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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May 06. 2021

석 달 한 운동을 일주일 쉬었더니

알량한 흔적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이번' 운동의 마의 석 달이 채워졌다. 전통요가, 핫요가, 그냥 요가, 필라테스, 수영, 피트니스 센터... 직장인이 된 뒤 내 돈 내고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 다수가 그렇게 석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그나마 모두 아이를 낳기 전- 전생 때 시도했던 운동이다.) 화르륵 타오르고 금세 식는 성격이 문제였다. 수시로 인사를 내며 일하는 장소도, 시간도 바꿔버리는 회사는 언제든 운동을 그만둘 좋은 핑계를 만들어줬다. 거쳐가는 과정도 대체로 비슷했다. 문득 꽂힌다->열심히 검색해본 뒤 다닐 곳을 정한다->신이 나서 찾아간다->너무 재밌다->운동복이나 신발, 소도구 등을 구입한다->점차 시큰둥해진다->하루 건너뛴다->유야무야 가지 않는다. 


이번 운동만큼은 기필코 마의 석 달을 넘겨 내 몸에 무언가를 남기리라 다짐했지만... 의지와 달리 이번에는 부상(?) 때문에 운동을 쉬게 됐다. 아기를 안고 있는데 갑자기 '빠직' 하고 가슴 앞부분이 뻐근하게 아팠다. 특히 깊이 숨을 쉬거나 재채기를 할 때 견딜 수 없이 아팠다. PT 선생님이 '늑간근 통증'으로 보인다며 당분간 운동은 쉬고 집에서 스트레칭을 열심히 하라고 했다. 아 왜 하필 딱 석 달째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간 만든 알량한 근육의 '흔적'들이 다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 쉬었더니 역으로 지난 석 달의 변화를 알게 됐다. 운동을 안 하니 일단, 배가 안 고팠다. 지난 석 달 동안은 어찌나 허기가 지던지 운동하고 집에 와서는 바나나도 먹고, 아몬드도 먹고, 토마토도 먹고 그러고 나서도 저녁 먹기 전까지 생당근이나 오이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점심은 샐러드를 먹겠다면서 풀과 각종 재료를 산처럼 쌓아서 먹었고, 저녁은 밥 절반을 덜고는 단호박을 비워진 밥 이상 채워놓고서 '와구와구' 먹었다. 억지로 운동을 일주일 쉬기 전까지, 허기가 지는 게 운동 때문인지 잘 몰랐다.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서 출산, 수유와 연관된 허기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운동을 쉬니 밑 빠진 독 같았던 배고픔도 사라졌다.


그다음 느낀 변화는 내가 다시 집 청소를 한다는 거였다. 근육을 괴롭히는 높은 강도의 운동을 쉬었더니, 몸을 움직일 여력이 생겨났다. 반대로 말하면, 운동을 열심히 하던 지난 석 달 동안 나는 청소조차 못할 만큼 지쳐 있었다. 처음 근력 운동을 하고 집에 왔을 때 잠이 견딜 수 없이 쏟아져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운동 관련 블로그를 읽어보니 근육이 상처를 입으면 이를 회복하느라 몸이 피곤하게 된다는 설명이 있었다. 운동 선생님도 원래 그런 거라고, 다만 갈수록 덜 힘들어질 거라고 했다. 내가 운동을 마치고 지쳐 늘어져 있으면 내 몫의 가사 노동 많은 부분을 우리 엄마가 채워주셨다. 죄송하고 민망한 상황이지만 엄마는 건강해지는 딸의 모습이 좋다고, 그래서 괜찮다고 하셨다. 죄송하고 민망했다. 


선생님 주문과 달리 나는 일주일 동안 스트레칭은커녕 숨쉬기를 넘어서는 어떤 운동도 하지 않았다. 38년간 근육이란 존재를 인식하지 않고 살아왔기에 석 달의 운동 습관 따위는 일주일 만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쉽게 옛날로 돌아가는구나 싶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다짐하게 됐다. 끝없이 배가 고파도, 아무것도 못 할 만큼 피곤해도, 죄송하고 민망해도- 운동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잠시 쉬어도 사라지지 않을 흔적이 새겨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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