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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Mar 22. 2024

부고 안내문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음절 하나가 불룩하게 쏙 튀어나왔다. 딸. 


그동안 딸이라고 하면 나 자신을 떠올렸다. 출산 이후에는 내 자식을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 받아 본 부고 안내문의 '딸'은 우리 엄마였다. 아, 우리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딸이었구나. 딸이었다가 소녀였다가 엄마가 되었던 거구나. 사랑받고 앙탈부리던 아기였다가 나의 엄마가 된 것이었구나. 늘 걷던 길에서 한 번도 뒤집어 보지 않았던 돌을 발견한 듯했다.


그날 밤 꿈을 꿨다. 할아버지가 임종을 맞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고마워요, 사랑해요, 고생하셨어요.' 위로와 감사의 말을 전하는데도 할아버지는 별 반응이 없었다. 계속 힘들어하고 계셨다. 그러다가 내가 


"할아버지, 우리 엄마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눈을 지그시 뜨셨다. 작게 입을 벌리시고는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아, 이게 내 인생의 의미였지.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지'라며 스스로의 인생을 되돌아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할아버지께 인생의 의미를 만들어드리고 나서야 꿈속에서 할아버지는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다. 꿈에서도 현실처럼 점심 식사를 하시고 돌아가셨다.


내가 생각하는 할아버지 인생의 의미는 외람되게도 '우리 엄마를 낳아주신 것'이다. 할아버지가 스무 살 때 뜨거운 풋사랑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엄마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내 딸도 태어나지 못했겠지. 할아버지의 꿈이 뭐였는지, 뭘 좋아하셨는지, 뭘 못해서 아쉬우신지, 어떤 뿌듯함이나 자랑을 갖고 계신지 모른다. 우리는 그만한 소통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나에게는 우리 엄마를 낳아주신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할아버지, 엄마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제가 있을 수 있었고, 제 딸도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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