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힘, 돈키호테력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감성 카피라이터이자 인문학 작가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를 읽고 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운 나머지 그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을 한 권도 빠짐없이 모조리 주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집으로 라면 박스만한 택배박스 두개가 도착했던 그날, ‘아뿔싸!’ 하고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건 그렇지 않은데 유독 책 앞에서만은 정신줄을 놓고 충동구매를 일삼는 저에게 광고 카피라이터가 맘먹고 추천한 책들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강한 유혹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많은 책들을 읽기도 했지만 그 일로 인해 <책은 도끼다>는 저에게 잊혀지지 않는 책이기도 합니다.
박웅현 작가는 오랫동안 창의력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한마디 키워드로 요약해서 그의 또다른 책 <안녕, 돈키호테>에 담았습니다. 그 키워드가 바로 ‘돈키호테력’입니다. 협업의 천재라는 별명이 붙을 그가 대표로 운영하는 광고 회사에서는 겉보기에 엉뚱해 보이고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일들을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그런 실험적이고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내린 결론은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는 힘이 바로 잠재된 창의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창의력은 돈키호테 처럼 용기와 고집을 가지고 끈기 있게 도전하는 ‘돈키호테력’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생각할수록 명확해지는 한 가지가 있었다. 창의력은 발상이 아니라 실행력이라는 사실. 생각하기는 ‘상대적으로’ 쉽다. 정말 어려운 건 그 생각을 실행하는 힘이다. 그 힘에는 반대를 무릅쓸 용기, 고집, 무모함, 끈기 등이 포함된다. 말하자면 돈키호테력이 필요하다” - <안녕 돈키호테> 프롤로그 중 -
불가능한 꿈을 꾸며 수없는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세상의 수많은 돈키호테들이 세상을 변화시켜온 장본인들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갈 지금의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 어떤 것인지 이미 진지한 고민은 시작되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과 그 중심에 빼놓을 수 없는 화두인 ‘창의성’은 미래 교육의 핵심 동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창의성을 과목처럼 가르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창의성은 그렇게 길러지는 것이 아닙니다. 창의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으면 한마디로 정리해서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창의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인 순간의 통찰이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로 탈바꿈 되기도 합니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소꿉놀이를 많이 하는 아이들일수록 창의성을 측정하는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제가 어릴때는 ‘엄마 아빠 놀이’라고도 불렀던 역할극 놀이는 4-5세 무렵의 아이들이 친구들과 자주 하는 놀이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역할극 놀이를 즐겨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로 여자 아이들 중에서도 친구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연극놀이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희 두 딸만 놓고 봐도 큰 아이는 밖에서 자전거 타고 친구들이랑 활동적인 놀이를 즐겨했던 반면 둘째는 교회 주일학교 언니들이랑 항상 역할극 놀이를 하고 놀았습니다. 어떤날은 엄마가 되어보기도 하고 다른 날은 유치원 선생님도 되었다가 친구도 되어보고 막 태어난 갓난아기 역할도 해내는 걸 보았습니다. 심지어 강아지가 되어 놀이하는 내내 멍멍 소리를 내고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연극 놀이에서 무슨 창의성이 길어질까 싶은데 연구의 내용을 읽고 보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창의력의 발달에는 사고력이 매우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확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확산적 사고는 창의성의 발달에 특히나 필수적인 사고력이고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한점에 집중하는 수렴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연극 놀이를 시작하는 꼬마아이들은 처음에 확산적 사고가 시작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아이들이 하는 연극 놀이는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하고 놀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되는데 그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아이들의 관점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게 됩니다. 엄마, 아빠, 선생님, 친구, 언니, 동생, 강아지 등등 자신의 주변에서 흉내낼 수 있는 대상을 탐색하기 위해 생각이 자신이 아닌 밖으로 발산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참 발산적 사고를 하다가 ‘엄마 아빠 놀이’라는 결정이 나게 되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다시 한점에 생각을 집중하는 수렴적 사고를 통해 최대한 ‘엄마’에 가까운 역할을 해내기 위해 집중하게 됩니다. 이렇게 단순한 아이들의 연극 놀이가 아이들의 창의성에 엄청나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만 보더라도 창의성의 발달은 여러가지 사고의 총체적인 융합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비단 유아기의 어린 아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 역시 어느때라도 발산하는 사고와 한점에 모으는 집중의 훈련을 교육의 현장에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창의성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새롭고 독창적이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내는 능력’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서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거나 비일상적인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 등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비판적 사고나 초인지적 사고 그리고 의사결정 능력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나오는 가장 고차원적인 사고 능력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이렇게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은 입시만을 목적으로 하는 고정적이고 정형화된 교육환경보다는 유연한 사고와 도전이 가능한 다채로운 환경에서 향상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은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누군가 앞서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슴 설레는 기대감과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만 시키던 아이들에게 갑자기 마음껏 꿈을 펼쳐보라고 한다면 아이들은 아마도 부모의 눈치부터 살필 것입니다. 아직 어린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용기와 자기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이들의 기질에 따라서도 다양한 차이는 있겠지만 모든 아이들의 내면에는 꿈틀대는 꿈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하나씩 꺼내기 위해서는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부모의 눈으로도 아이의 비전과 꿈을 볼 수 있어야하겠지만 아이 자신의 용기있는 마음을 펼칠 수 있는 교육환경 역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꿈을 향해 일찍부터 용기있는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첫 발걸음이 아직은 두려운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껏 도전해도 된다라고 말해주는 주변의 격려입니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것 뿐만아니라 부모 자신이 실제로 아이가 실패해도 정말로 괜찮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저 역시도 아이가 도전해보기도 전에 실패할까봐 그래서 아이의 자존감이 혹시나 떨어질까봐 불안하고 초조했던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안교육을 지난 10년간 시켜오면서 오히려 아이들보다 엄마인 제가 더 대범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제든 아이가 알을 깨고 나올 준비가 되도록 울타리를 확장시키는 법을 배웠고 그러는 동안 아이들도 저도 도전과 실패에 대해 예전 만큼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도전해 볼 수 있는 가정의 분위기, 그리고 실패하고 넘어져도 다시 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 소위 돈키호테력은 결국 이런 밑바탕 위에서 아이들이 안전함을 느낄 때 나오는 힘입니다. 그리고 그런 돈키호테들에게 창의성은 누가 억지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뒤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참고도서 박웅현 <안녕, 돈키호테>
[출처] 『안녕 돈키호테』 창의성, 어디서 나오는가? 돈키호테력(力)을 찾아라!|작성자 민음사
[네이버 지식백과] 창의성 [創意性, creativity] (교육심리학용어사전, 2000. 1. 10., 한국교육심리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