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하는 기분으로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처음 별무리학교에 방문한 이후로는 주말만 되면 두 딸을 데리고 학교가 있는 금산으로 향했습니다. 세종에서는 한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주말 나들이를 가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였습니다. 공사장 흙먼지 가득한 신도시의 삭막함을 벗어나 학교로 향하는 시골길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습니다. 군데 군데 펼쳐진 작은 논밭과 개울가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는 들풀들까지도 학교로 향하는 우리의 기분을 한층 북돋아주었습니다.
지금은 마을 입구까지 널찍한 2차선 도로가 뻥 뚫려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좁고 구불구불한 산등성이 길은 자연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금산 톨게이트 가까운 곳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호떡집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사람들이 밖에서 줄을 서는 곳이었지만 꿀이 가득한 호떡을 한 입 베어물고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미소를 볼때면 줄서서 기다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뜨끈한 호떡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30여 분 정도 더 운전해 가면 학교가 있는 마을에 도착합니다. 마을 길을 올라갈때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학교를 만났다는 기쁨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마음껏 배우고 자라날 것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루는 문득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때부터 친했던 친구 생각이 났습니다. 언뜻 그 친구도 대안학교를 알아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서 그 친구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분은 저의 전화를 반색하며 그렇지 않아도 학교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했고 당장 그 주 주말에 두 집이 함께 마을로 출발했습니다. 그 친구의 엄마는 저보다 학교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딸아이도 친구가 함께 갈 수 있으니 금상첨화인듯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서 파자마 파티를 즐겨하던 두 녀석들의 소원은 매일 매일 파자마 파티를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두 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면 그 소원이 이루어 질테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기숙사 생활과 단체생활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도록 체험캠프를 열어주었습니다. 3박 4일간 재학생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똑같이 하는 캠프입니다. 딸아이와 친구는 나란히 체험캠프에 다녀왔습니다. 그러고는 학교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고 하루 빨리 학교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체험캠프 이후에는 선발캠프를 해야했습니다. 선발캠프는 일종의 입학시험 절차와도 같은 캠프인데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교사들이 각자 점수를 매깁니다. 전체 교사의 점수가 고르게 잘 나와야 합격이 가능합니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기 때문에 혹여라도 단체생활에 적응이 어려워 보이는 아이들은 입학이 어려울 수도 있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간절히 입학을 원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선발캠프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둘다 합격이 되었고 아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렸습니다. 그렇게 학교와 마을과 친해지고 또 체험캠프와 선발캠프까지 마친 아이들은 입학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 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마냥 들떠있는 아이와는 달리 입학날짜가 가까올수록 엄마인 저의 마음 한구석에는 전에 없던 허전함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한번도 떨어져 지내본 적이 없는 딸아이가 기숙사 학교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들었고 아이가 보고싶으면 어쩌나 하는 괜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아이가 학교를 너무 좋아했고 좋은 학교임이 분명했지만 기숙사에서 일주일 내내 지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엄마인 저의 마음이 심란했습니다. 이불이나 제대로 덮고 잘까라는 걱정부터 시작해서 오만가지 걱정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때면 아이에게 이런 질문 했습니다. “예린아 학교 좋아? 꼭 가고 싶어? 뭐가 그렇게 좋아?” 워낙에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아이지만 이번만큼은 명확했습니다. 학교가 너무 좋고 친구랑 빨리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도 해리포터처럼 호그와트 기숙학교에 입학하는 게 꿈이었고, 친구와 매일 파자마 파티를 하는 것도 소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초등학생 아이의 이유는 생각했던 것보다 단순 명쾌했습니다. 해맑은 아이의 대답을 들으면 그저 웃음만 나왔습니다. 아이가 얼만큼 해리포터의 덕후인지 아는 저는 학교의 기숙사가 아이에게 로망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한가지에 몰입하는 것을 좋아했고 또 하나에 꽂히면 누가 말려도 길게 꾸준히 하는 성향을 보였던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해리포터와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해리포터 책을 집어들고 밥먹을 때도 간식 먹을 때도 손에서 책을 놓는 날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루 종일 해리포터만 읽고 또 읽는 날들이 일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다 되어가는 6학년 무렵에는 슬슬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판타지 소설을 저렇게 3년 내내 주구장창 읽는 아이가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만 읽고 다른 책도 읽으라고 잔소리도 했고 손에서 책을 뺏어든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그 다음 자신의 몰입할 분야가 나타나기 전까지 해리포터와의 만남을 계속 했습니다. 나중에는 책을 거의다 외울 정도였고 소파에 누워 책을 펴면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으로 펼쳐지는 장면이 자신의 이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다행이 7학년에 대안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해리포터와는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대신 아이가 몰입한 한가지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기타입니다. 입학선물로 사준 빨간색 어쿠스틱 기타를 항상 품에 안고 살았습니다.
이따금 해리포터와의 옛정을 떠올리며 책을 들춰보기도 했지만 그전처럼 열정적인 독서는 아니었습니다. 대신에 자신의 열정과 사랑을 오로지 기타에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은 스물 셋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식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기타보다 더 몰입할 대상을 아직 찾지 못한 모양입니다. 아이는 행복한 대안학교의 생활을 마치고 미국의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습니다. 기타로 오디션을 봤는데 놀랍게도 장학금까지 받았습니다. 어려서 기타를 가르친 적도 없었고 입시를 위해 특별히 계획하고 준비한 것도 없었는데 기타를 더 배우고 싶고 잘 치고 싶다는 소망과 열정으로 버클리음대까지 들어갔습니다.
큰 아이의 대안학교 생활과 그 이후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감사와 감동도 물론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제 스스로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종으로 이사를 오게 된 이후 교육환경이 너무나 열악해서 찾아가게 된 대안학교에서 아이는 자신의 꿈을 찾았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노력하며 행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세종의 공교육 환경이 다른 도시들처럼 평범했고 학교가 부족하지 않았더라면 저도 별 고민없이 집 앞에 있는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냈을 지도 모릅니다. 아이도 다른 친구들 처럼 영어와 수학 학원은 한개씩 필수로 다녔을 테고 매번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공부와 학원 숙제로 밤 늦은 시간까지 재미도 없는 국영수 공부만 시켰을 지도 모릅니다.
그랬다면 아이의 꿈과 열정을 무엇보다 아이만의 특별한 재능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이는 학교를 다니던 내내 저에게 좋은 학교에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딸아이 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비슷한 감사의 말을 부모님께 자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에게 한가지 교육이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공부 스트레스가 없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것이 좋은 교육환경이 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지난 10년간 대안학교에서 교육시켜오면서 부모인 저는 교육의 힘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힘은 부모에게서 나오는 것도 교사의 지시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아이에게 맞는 적절한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었을 때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가는 힘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큰 지혜를 얻는 것과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주고 그 가운데서 스스로 찾아갈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해주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생각 이상의 것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이루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속도와 기질이 저마다 다르고 타고난 재능과 소질도 다른 아이들이 한 교실에 앉아 같은 교과서를 가지고 같은 시험범위의 내용을 공부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일도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기초 학습을 무시한다거나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대안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도 누구보다 열심히 독서해야 하고 필요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공부’ 그것도 국영수 공부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는 교육환경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역시도 지난 10년 동안 우리 아이에게 가장 맞는 부모의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 많은 부분 생각을 바꾸기도 했고 다듬어 가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간 저를 돌아봤을 때 대안학교에 아이를 입학 시켰다고 해서 바로 이전의 저의 생각들에서 벗어나 곧바로 방향전환이 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몇 해 동안은 여전히 전통의 교육제도에서 벗어났다는 불안함이 존재했었고 대안교육을 시키면서도 입시공부를 동시에 시켜야겠다는 욕심을 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입시교육과 대안교육을 분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교육의 힘은 대안학교에서 입시를 할 수 있다 없다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로 키워낼 것인지에 관해 고민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교육환경을 찾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고민해야 될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남들이 하기때문에 예전부터 늘 그래왔기 때문에 고민없이 인생에 중요한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다음세대인 우리 아이의 교육의 문제와 선택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비록 아이의 동기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였을지라도 부모의 철학의 중심이 확고하다면 그리고 성장할 의지를 가지고 노력 한다면 아이들의 삶에 마법과 같은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