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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Apr 20. 2021

몸 근육을 키웠더니 마음 근육도 커졌다.

30대 후반 헬린이의 운동 입문기

'몸'으로 뭔가를 이뤄낸 사람들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있다. 발레리노 '제임스 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무대 위도 아닌 거리에서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고 있었는데도, 곧은 자세에서 노련한 발레리노의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운동선수나 무용가, 오랫동안 악기를 다뤄온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다만 서 있는 자세에까지 각인됐을 그 인고의 시간을. 몸에 해는(!) 끼쳐 봤어도, 다듬어본 적은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그 고통의 결과물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경한다.


둘째를 낳고 100일이 되기 직전, 그런 내가 운동을 시작했다. 둘째를 가졌을 때부터 결심했던 일이다. 내 삶에서 임신과 출산을 끝낸 뒤에는 반드시 내 몸을 살피리라! 내 몸을 살피는데 돈을 아까워하지 않으리라! 직장인이 된 뒤 수영, 요가, 필라테스 등을 배워봤지만 한 번에 석 달 이상 다닌 적이 없었다. 뭐든 화르륵 불타오르고 금방 식어버리는 성격 탓이 컸다. 남편 추천으로 집 근처 소규모 PT샵에 등록했다. 둘이 번갈아가면서 수업을 듣고 번갈아가며 운동을 하기로 했다. 운동 무식자인 나는 PT라 하면 기구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 정도로 알았는데, 생각과 달랐다. 근막 푸는 법만 며칠을 배웠다. 필라테스를 찔끔 배워봤을 때 봤던 여러 소도구들 다양하게 활용해 몸의 이곳저곳을 풀어줬다. 그렇게 나도 헬린이가 됐다.


문제는 약 40년(약 40년이다. 약.) 가까이 방치된 내 몸뚱아리였다. 뭐 하나 할 때마다 '몸이 그지라서요...'라는 변명이 절로 나왔다. 특히 둘째 출산 후 생긴 중둔근(엉덩이 근육) 통증이 몸을 더 움츠리게 만들었다. 처음 *원레그 데드리프트를 시도할 때는 거의 재활훈련 수준이었다. 선생님이 '잡아드릴게요! 제 몸에 기대세요!'라고 했는데 기대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선생님한테 걸쳐져 있었다. 다행히 우리 트레이너 선생님은 나보다 먼저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본 인생 선배셨다. 나라도 포기했을 것 같은 나를 끝까지 붙잡아 주며 '해 봐서 알아요, 힘든 거 알아요' 라 응원해줬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정신이 혼미하고 그냥 온몸이 아픈데. 2주 뒤면 좀 낫고 한 달 뒤면 더 낫고 두 달 뒤면 더 낫다는 쌤 말에 달력에 2주, 4주, 8주를 표시해놨다. 그리고 빼먹지 않고 운동을 나갔다. 그렇게 10주가 지났다.


운동 초반에 시도한 짐볼 원레그 데드리프트. 자세를 잡은 게 아니라 다만 '시도'만 했을 뿐인데도... 산발한 머리에서 느껴지듯 영혼은 가출한 상태다.


* 원레그 데드리프트 (사진 참고하면 큰일 남)

한 다리로 체중을 지탱해서 하는 중둔근 운동. 중둔근은 물론 코어 근육까지 잡혀 있어야 가능한 동작.



체지방에서 3.3kg을 빼고, 근육량은 1kg 정도 늘렸다. 체지방률은 이제 겨우 20%대에 들어섰다. 고작 근육량 1kg을 늘렸을 뿐인데 몸이 너무나도 가볍게 느껴졌다. 늘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는데 탄력이 생기니 가뿐해진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몸을 놀릴 줄 안다'는 자체가 좋았다. 지난 10년간 집에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폼롤러나 짐볼을 이용해 뭉친 부분을 풀고 간단한 근력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할 수 있다는 게, 할 줄 안다는 게 무척 신났다. 평생 따라다닐 것 같은 엉덩이 근육 통증도 거의 사라졌다. 전에는 뀨가 달리기 시합을 하자 그러면 한숨을 쉬며 뛰는 척만 했는데 이제 먼저, 망설임 없이 뛰었다. 뛸수록 활력이 돌았다. 몸을 움직인다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몸 근육은 고작 1kg 늘었을 뿐인데 마음 근육은 3배쯤 더 단단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운동을 해보려 한다. 마의 석 달을 넘어서 몸과 마음의 근육을 계속 키워봐야지. 존경스러운 그분들처럼은 못 되겠지만, 열심히 한 흔적 정도는 남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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