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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05 대학은 안가도 된다? 대학은 천천히 가도 된다!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봄이 되면 학교가 있는 산속 마을 전체가 연두빛 풀향기로 가득했습니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은 언덕위로 아이들 웃음소리가 묻어나 있는 듯했고 이따금 학교에 방문할 때면 아이들이 밝은 얼굴로 달려와 인사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맑은 아이들의 표정이 좁고 답답한 학원 교실안에서 그리고 문제집을 마주보면서 시들어갔을 생각을 하면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많았습니다. 큰아이가 7학년에 입학한 후 3월 한달 동안은 동아리도 정하고 매일 아침 시간 담임 선생님과 양육시간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아침 독서 시간에는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읽었고 뒤이어 묵상 시간에는 말씀 저널쓰기를 했습니다.


매주 반마다 요일을 정해 저녁시간에는 다큐나 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감상평을 썼습니다. 아이들이 봤던 다큐나 영화들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스텐리의 도시락> <메타인지> 등이 있었는데 부모님들에게도 감상평 쓰기 과제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부모들도 대부분 열심히 과제를 했습니다. 학교 홈페이지에 마련된 부모를 위한 카테고리에는 독서감상평이나 강연회를 듣고 난 후기등이 올라왔습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학부모 학점제라는 것이 있는데 일정 점수 이상 학점을 이수해야만 아이들의 성적표에 Pass 라고 기재가 됩니다.


이렇게 학교에서는 부모들을 위한 교육과 강의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주었습니다. 주중에 아이들이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는 동안 가족간의 대화는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주말에 양질의 시간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야 하는 것은 대안학교의 부모들이 특별하게 신경써야할 필수적인 일이었습니다. 평상시에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관계였다면 큰 노력없이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보통은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할 시기였고 부모들 역시 아이들이 어릴때와는 또다른 대화법을 배우고 연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러한 시기의 부모들에게도 필독서나 영화 다큐 프로그램들을 추천하고 자녀교육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현재는 부모멘토링이나 부모 강좌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지만 10년전 당시에는 전체 학생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 교육을 위한 컨퍼런스와 같은 학교에서 제공하는 기회들을 잘 활용하면 배울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학교가 추천하는 부모 필독서나 강연회등을 통해 20년 가까이 공교육을 받으며 굳어졌던 교육에 대한 저의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깨우치고 참교육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해맑은 모습으로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은 일이고 만족스러운 일이었지만 저를 포함해 대안학교를 보내고 있는 많은 부모님들의 마음속에 좀처럼 내려놓기 힘든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학이라는 문제였습니다.


총회나 컨퍼런스에서 교장선생님의 교육철학에 대한 강의를 들을 때면 참교육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고 내가 아이들과 함께 좋은 학교에 참 잘 찾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마음 가득 들었지만 집으로 돌아가 다시 시간이 흐르면 입시공부 걱정이 늘 머리속에 맴돌았습니다. 수능이든 내신이든 국영수 과목에 대한 절대적인 학습 시간이 필요한 것이 사실인데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공부를 안해서 과연 대학에나 들어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오기 시작하면 주말에 여지없이 문제집을 꺼내들고 아이를 책상앞에 앉혔습니다. 일주일 내내 기숙사와 학교에서 바쁘게 지낸 아이의 피곤함은 아랑곳 없이 잔소리로 우선 기선제압을 하고 영어든 수학이든 문제집 몇장이라도 풀게 해야 안심이 되었던 때도 많았습니다.


오랜 시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상자와 같은 세계관이 흔들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는 매우 불편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학교의 교육의 방향을 인지하고 또 다양한 책을 통해 자녀 교육의 본질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것들은 하나같이 맞는 말들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위주의 교육제도와 대학이 인생의 목표처럼 굳어져 있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야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다 가는 대학을 우리 아이가 못가면 어쩌나라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대학입시 공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은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갈등은 비단 저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에서는 누구라도 먼저 입시에 대한 걱정을 토로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학교의 교육철학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실천하려고 애쓰는 부모님들이 계셨습니다. 1기의 부모님들 중에서 그런 분들을 만날때면 제 마음속에 다시 한번 도전이 되었습니다. 입시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게 하고 의미있는 학창시절이 되게 하려면 먼저 부모의 중심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제 스스로가 중심을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마음속에 입시와 대학교육에 대한 고민과 갈등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말로는 아이들에게 학교와 동일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동안 말과 생각을 바꾸는 연습을 하다보니 실제로 아이들이 생활하는 학교에서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훨씬 더 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시준비 이전에 먼저 아이들에게 중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일에 몰두하는지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일이 더 필요한 일인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주변에는 아이들에게 공교육을 시키는 부모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종시가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 아이들의 학교에 세종 지역은 우리 가정밖에 없었기 때문에 특별히 같은 학교의 부모들을 찾아가서 만나지 않는 이상 지인들 대부분은 공립학교에 자녀들을 보내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지인들과 어쩌다 아이들 학교 얘기를 하다보면 호기심어린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용기있는 결단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특이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분의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말을 했다고 이해하지만 어쨌거나 대안학교에 아이들을 보낸 제가 그분들에게는 독특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분들의 생각은 한결 같았습니다. 대안학교의 교육의 방향은 좋은 취지인 것은 분명한데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보낼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공립학교 부모들에게는 교육에 대한 전통의 가치관을 고수해야 하고 사회 속의 공동의 합의를 깨지 않아야만 아이들의 미래를 보장 받을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대다수 부모들의 신념이 모여 우리나라의 입시교육을 절대 흔들 수 없는 굳건한 주춧돌이 되어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엄마들의 말을 들을 때면 왠지 불편하고 불안함도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가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용기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 수록 대안교육은 참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정해진 코스처럼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는 것보다는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꿈을 찾아 가는 편이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분명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에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대학입학이라는 것이 저와 아이들의 행복한 학교 교육의 발목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딸아이 혼자 세종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세종 지역에서만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이 같은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자녀교육의 관점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심지어 냉소적이었던 주변의 지인들 중에 우리 아이들의 학교를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저에게 전화를 하거나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여러 명 있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실감하는 때입니다. 전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 보이던 백년의 우리나라 입시교육제도가 고교학점제나 자율학기제 등으로 점차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만 봐도 변화의 속도를 실감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그렇듯이 교육에 있어서도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에게 맞는 교육이 공교육 일수도 있고 홈스쿨링 일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아이도 부모도 좀더 여유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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