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해주느냐에 따라 나의 멘탈은 크게 영향을 받는다. 결혼 후 가장 많은 대화를 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붙어 있게 된 남편은 나보다 다섯 살이 많고, 여러 가지 일도 겪어냈다 보니 훨씬 성숙하고 담담한 태도를 보일 때가 많다.
아이의 알레르기를 알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평생 마음 편할 수 있는 날이 없겠구나'였다. 나랑 같이 있을 때도, 내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간혹 두드러기가 올라오거나 기침을 해서 급히 약을 먹일 때가 종종 있는데, 내 눈에 안 보이는 순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쩌나 바위 같은 걱정이 내 마음을 짓이겨지도록 짓눌렀다.
하지만 가끔 남편이 툭 던지는 "우리 아이는 잘 크고 있어"라는 말이 내 흔들리는 마음을 종종 붙잡아준다. 아이는 절대 그 상태에서 멈춰있지 않는다. 하다 못해 길거리를 걸어갈 때도 뛰어갔다가, 개미를 봤다가,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졸랐다가 하며 잠시도 가만히 서 있는 법이 없다. 몸만 계속 움직이는게 아니라 머리도, 마음도 크는게 눈에 보인다. 갑자기 꽤 정교해진 논리로 이야기를 하거나 뜻밖의 대담함을 보일 때 갑자기 아이가 컸음이 확 실감난다.
우리 아이처럼 알레르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SNS계정을 팔로우하다 보면 나보다 훨씬 선배님들인지라 경험도, 대처하는 방법도, 멘탈도 매우 성숙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피드에서 "이제는 아이가 알레르기 반응이 올 때면 항히스타민만 먹어야 하는지, 스테로이드까지 먹어야 하는지, 응급실에 갈 정도인지 스스로 판단해 알려준다"는 글을 봤다.
아이가 어리고 말을 못할 때는 갑자기 울거나 기침하거나 발진이 올라오면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 말 못하는 아이를 들고 "숨 쉴 수 있어? 말해봐 목 쉬었나 보게! 아가 괜찮니?"하고 수십 번 물어도 대답을 할 줄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 이거 우유 들어간것 같아", "혓바닥이 따가워" 하며 자신의 증상을 말로 제법 자세히 설명할 줄 안다. 어린이집에서 예상치 못하게 크림이 들어간 브로콜리 스프를 먹었을 때도 "선생님 혓바닥이 따가워요 우유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하고 말해서 약을 먹일 수 있었다. 이제 이 아이도 조금 더 크면 "이 정도면 스테로이드는 안 써도 될 것 같은데"하며 자가진단해서 알려줄 수 있게 되겠지.
알레르기는 그대로더라도, 아이는 계속 큰다. 그래서 나 뿐만 아니라 아이도 스스로 자신의 증상에 대처할 수 있게 되고, 그리 달가운 동행은 아닐지라도 알레르기와 더불어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남편이 종종 말해주는 "우리 아이는 잘 크고 있어", "많이 좋아지고 있어"라는 말은 잘 살아가다가도 때때로 절망하고 슬퍼하는 나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되어준다.
그게 진실이든 아니든, 말하는 대로 믿는 대로 된다. 우리 아이는 잘 크고 있고, 나도 크고 있다. 그리고 어떤 일이 닥치든 우리는 최선으로 대처할 것이고, 잠시 멈췄다가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