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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애 Mar 13. 2024

소렴, 대렴 그리고 입관

입관식에 참여했다. 이미 소렴(옷과 이불로 몸을 싸는 것), 대렴(끈으로 바른 자세가 되도록 묶는 것)을 마친 상태였다. 할아버지 시신을 관 속에 넣기 직전이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의 육체를 보며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다. 갈리어 떨어지는 이별이었다.


안치실 자동문 버튼을 누르고 들어갔다. 직육면체의 텅 빈 공간에는 세로로 반듯하게 서 있는 장례지도사, 그리고 가로로 반듯하게 누워있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할아버지의 친동생들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의 머리카락, 눈썹, 눈, 치아, 주름. 내가 처음으로 할아버지 얼굴을 세밀하게 본 순간이었다. 


할아버지는 철로 된 침대에 빳빳하게 누워계셨다. 얼굴엔 상처 하나 없었다. 평생 얼굴과 몸에 쥐고 사셨을 모든 긴장은 풀어져있었고, 편안하고 완전한 이완만이 얼굴에 남아있었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상판과 깊은 잠에 빠져있는 얼굴은 서로 이질적이었다.       


할아버지 발목에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두 발목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끈으로 두 발목을 가지런히 그러나 단단히 동여맨 후 화려하고 큰 꽃 한 송이로 장식을 했다. 동여맨 끈을 가린 것이다. 평소 카리스마 넘치고 괄괄하셨던 할아버지와 화려한 꽃 한 송이를 동시에 포개어놓고 보기 어려웠다. 편안하게 양팔을 내려두었듯 양다리도 벌어진 채로 수의를 입혀드렸더라면 유가족 마음이 더 편안했을 것 같아 아쉬웠다. 이 대목에서 '포장'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고 이내 슬퍼졌다.     


죽은 것을 멋진 포장지에 넣어두었다고 해야 할까? 기괴해서 서글펐다. 만져보지 않아도 빳빳하게 굳은 것이 느껴지는 차렷 자세의 몸통은 나무판자같이 느껴졌다. 바싹 메말라있는 물기 없는 나무. 할아버지 몸을 잘못 만지면 팔이나 다리가 툭 하고 부서질 것 같았다. 차마 손에 쥘 수 없는 가을 낙엽을 손바닥 위에 올려두고 보는 기분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세요.


엄마는 당신의 얼굴을 할아버지 얼굴 가까이에 가져갔다. 코가 닿을 듯이. 내가 30년 동안 들었던 엄마 목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평소에 미워하던 엄마의 조급하고 뭉개지는 발음도 아니었다. 엄마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들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천천히 말했다. 할아버지가 잘 알아들을 수 있게 천천히 나긋하게 또렷하게 말하고 있었다. 첫돌이 지난 내 딸이 '아빠~?' 하고 부르는 순하고 연한 소리였다. 깊이 잠든 갓난아기를 깨우는 듯한 다정함이었다. 



아빠, 미안해.     


(요양병원에서) 많이 갑갑했지?   

  

아빠, 미안해.     


이제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녀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 작고 꼬물 거리는 것이 신기해서 얼굴이 닿을 듯 맞대고 또렷이 응시하며 얼굴 생김새를 살피는 것처럼 엄마도 딱 그랬다. 엄마는 할아버지 얼굴을 그렇게 바라보며 내가 30년 동안 들어본 적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냘프고 따뜻하고 다정하고 섬세한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건넸다. 내가 모르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엄마의 마지막 인사에는 그동안 엄마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갖고 있던 미안함의 핵심이 들어있었다. 급속도로 진행된 치매 증상으로 할아버지는 요양원을 도망쳐 나갔다가 잡혀 들어왔다. 4층 폐쇄병동에 들어가게 된 이유다.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자꾸 동두천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폐쇄병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엄마를 고통스럽게 했다.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시라는 엄마의 마지막 인사말에는 폐쇄병동에 계셨던 할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화장 후 자연에 뿌려드림으로써 세상을 마음껏 날아다니도록 하겠다는 스스로의 다짐도 비쳤다.    


나가실 땐,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할아버지 입관을 마쳤다. 장례지도사는 안치실에서 나갈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이제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인과 이별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죽음을 다루는 자의 단호함이었다.    

  

육신을 입은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인사. 우리 아빠는 내가 이렇게 매일 떠올릴 것을 예상했나 보다. 나에게 입관식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었다. 무슨 소리냐며 단칼에 자르고 들어간 입관식. 죽은 사람을 처음 본 날. 이날의 장면은 지금까지 3M 스티커처럼 끈기 있게 나에게 빈틈없이 달라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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