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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시처럼, 산문처럼, 철학사처럼

생리적, 간사한 마음, 일체유심조.

by 김원식 Mar 24. 2025

등줄기가 서늘하다.

이런 느낌은 인생에 있어서 여러번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리라 생각한다. 내 기억에도 이정도로 긴장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싶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으로 취업 면접을 보러 들어가던 날일까? 출발 하려는 버스를 달려들어 타고, 상쾌하게 버스 기사님과 인사를 한 후 요금을 내려고 하는데 지갑을 안 가지고 온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일까? 나와 썸을 타고 있다고 느끼던 상대에게 발렌타인데이 큰 마음 먹고 산 비싼 선물을 주려는데, 청첩장을 받았을 때 일까?

어느 순간에는 피할 수 없어서 눈 질끈 감고 달려들기도 하고, 또 어느 때는 주변의 도움으로 헤처나가기도 하고, 혹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행동이 빠르지 못 했어서 다행이었다고 웃으면서 추억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이 오싹한 느낌은 같은 것 같다.

뭔가 잘 돗되어 가고 있다라는 본능적인 위기감.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인지라, 일정이나 약속 시간이 있으면 반드시 맞추어야 하고, 늦는 것이 신경쓰여 일찍 도착할 수 있게 넉넉하게 출발하는 편이다. 이러한 성격은 외출을 준비할 때면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한 간단한 준비도 하게 한다. 휴대전화 하나면 대부분의 생활이 가능한 현대의 도시 생활을 하면서도 지갑을 챙기고, 손수건과 충전기 그리고 가벼운 상처가 생길 때를 대비한 밴드, 휴대용 반지 고리 등을 넣은 가방을 항상 준비하게 된다.

언제부터 였을까. 집에서 멀지않은 회사에 출퇴근 길은 가벼운 산책 정도의 거리이기에 긴장감이 풀리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하여 이러한 가방 없이 다니게 된 것이.


익숙해진 일상은 위기감을 잊게 한다. 위기감을 잊으면 준비하지 않게 된다.

나는 너무도 익숙하게 휴대전화만 주머니에 넣고, 걱정 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오늘은 옆자리 동료가 오전에 외근이니까, 슬쩍 온라인 쇼핑을 해 볼까?’라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익숙한 길을 걷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대장의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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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급한 것이다!

본능이었다. 내가 노력해서 막을 수 없는 것이라 확신이 왔다. 위기감이 온몸을 스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 잘 아는 곳이잖아. 내가 아는 동네잖아. 어디에 있지? 침착해야 해!’ 평소때 눈 여겨 보던 은행이 있는 대형건물이 떠올랐다. 하지만 본능이 말했다. 거기까지는 무리일 거라고, 가까운 곳에 주유소가 보인다. 주유는 해 본적 있지만, 볼일을 본적은 없어서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오래된 주유소라서 좋은 환경을 기대할 수는 없다. 평소라면 넘겼을 선택지이다.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야!’ 발걸음이 빨라졌다. 출근 시간이라 사람은 거의 없었다. 주유소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의 표정과 몸짓이 내 상태를 표현하고 있었나보다. 한쪽 방향을 손으로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의도하지 않게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흐른다. 낡은 타일과 낙서와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는 문을 열고, 급하게 나의 걱정거리를 해결하였다. ‘아...물티슈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급한 상황이 지나가고 나니 여유가 생겨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상황에 따라서 이렇게 생각이 바뀌다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더니, 꼭 동굴까지 가지 않아도 어둠 속에서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을 마시지 않아도 이렇게 사소한 일상에서 마음에 따라 태도가 바뀔 수 있음을 느낀다. 급한 상황은 지나갔으니, 출근해서 쾌적하게 마무리를 짓자라는 생각을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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