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아, 빨리 학교 가고 싶다!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제 인생에 가장 길었던 일주일을 꼽으라면 아마도 큰 아이의 입학 첫주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 하루가 느리게만 흐르던 한 주가 지나고 금요일이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들뜬 기분으로 스쿨버스가 정차하는 대전복합터미널에 일찌감치 도착해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오후 한시가 가까워지고 노란책 버스가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이 저마다 큰 가방을 하나씩 들고 버스에서 내리기 시작하더니 캐리어까지 끌고 다음 버스를 타기 위기 터미널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곧 딸아이 모습도 보였습니다.
아이의 얼굴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는 볼 수 없던 밝은 표정으로 걸어오는 아이를 보니 걱정했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고 안도감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 처음 기숙학교에 들어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피곤할 법도 한데 아이의 얼굴을 어느 때보다 밝았습니다. “재미있었어?” “응, 완전, 아.. 빨리 학교가고 싶다” 일주일만에 만난 아이가 차에 타자마자 저에게 했던 말은 다시 학교에 가고 싶다는 말이었습니다. “방금 스쿨버스에서 내렸는데 빨리 학교 가고 싶다고?” “응, 학교 너무 재밌어 엄마” 집을 떠나 가족들이 그리웠던 마음보다 학교가 더 즐거웠던 것이 분명했습니다.
마음에 안심이 되기도 했고 동시에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큰 아이라 더 그랬는지 유독 엄하게 키워왔던 저의 모습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일주일 만에 본 아이의 얼굴은 꽃이 피어나는 듯 했습니다. 집으로 오는 차 속에서 조잘조잘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들을 이야기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대안학교에 보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나 단체 생활을 힘들어 할까 염려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학교를 즐거워 하고 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잘 적응해줘서 고마웠습니다. 특히 친한 친구와 함께 입학을 했던 것도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모든게 낯설기만 했다면 지금처럼 편안한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 텐데 친구와 서로 많은 의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매주 금요일 마다 아이를 데리러 터미널에 갔습니다. 아이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집으로 올 수 도 있지만 차 안에서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도 무거운 캐리어와 가방과 기타까지 들고 버스를 타는 것보다 엄마가 터미널로 와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아이가 매주 스쿨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얼굴이 조금씩 더 밝아졌습니다. 혹시 정말 마법학교에 다녀온게 아닐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정도로 아이는 계속해서 조금씩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제가 수십년 동안 가지고 있던 학교에 대한 고정관념도 하나 둘씩 바뀌어 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저의 학창 시절 기억을 되짚어 보면 학교가 즐거웠던 날은 소풍가는 날이나 운동회 날 빼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가기 싫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냥 다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학교라는 곳은 재미있다기 보다는 의무적으로 다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학교를 왜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한점의 의심이나 생각도 없이 학교를 다녔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소위 선생님의 주목을 받는 문제아도 아니었습니다. 학교가 재미있는 곳이고 하루 빨리 가고 싶은 곳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이를 통해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학교가 즐거운 곳이라는 생각 자체가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처럼 다가왔습니다. 세대 차이에서 오는 문화적 충격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학교가 이렇게 재밌고 즐거운 곳이라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배움 역시 즐거울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7학년 신입생들의 시간표는 생각보다 빡빡했습니다. 기숙사에서 나와 아침식사를 끝내면 8시부터 하루 일과가 시작됩니다. 맨 처음 하루를 여는 시간은 아침 독서 시간입니다. 30분 간의 아침독서가 끝나면 하루의 계획을 세우며 양육 선생님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선생님은 그 시간에 아이들의 상태를 유심히 살핍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는 없는지 친구들과 관계가 어려운 아이는 없는지 밤새 기숙사에서 잠은 잘 자고 나왔는지 등을 세세히 관심을 가지며 아이들과 대화를 합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아이들이 단체 생활을 하는 것은 많은 관심과 돌봄이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각 반에 담임 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생활의 면면을 꼼꼼하게 늘 체크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운영하는 밴드는 부모님과 교사들의 소통이 창이 되어주었습니다.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들이 번갈아가면서 아이들의 공부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올려주셨습니다. 밴드에 올라온 사진들을 보면 아이가 한층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혹여라도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교사들은 곧바로 부모에게 연락을 했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의 각별한 돌봄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면서 지내다 보니 마치 아이를 저보다 선생님들이 더 많이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일주일 중 5일은 학교에서 생활하고 이틀을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에게는 담임선생님이 곧 엄마였고 아빠였습니다. 학기 초에 한번은 딸아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반에서 반장 선거를 하는데 자기도 반장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후보로 나온 아이가 자기보다 모든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에 자기는 반장 선거에 나가도 분명 떨어질 것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마음으로는 몹시 반장 선거에 나가고 싶은데 상대방 후보를 보면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아이의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도전해보라고 해야되는 건지 아니면 괜히 반장 선거에 나갔다가 아이가 자기의 생각을 확신하게만 되는 결과를 보게 되지는 않는건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런 솔직한 마음을 표현해준 아이가 고맙기도 했지만 걱정은 여전히 마음에 남았습니다. 실패해도 경험이 되는 것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지만 아이가 혹시나 자존감을 잃어버릴까 부모 입장에서 걱정부터 되었습니다. 반장이 되고 싶지 않다거나 관심이 없다면 큰 문제될 게 없을 텐데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가 반장을 하고 싶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기도 했고 엄마 입장에서 어떻게 아이를 도와주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선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로 이런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말한 강력한 반장 후보 친구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목소리도 호탕한데다가 유머감각도 있어서 친구들이 주변에 늘 모이는 아이였습니다. 활동 반경이 넓어서 간혹 의도치 않게 친구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중학교 1학년인 7학년들의 눈에는 누가봐도 리더십 있는 아이로 보이는 친구였습니다. 반면에 우리 아이는 전형적인 내향성 기질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도 있고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는데 그런 마음이 겉으로 쉽게 표현되지는 않는 아이였습니다. 반장 선거 이슈로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저는 솔직한 마음을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아이가 자신감이 없는 것이 걱정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의 말을 가만히 들으시던 선생님이 저에게 아이만이 가진 장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학교에서 단체 생활을 하다보면 크고 작은 그룹 활동이 이루어 지고 아이가 얼마든지 자신의 바라는 바와 리더십을 다른 모습으로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 많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그 말씀이 정말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반에서 반장이 되어 친구들 앞에 두드러지게 서야만 자존감이 올라간다는 것은 저만의 오해와 편견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선생님은 저와의 상담 이후에 아이와도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아이의 속마음을 알고 계신 선생님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설명하셨고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그 상황을 바라봐야 하는지도 설명해주셨습니다.
반장 선거의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도 아니었고 강력한 후보로 생각했던 그 친구도 아니었습니다. 다른 두 친구가 각각 반장과 부반장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비록 반장이나 부반장이 못되었지만 이번 일을 통해 자신감을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학교생활은 여전히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사소한 듯 보여도 아이들에게 어쩌면 중대한 문제일 수도 있는 마음속 용기와 자신감에 대해 세심하게 살피고 상담해주신 담임선생님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또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해준 아이도 고마웠습니다. 가족과 같이 가까운 관계 속에서도 솔직한 마음을 서로 전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자칫 잘못된 가정을 하게나 오해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부모가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아이의 마음을 속단해 버리거나 부모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시도야 말로 아이와의 깊은 소통을 가로막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역시도 배워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부모와 교사가 함께 아이의 마음을 살피고 대화를 통해 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해줄 수 있는 교육환경이 무엇보다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이는 그토록 하고 싶었던 2학기 반장 선거에 재출마를 했고 반장이 되었습니다. 1학기 반장 선거에서 그렇게 자신감 없어하던 아이의 표정과는 달리 그간 부쩍 자라난 모습이 보여졌습니다. 대안학교의 교육환경이 아이들을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저의 생각이나 고정관념들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는 부모 자신이 먼저 성장해야 한다는 인생의 지혜도 함께 배워온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