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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G.D. 태양 대성 그리고 천지창조

by 김민규 Dec 22. 2024

빅뱅은 3인조다. 나는 탑을 좋아한다. 키가 170cm 이 넘는 멤버 한 명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음의 래핑과 더불어 무대 위에서 어기적 거리며 술 취한 미친놈처럼 허우적거리는 빈정거림이 좋다.


그러나 나는 GD를 훨씬 더 좋아한다. 비슷한 인간끼리는 서로를 알아보는데, 지독한 원칙주의로 쌓아 올린 자기 학대의 완벽주의 너머로 건너가는 자가 되려는 정신병자의 몸부림을 지켜보는 일은 퍽 즐겁다.


이 글은 우주의 시작인 빅뱅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잡설이 길었다. 138억 년 전에 우주는 폭발했다. 빅뱅설을 접한 교황청은 창세기의 내용에 끼워 맞추기 좋아서 반겼다.


고전 물리학은 공간을 상자로 가정한다. 그렇다면 상자 바깥엔 무엇이 있는가. 무가 있다. 없는 것이 있다. 공간의 바깥에 공간이 없는데 그곳의 조물주가 빅뱅을 일으킨 것이다. 암소소리 수소소리 거. 짓. 말.


우주는 가속 팽창 중이다. 테두리의 속력이 점차 증가 중인데 무한히 증가할 순 없고 이론적으로 빛의 속력 이상이 될 순 없다. 우주의 테두리가 가속을 지속해 빛의 속력을 넘어가면 공간은 보이지 않는다. 빛 보다 빠르니까!


우리가 사는 우주가 버블 하나라면, 이것은 수축과 팽창을 반복할지 모르고, 버블 주변에 수많은 다른 버블은 우리 우주보다 먼저 생겨 수명이 더 길 지도 모른다. 다중우주이다. 그러니까 신이 빅뱅을 여러 번 일으켰고 일으키고 있다는 말.


인류의 논리와 관측 정보가 우주에 비해 제로에 가까워서 우리 우주의 밖에 무엇이 있는지, 빅뱅 이전의 시간이 있는지, 시간의 시작과 끝은 있는지, 시간과 공간은 구분이 되는지, 과거-현재-미래의 구분은 실재하는지 인간의 관념인지, 인간은 미래를 보거나 과거를 바꿀 순 없는지 알 길이 없다.


니체는 호숫가에서 우주의 비밀을 열었을까?


영원회귀는 인간의 문명이 다 으깨어 사라지고도 시간과 공간이 무한하기에 어떤 지점의 순간에는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나는 다시 한번 가난한 집에 태어나 동일 사회로부터 착취당하며 덜떨어진 동료들의 개소리와 간섭을 견디며 가난에 허덕이고 만났던 상대들을 다시 만나 지겨운 섹스를 반복해야 한다는데, 다음에는 트와이스 정연이나 안유진과 데이트하고 싶지만 니체 옹에 의하면 방구석에서 브런치스토리글을 흐려고 스마트폰 위로 손가락이나 튕길 신세다.


시간이 무한하다는 가정이 엇나가면 영원회귀고 나발이고 없고, 무한하다는 가정 위에서도 역사의 진보와 퇴보성은 차치하고 엔트로피 증가를 되돌리는 우주 팽창후 재 축소에 의한 빅뱅의 반복 터짐이 벌어진다면 승리가 또 감옥에 가서 빅뱅은 계속 터지고, 결정론적 우주 안에서 나는 안유진 사진이나 보며 또다시 브런치 스토리에 글이나 쓰겠다.


1) 성부 - 제작자

2) 성령 - (존재/작동) 원리

3) 성자 - 에너지

는 셋이 아닌 하나이다. 시공간 밖은 없어서 그 밖의 초원자가 시공간과 존재를 탄생시키지 않았다. 물질과 물질의 존재 방식 그리고 그 제작자는 별개가 아닌 하나이고 우주 그 자체가 신으로서 시작도 끝도 없이 그저 그러함이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너 자신을 알라고.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알고 함부로 상대적 진리를 설파하지 말아야 하지만 인식의 한계로 다가갈 수 없는 절대적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기에 겸손한 접근을 포기하지는 말라는 뜻으로 보인다.


메트릭스의 네오가 자신이 구원자가 아니라는 말을 오라클의 입을 통해 듣고는 주방에서 일어서는 순간 영화의 카메라는 주방 입구 현판을 보인다. [Temet Nosce 너 자신을 알라]


네오는 자기가 구원자가 아니기에 자신을 구원자로 오해해서 목숨을 버리려는 모피어스를 구하러 가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길을 선택한다. 결국, 네오는 물질은 코드에 불과하고 코드 역시 제작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개별 존재인 자아에 대한 집착도 허상임을 알게 되어 세상이 시작도 끝도 없는 한 덩어리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건너가는 자가 된다.


언제나 쉬지 않고 나를 사로잡는 의문 혹은 재미 또는 장난감 중 하나는, 세계의 그물망에 얽혀있는 배경으로서의 나를 보는 일과 세상과는 분절된 독립 개체로서의 나를 보는 일이다. 전자의 극단에는 나는 없고 단 하나의 세계만이 존재하며 세계는 곧 신이고 나는 신의 일부이다. 반대편의 극단에는 일체의 형이상학은 사기이고 눈에 보이는 모습의 내가 있다.


양쪽의 시선 모두 형이상학적 세계가 있는지 눈에 보이는 세계가 있는지 세계라는 통일된 존재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그 모습을 인간이 획일화된 편견적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인간마다의 관찰 편차의 산포도가 얼마나 큰지 따위의 수 천년 간 그리고 앞으로 누구도 명확히 답을 제시할 수 없는 체계를 이리저리 눈덩이 굴리듯 굴려보곤 한다.


이런 생각을 이리저리 밀고 다닐 때 나를 관통하는 수만 번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내가 나라고 느끼는 자아로보터 내적 거리를 가지고 나 자신을 실험 대상물로 놓고 나로부터 탈출해 나를 실험체로 가지고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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