줄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좀 더 철저히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또 아이에게 알러지로부터 최대한 안전한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도록 진학, 진로에도 여러 옵션을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언제 없어지나 하는 '기다림'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준비'로 초점이 옮겨가자 분노와 우울에 잠겨있던 내 안의 이성이 깨어났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누가 잘못했나?", "언제 끝나나?"라는 질문은 해결책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가?"만 생각하려 한다.
한때는 알러지 있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무심한 우리나라와 사회에 대해 답답함과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큰 틀을 개인이 바꾸기는 어렵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심정으로 내 아이의 접점이 되는 모든 사람들과 기관들에게 최선을 다해 아이의 알러지에 대해 소통한다. 혹시나 내 아이 같은 아이가 훗날 입학했을 때 그 사람들과 기관이 좀 더 편안하게 배려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힘들 때마다 하나씩 써온 글들을 엮으려 하는 것은 나처럼 '부정' 단계에서 실수로 아이를 힘들게해 자책하고 있거나 '우울'의 단계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희망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