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내가 두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 이유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by 리니아니


10여 년전 처음 세종에 이사왔을 때 이곳은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었습니다. 아파트 단지가 두어군데 있었을 뿐 그 외에는 작은 슈퍼나 편의점 조차 찾아볼 수 없었고 도시 전체가 공사현장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환기를 시키려고 창문을 잠시라도 열어 놓으면 어느새 거실 바닥에 뿌연 먼지가 가라앉았습니다. 신도시의 도로나 기반 시설들도 준비중이었고 아이들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인프라는 언제 갖추어질지 예측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을 찾아 인근 도시로 나가야 했고 매주 한 번 이상은 장을 보기 위해 차를 타고 대전까지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밤이 되면 불빛 하나 없이 적막한 도시가 삭막하게만 느껴졌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이사를 나가야 할지 매일 고민이 되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수도권의 좋은 인프라를 뒤로하고 이곳에 와서 우울증에 걸려 고생한다는 이야기들도 종종 들렸고, 실제로 학원 하나 없는 도시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시킬 수 없다며 다시 살던 곳으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정말 살기 좋은 동네가 되었지만 그당시를 추억하면 어떻게 지내왔나 싶을 만큼 막막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세종시는 애초에 행정 중심지로 계획된 도시였기 때문에 초창기 이주 공무원들에게는 여러 혜택을 주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단지가 서둘러 조성되었고 실제로 다수의 공무원들이 직장때문에라도 세종시로 이사를 했습니다. 게다가 정부의 다양한 홍보 전략 때문이었는지 인근 대전이나 청주 등에서도 신도시인 세종으로 이사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도시의 인프라는 전혀 없는 상황인데 수천 세대가 넘는 인구가 갑자기 몰려드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학교가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보통의 신도시는 아파트 단지 한 두개에 학교를 하나씩 품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일곱개 단지를 통틀어 단 한개의 중학교와 두개의 초등학교 밖에 없었습니다. 마을 인구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그마저도 남아 도는 상황이었지만 갑자기 불어난 인구 때문에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큰 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었는데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학교 부족으로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날마다 화난 부모들이 학교의 강당으로 모여들었고 일주일에도 몇 차례씩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결론이나 해결 방안도 없는 토론과 논쟁이 계속되었고 아무런 대책도 없는 교육부 관계자들로 인해 분을 참지 못한 학부모들은 공청회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지르는 일들도 비일비재 했습니다. 당장 중학교 하나를 더 지어야 수용이 가능한 아이들의 숫자를 강제로 줄일 수도 없는 일이고 학교와 교육청에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날마다 빗발치는 학부모들의 항의와 당장 입학식을 앞둔 학교의 긴급한 상황은 가뜩이나 삭막한 도시의 분위기를 더 삭막하게 만들었습니다. 학교는 결국 궁여지책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밖에 없었고 세 가지의 해결안을 학부모들에게 제시했습니다. 첫번째는 운동장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서 교실로 사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는 아이들을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자는 것이었고 마지막 세번째는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인근 도시인 조치원이나 공주에 남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생들은 두 개 학년을 고등학교의 남는 교실로 보내 수업을 하게 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둘째 딸아이는 그렇게 매일 인근 고등학교로 등교를 했고 엄마들의 불안한 마음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다른 방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학교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세종시로 위장 전입을 한 세대가 혹시라도 있는지 가려내기 위해 불필요한 가정 설문 조사를 자주 했고 부모들의 걱정과 불쾌함은 그럴 수록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신도시 생활의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지만 막상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그렇게 열악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공립학교가 부족해서 운동장에 컨테이너를 설치해야 할 정도라면 문제도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컨테이너 박스에 아이들을 넣을 것인지 공주나 조치원으로 매일 버스를 태워 보낼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오후반도 감수하고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낼 것인지 정말 큰 고민이 되었습니다.


설문지 문항 세가지 중에 하나를 체크해서 학교로 돌려보내야 하는데 세 가지중 어떤 항목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공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처음으로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대안은 없는 걸까?’ ‘왜 이런 상황에서조차 부모들은 목소리를 높여가면서 굳이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 속으로 아이들을 집어 넣지 못해 안달인 걸까?’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게 되면서 저는 공립학교가 아니더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분명 더 좋은 교육의 길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홈스쿨링을 할까도 고민했지만 일을 해야 하는 저로서는 집에서만 아이들을 데리고 있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여러 생각과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분명 공립학교 보다 좋은 교육의 환경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대안학교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 대안학교의 정보를 찾던 중에 금산에 있는 ‘별무리학교’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대해 소개된 글을 읽다보니 예상치 못하게 공립학교의 교사들이 세운 학교였습니다. 보통 대안학교라고 하면 종교단체에서 세우거나 교육에 뜻을 품은 개인 설립자가 세우는 곳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저에게 학교 선생님들이 세운 학교는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과연 어떤 학교일까라는 궁금증이 더해졌습니다. 알고보니 교사 선교회라는 수십년 이상된 국내 기독교 선교단체가 있는데 그곳에 소속된 공립학교의 교사들이 20년 전부터 기도하고 준비하고 세운 학교가 금산의 별무리학교였습니다.


어렴풋이 예전에 다니던 교회 목사님이 설교시간에 소개한 학교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그 주 주말에 곧바로 아이들을 데리고 금산으로 향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큰 딸과 2학년 작은 딸은 멋도 모르고 따라 나선 나들이가 신나기만 했던 모양인지 연신 차속에서 웃고 떠들고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 소리를 들으며 시골길을 달리는 동안 저의 마음도 왠지 모르게 고요해지고 평온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와서 돌아보니 그날의 그 기분 좋은 나들이는 우리 아이들이 공교육의 울타리를 넘어선 첫발걸음이 되었던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학교가 있는 마을에 가까워 질수록 강한 호기심과 알수 없는 이끌림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어떤 학교 이길래 공교육의 교사들이 교사직을 포기하고 이런 산골에 학교를 세운 것일까?’ 다음세대를 위한 참교육에 뜻을 품고 교육의 길에 헌신하는 교사들이 세운 학교라면 우리 아이들을 믿고 맡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슬며시 들기 시작할 무렵 산어귀에 작은 이정표 하나가 보였습니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구불구불한 비포장 도로 산길로 올라가라는 표지판이었습니다. 지금도 십년 전 그날에 나무로 된 표지판을 처음 봤을 때의 반가움과 묘한 기분을 기억합니다. 길위에 돌이며 흙먼지며 자연 그대로의 산길을 따라 오르던 그 길위에서 왜 그랬는지 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마치 아무도 모르는 보물을 곧 찾아낼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었습니다. 헌신된 교사들이 세운 교육 공동체가 앞으로 우리 아이들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이 될지 그 때는 알지 못했지만 10년이 흐른 지금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날의 그 기분좋은 예감은 정확했다고 말입니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마음 가득 벅찬 감동이 밀려옵니다. 한참을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갑자기 눈앞에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동화속 마법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 산꼭대기에 예쁜 집들이 아름드리 마을을 이루고 있었고 마을 한가운데 작은 학교가 보였습니다. 30 여채 되는 주택들은 비슷한 듯 제각각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이런 마을이 있을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터라 한순간 넋을 놓고 풍경에 빠져들었습니다. 적당한 길가에 차를 세우자 그렇지 않아도 신난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자 마자 토끼처럼 뛰어다녔습니다. 신선한 공기와 풀내음 만으로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학교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선생님 한분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미리 상담 예약을 위해 전화를 드렸던 터라 선생님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 같았습니다. 행정실 옆에 책상 하나 겨우 들어갈 작은 공간이 교장실이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큰아이를 위한 상담을 했습니다. 학교가 설립되게 된 배경을 설명해주시고 교사들의 마음가짐이 담긴 소책자도 한 권 주셨습니다. 학교의 교육 철학을 듣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미리 준비해간 질문들은 하나도 할 필요가 없어졌고 정말 기가막힌 보물을 찾아냈다는 생각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도 학교와 마을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표정과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보였습니다. 그 다음주에도 학교가 있는 마을이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가 이듬해 7학년으로 대안학교에 입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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