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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04 숲속의 예술가들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예술가를 품고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억압 속에서 피어나는 예술성도 이따금 존재하겠지만 대부분은 아이들은 자유로운 환경속에서 마음껏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때 내면의 예술성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대안학교에 적합한 아이들은 예술성이 있는 아이들이라고 단정짓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두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오랫동안 학교의 많은 아이들을 관찰해보니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예술적인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적합한 것이라기 보다는 대안학교의 특별한 교육환경이 아이들 각자의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던 예술성을 드러내게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비단 예술적 감각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내면의 강점과 재능을 발견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도, 춤을 잘추고 노래를 잘하는 아이들도, 글쓰기나 악기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도, 또한 집을 짓고 건축을 하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도 모두 대안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자신들에게 그런 재능이 숨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대안학교에서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감각들을 표현하고 드러내다 보니 외부에서 바라봤을때 마치 예술성이 다분한 아이들이 대안학교에 잘 맞는 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대안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예술 중심의 교육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일반 교과 과정을 포함해 프로젝트와 동아리 활동 체육활동 진로 탐색 활동 등으로 아이들의 일과는 분주하지만 아이들에게서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악기를 연습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교과서가 아닌 책에 몰두해 있을 때 그것을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거나 입시공부를 해야한다며 못하게 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저의 큰 딸아이처럼 6년 내내 줄곧 기타연주만 하는 아이가 있다 하더라고 격려하고 응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흥미로운 분야를 마음껏 탐색해 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고 또 여러 분야를 시도해 보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적성과 맞는지 맞지 않는지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더 많은 배움을 위해 대학의 관련학과에 진학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성적을 맞춰서 대학을 고르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대안학교의 아이들은 그래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합니다. 중학교때까지는 여러 분야를 탐색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분위기라면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 부터는 본격으로 자신의 적성과 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아집니다.


필수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택과목과 프로젝트와 동아리 활동도 결국은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확인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고 선배들의 앞선 모습을 보며 자신의 길을 가늠해 보기도 합니다. 해마다 졸업생들의 비율을 보면 음악이나 미술 건축 디자인 등의 분야로 진로를 정하는 아이들이 10~20%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저의 딸아이도 그중 한명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처음에 아이가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을때 솔직한 마음으로는 말리고 싶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 마음속에 음악이나 예술은 취미로만 하는 게 좋다라는 편견이 가득했던 때입니다. 아이가 꿈을 찾고 적성을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축하해야될 입장인 제가 반대하고 나서는 웃지 못할 대치상황이 한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교육을 떠나 대안학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그간에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기타 연주와 음악 공부를 왜 반대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도 없이 그저 예전의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을 떨쳐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대안학교에 입학한 7학년 때 선물로 받은 기타를 처음으로 품에 안아본 이후 줄곧 기타 연주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이가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면 단순한 기술을 넘어 감성이 묻어나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마음 안에 그런 감성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해리포터 이후로 아이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무언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아니 해리포터는 이제 비할바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아이가 훗날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과 악기 연주를 하면서 행복해 하는 아이가 좋아보였고 특별히 학원에서 배우는 것도 없이 기타를 잘치는 아이가 기특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공은 또다른 문제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처럼 어릴때부터 전문가에게 음악을 배워본 적도 없는 아이가 단순히 즐거움과 취미로만 연주해 오던 실력을 가지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이후에 음악으로 진로를 잡고 살아가는 일이 엄마로서는 막연하게 생각되기만 했던것 같습니다. 게다가 대안학교의 2기인 아이에게 마땅한 선배 롤모델도 없던 상황이어서 불안함은 더 가중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진로문제에 있어서 그당시에 정말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물론 반대하는 제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안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본래 아이의 성향대로 꾸준히 음악에 대한 고집을 지켜나갔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는 아이에게 그때 고집을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골똘히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버클리음대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는 아이가 처음 기타를 잡기 시작한 7학년 부터 이제까지 음악을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계속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의 교육환경 때문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아이가 다녔던 대안학교의 환경이 제공해준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의 교육과정은 어떤 의미에서는 잘 차려진 밥상 같기도 했고 언제라도 아이들 스스로 더하거나 뺄 수도 있는 레고블록 같기도 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큰딸아이는 잘 차려진 밥상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골라 먹었고 거기에 열심히 자신의 블록을 하나씩 쌓아갔습니다. 학교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바이올린 연주도 계속했고, 음악 공연이나 대회가 열리는 때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즐겁게 참여했습니다. 학교의 행사때마다 앞에 나가서 연주를 하는 것으로 친구들과 행복한 추억을 쌓았고 단짝 친구와는 듀엣을 이루어 노래하고 연주한 영상을 꾸준히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기타를 품에 안고 즉석해서 작사 작곡을 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들의 특징을 담은 주제곡을 만들어서 선물해 주기도 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의 아기가 태어났을 때에도 노래를 만들어 선물해 주었고 그 노래가 한때 교내 빌보드 차트에 몇주간 1위를 차지하면서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음악과 함께하는 학창시절은 아이에게도 큰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크고 작은 행사와 축제에서는 아이의 독주가 빠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이 되는 연주를 하기 위해 같은 곡을 수십번 수백번 연습하는 아이를 보면서 놀라웠습니다. 공부는 억지로 시켜도 악기연습은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악기 연주가 쉽지는 않았을텐데 아이가 정말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 되었고 그런 아이의 모습 속에서 엄마인 저의 눈에 딸아이의 음악에 대한 고집과 신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음악을 전공해도 좋다는 말을 아이에게 했을때 빛나던 눈빛과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반대자의 입장에서 적극적인 지지자와 찬성자의 입장이 되자 아이는 말그대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 11학년 부터는 다니고 싶다는 음악학원도 보내주었고 5년 동안 품에 안고 살던 10만원 짜리 중국산 악기도 전공생들이 연주한다는 좋은 악기로 바꿔어 주었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악기를 사주던 날 저는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할 아이에게 괜한 노파심에서 한마디 건내었습니다. “이왕에 하는거 정말 열심히 해야돼” “엄마, 나 진짜 열심히 할거야” 여기까지가 숲속 마을에서 6년 동안 마음껏 뛰어 놀던 딸아이가 재즈 뮤지션이 되는 첫발걸음입니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아이들 내면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끌어내주는 것이 교육의 힘이라는 것을 저는 몸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수십년을 받아온 교육도 그리고 현재까지도 수많은 교육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육도 아이들의 내면의 힘을 끌어내기보다는 밖의 것들을 집어 넣으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때가 많습니다.


저는 교육자도 아니고 교육학자도 아니지만 자녀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는지에 따라 아이들의 삶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주는 영향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간혹 농담삼아 학교의 부모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를 하나 더 낳으면 꼭 이 학교에 다시 보내고 싶다는 말입니다. 저또한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더라도 대안학교에서 교육을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지혜삼아 더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의 기회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공교육만이 정석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대안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도 그리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길에서 방황하는 아이들도 학교밖 청소년 이라는 타이틀로 분류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선택한 교육의 길을 가고 있는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개인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 분위기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부모들과 아이들이 더 자유롭게 교육의 방향을 선택하고 꿈을 찾아 노력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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