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우리 아이들은 관계 속에서 행복한가요?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무엇보다 정서적인 안정감에 많은 관심을 쏟았던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행복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안정적인 마음상태와 만족감을 느끼면서 성장해 가는지 늘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좀 더 성장해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일상속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감정의 문제들을 얼마나 잘 다루어 가는지를 관심있게 지켜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앞으로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지적 능력이나 기술보다 정서적인 회복탄력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손에 뭔가를 소중하게 쥐고 있었습니다. 분홍색으로 된 하트모양의 종이였는데 위클래스 교실에서 받은 쿠폰이라고 했습니다. 쿠폰을 여러 장 모으면 선생님과 상담을 또 할 수 있어서 잘 모아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담임선생님에게 특별히 들은 말도 없었는데 혹시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위클래스에 보내진건 아닌지 싶어서 딸아이에게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밝게 웃으면서 그곳에 가면 우선 과자랑 사탕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면 마음이 시원해져서 자기는 자주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삭막한 학교생활 가운데 양호실을 오아시스처럼 찾는 느낌으로 아이는 위클래스의 문턱은 아무런 거부감 없이 드나들었던 것입니다. 딸아이에게 상담 선생님과 무슨 이야기를 주로 하느냐고 물었더니 친구들과의 관계 문제도 이야기하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린 아이도 상담을 통해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구나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엄마게 말못할 비밀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가서 하는 건 아닌지 라는 궁금증도 들었습니다. 어쨌거나 아이가 상담실을 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다린다는 것은 좋은일 같았습니다. 며칠 뒤 위클래스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서 여차저차 상황 설명을 하면서 혹시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상담 선생님은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고 저는 그때부터 아이의 정서와 마음 상태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했습니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에서 2017년에 조사한 어린이생각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행복을 느끼는 활동 1위가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갈 때라고 합니다. 64.8%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청소년 스트레스 실태 설문조사(2017 스마트학생복)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스트레스 원인 1위는 학업으로 50. 48%, 2위는 친구문제 15.34%, 그리고 3위가 가족 11,43%로 청소년 아이들의 고민의 대부분은 성적과 관계의 문제였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도 마찬가지였고 두 딸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며 자랐던 것 같습니다. 자칫 어른들의 관점으로만 보게 된다면 부족함 없이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가족 내에서나 친구관계안에서 겪는 문제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 세상에서 부딪히고 해결해야 하는 수많은 문제들에 비하면 아이들이 겪는 갈등이 어른들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라는 공부만 하면 되지 네가 뭐가 고민이야?” “해달라는 거 다해줬는데 뭐가 부족해서 항상 불만이야?” 평상시에는 이런 말들을 부모가 아이들에게 쉽게 하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부모의 컨디션에 따라 그리고 아이들의 반응에 따라 이런 말들이 쉽게 부모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유 역시 자녀와 부모간의 정서적 간극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영유아기의 아이들이 손에 들고 있던 장난감을 빼앗겼을 때 마치 세상을 모두 빼앗기는 충격과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른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청소년 아이들의 가족내에서의 갈등과 친구문제 그리고 성적문제는 그들의 삶을 암울하게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의욕과 의지를 꺾고도 남을 만큼 심각한 문제로 발전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공부보다는 마음과 정서 관리에 훨씬 더 신경을 써왔던 저 역시도 아이들이 성장과정에서 때때로 마주하는 좌절 앞에서 부모로서 무력함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누구보다 관계지향적 성향의 아이입니다. 친구들과의 관계를 정말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두루두루 친구가 많아 보였습니다. 이런 아이의 성향상 한 아이와 깊은 친구관계를 맺기 보다는 여러 명의 친구들을 다양하게 사귀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느 날엔 가는 반에서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한 친구와 서로 변치말자는 우정의 맹세를 했다고 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관계의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 전학온 친구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전학온 새 친구에 관심이 쏠린 딸아이가 그만 우정의 맹세를 망각하고 관계망을 넓혀가자마자 엄청난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두 아이 사이에 날선 말이 오고갔고 분위기는 정말 심각해졌습니다. 게다가 기숙학교라서 서로 24시간을 계속 함께 있어야 하니 서로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아이들이 겪었을 고통의 크기와 시간도 훨씬 더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며칠동안 지켜보시던 선생님이 적당한 개입의 때를 찾으시고는 두 아이를 한 교실로 불러서 대화를 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아이들끼리만 교실에 놓지 않고 선생님도 한 공간에 계셨지만 대화에 참여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울고 불고 서로 서운한 마음을 쏟아내던 두 여자 아이들이 몇 시간쯤 지나자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말씨가 부드러워지고 분노가 가라앉았을 무렵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들께 문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아이들이 드디어 화해를 시작했습니다. 곧 대화가 잘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문자를 받은 저와 상대방 아이의 엄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때가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몇 분쯤 지나자 사진 한장을 더 보내주셨는데 아이들이 기숙사로 들어가면서 칠판에 남긴 “선생님 사랑해요. 저희 다시 친해졌어요.” 라는 글이 큰 하트 안에 담겨진 사진이었습니다.
공립학교에서 20년이 넘도록 초등학교 아이들을 가르쳐오신 담임선생님의 노련함과 아이들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도와주시려는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성장과정에는 무엇보다 훌륭한 어른들이 필요하는 사실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아이들마다 성격과 기질이 다르고 같은 문제 상황에서도 반응하는 모양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어른들의 본보기와 멘토가 될 수 있는 어른들의 환경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합니다. 학교는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의 정서를 가꾸어가는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결국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고 자신이 감정을 이해하고 또 그로 인한 문제들을 다룰 줄 아는 아이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부모 역시도 먼저 그런 정서적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제 나름의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를 잘 해결했다고 해서 그 다음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관계의 문제는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인 부모들에게도 시시때때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들 앞에서도 의연하게 자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내면이 강한 아이의 밑바탕에는 자신을 끝까지 신뢰하고 사랑한 부모와 어른들의 정서적 지지가 변함없이 존재할 것입니다.
*참고 magazine bold journal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