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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미 탐험가 이숙경 Oct 01. 2023

이런 추석 어때요?



추석 명절이 다가오던 어느 날 미림 언니가 병원으로 영양제를 맞으러 간다고 했다.가족이 많은 집, 그중에서도 맏며느리들은  명절 전 마음부터 힘들다.마을 아짐들도 추석을 앞두고 장을 몇 번이나 보면서 차근차근 음식장만을 하느라 바쁘시다. 이렇게  마을이 들썩들썩 명절 준비로 분주한데 우리 부부는 그 어느 때보다 한가하다. 일주일 가까이 계속되는 연휴를 즐길 궁리에. 마트에서 반조리 제품이나 간식거리를 잔뜩 샀다. 아무 계획도 없었지만 마을 아짐들, 마을 벗들 덕분에 보름달만큼이나 풍성한 명절을 보냈고 그 행복한 기억을 브런치에 간직해 보려고 한다.



추석 전 날, 연휴가 시작되는 아침 7시 마을 아짐 신덕댁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짜고짜 삼거리로 내려오라고 한다. 웃옷에 달린 모자로 부수수한 머리를 가리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이슬에 젖은 고무신이 선뜻하다. 날씨가 제법 차가워졌다. 멀리서 아짐이 보이는데 혼자가 아니다. 마을에 명절 쇠러 오신 손님들이 많아서 부수한 모습을 감추고 싶었는데 아예 딱 마주서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따님과 손주라고 했다. 다들 각자 손에 물건을 나에게 건넨다 .송편에,식혜에 새로 만든 밑반찬들이다.

우리 집엔 올 추석 아무도 오지 않기로 했고, 우리도 집에만 있기로 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명절은 형제들 각자 지내기로 했고, 결혼한 아들 며느리는 며느리 친정으로 명절을 쇠러 가라고 했다. 친정 부모님들이 우리보다 나이가 많으시고, 친척들이 대부분 외국에 계시니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더구나 우리 집은 해남이라 너무 멀어서 아이들이 명절에 오가기에 너무 고생스럽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추석을 보내기로 했다.


긴 연휴에 마음이 넉넉해지니 평소에 하기 힘든 일들을 시작했다. 우리 집 살림살이야 워낙 적으니 시간이 남아돌아 마을 회관으로 갔다. 마을 아짐들은 오랜만에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시느라 마을 회관이 텅 비었다. 이참에 주방에 그릇들을 바구니에 펴서 햇볕에 널고  행주와 수건, 걸레들도 빨아 널 참이었다. 한참 일을 하고 있는데 마을 전 부녀 회장 미연씨가 점심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일을 서둘러 정리하고 광민과 함께 달랑 빈손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미연씨도 우리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손님이 없다. 도시에서 직장에 다니는 아들은 아직 미혼인데 일이 바빠 다음 주에 온다고 하고 결혼한 딸의 가족은 내일쯤 올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저녁은 우리 집에서 먹기로 했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무슨 음식을 할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침 신덕댁이 깨끗이 손질된 싱싱한 병어를 주신다. 어제 면 부녀회장이 마을 부녀회장들에게 선물한 전복과 냉장고에 있던 대하가 있으니 충분하다. 광민이 숯불구이를 하고 나는 브로콜리를 데치고 무와 감자 호박 버섯을 넣어 병어 찌개를 끓였다.



맛있는 숯불향이 황홀해질 무렵 미연씨  부부가 도착했다.  점심과는  비교가 안 되는 간단한 상차림이지만 제법 분위기가 괜찮다.  우리 두 부부는 서로 완전히 기분전환을 할 수 있는 외식이라며 즐거운 식사를 했다.


식사 후 간단히 식기 세척기를 돌려놓고 미연 씨 부부와 마을 산책을 했다. 산책길에 도시에서 온 자녀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우리 며느리를 친정 보냈다는 말에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미연 씨도 결혼 39년 동안 명절에 딱 한 번 친정에 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친정에서 엄마를 모시고 산 기간이 길었지만 명절엔 꼬박 시댁에서 대부분 보냈다. 아직도 결혼 이후는 남성 중심 사회를 벗어나진 못한 것 같다.


산책을 나설 때는 새털구름이 달을 가렸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밝은 달이 '짠'하고 나타났다. 미연 씨와 나는 달을 보며 약속이나 한 듯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왠지 달이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 같이 휘영청 밝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어제저녁 메뉴는 온통 해산물이었다. 오늘도  향림이네 부부와 우리 집에서 광어회와 매운탕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특별한 날 더 즐기게 되는 이 맛있는 해산물들을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걸까?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된 지 벌써 두 달이다. 나는 이미 가릴 것 없이 먹어도 되는 나이가 되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정말 괜찮은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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