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나’에서 ‘우리’로 더 나은 세상만들기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두 딸아이들이 아직 어릴때 분당에 위치한 ‘한국잡월드’에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갔던 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마치 신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체험관 안에는 수십가지가 넘는 직업체험실들이 있었고 그때까지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목적으로 방문했던 여타의 장소들과는 스케일부터 달랐습니다. 어린이 체험관과 청소년 체험관 안에는 미래의 직업세계를 최대한 현실감 있게 재현해 놓은 체험관들이 있었고 심지어 우주선까지 실물 크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이들은 그곳에 갈 때마다 신나는 놀이를 하는 것처럼 자기가 관심있는 직업과 체험관을 골라 다양한 직업체험을 해보았습니다.
시간상 하루에 두 세 가지 밖에는 체험을 할 수가 없었고 인기가 높은 체험관들은 이미 몇달 전부터 매진되었기 때문에 티켓팅이 정말 중요했습니다. 운좋게 예매가 되어도 체험관에 들어가기 전까지 긴 줄을 서야했고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분당에까지 가야한다는 것만 빼고는 그 때의 즐거웠던 경험과 추억들이 지금도 새록새록합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다양한 기관에서 아이들이 진로탐색이나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졌고 아이들마다 타고난 적성과 관심사를 예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직업체험이라는 것은 특별한 장소에 가야만 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아이들의 교육을 핑계삼아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박물관이나 체험학습장을 찾고 근처 맛집을 검색해서 아이들과 주말여행을 다녀오면 다음 한주를 힘차게 살아갈 에너지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전국을 누비며 아이들과 여행을 다니던 시기가 지나고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대안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산꼭대기 마을 한가운데 있는 대안학교는 제가 아이들을 데리고 전국을 돌며 좋은 교육을 찾아 다니던 수년간의 노력의 결실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아이들이나 저에게 정말 만족스럽고 좋은 학교였습니다. 아이가 학교 기숙사에서 첫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오는 금요일에는 아이의 얼굴이 꽃처럼 밝게 피어났습니다.
주말 내내 보고 싶었던 엄마 마음은 아랑곳 없이 “빨리 학교 가고 싶다”라는 말을 계속 할 정도로 학교를 즐거워했고 좋아했습니다. 이따금 뭐가 그렇게 재밌고 좋으냐고 물어보면 그냥 다 좋다는 말만 돌아올 뿐 구체적으로 뭐가 좋은지 설명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첫째 아이를 따라서 둘째까지 같은 대안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둘째 역시 언니처럼 학교를 좋아했습니다. 그렇게 다니기 시작한 학교를 큰 아이는 6년, 작은 아이는 8년, 그리고 저는 도합 10년을 아이들 픽업하면서 학교에 다닌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학교에서 하루하루 행복하게 꿈을 향해 도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던 지난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나 싶을 만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것만 같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기도 하고 이런 저런 학교 행사에 참여하면서 자주 학교를 오고 가다보니 저도 학교가 너무나 좋아졌습니다. 자꾸 가고 싶고 제가 다니고 싶을 만큼 우리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제가 학교를 이렇게 좋아하니 주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학교인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블로그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10년 가까이 아이들의 행복한 대안학교 이야기가 쌓여 있는 블로그가 지금은 우리 가족의 소중한 추억의 앨범이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체로 평상시에도 즐거웠지만 축제가 열리는 시즌에는 행복한 공기가 학교와 마을에 가득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일년에 두 번의 큰 축제가 있는데 그때는 전국의 부모님들도 모두 아이들과 함께 축제현장으로 모입니다. 그중 하나는 연말에 열리는 ‘별무리축제’입니다. 이날 아이들은 한 해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무대 위에서 마음껏 펼쳐내고 학교 공동체 안의 모든 가족들이 공연장에 모여 함께 즐거워하고 아이들을 격려합니다. 또 하나는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들이 하나가 되는 ‘진로 페스티벌’ 이었습니다. 그날은 학교의 모든 교실이 직업 체험장으로 바뀌게 되고 학교앞 광장은 먹거리 부스와 마을 사람들로 북적됩니다. 아이들은 각자 관심이 가는 직업 체험 부스를 미리 예약하고 신청해야 합니다. 각계의 전문분야의 부모님들이 자발적으로 부스의 주인장이 되어 직업세계를 통해 이루어가는 삶의 가치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십니다.
학부모들이 자원하여 운영하는 진로 탐색 부스는 제목부터 아이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끌어들입니다. ‘좋은 영화인이 되는 방법과 영화인의 삶’, ‘드론 is 뭔들’, ‘플라잉 디스크’, ‘크리스천 의사가 되려면’, ‘셀프 피드백으로 엄마의 잔소리 벗어나기’, ‘성문화 교육강좌’, ‘수화야 놀자’, ‘선교사의 삶과 헌신의 이해’, ‘페이퍼 파일럿 만들기’, ‘모래 놀이 치료사’, ‘사인을 보내! 심리학 체험 교실’, ‘의료와 응급 구조’, ‘중독 전문 사회복지사’, ‘퍼스널 컬러와 이미지 메이킹(with 미용실습)’, ‘FUN FUN 한 변호사’, ‘요리실습 초코볼 만들기’, ‘치과의사로서의 삶과 관계 맺기’, ‘실용음악과 CCM’, ‘나만의 감성 캘리그라피’ 등등 매 해마다 창의적이고 다양한 부스들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꼭 전문분야의 직업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인생의 선배가 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어 주시는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직업부스를 미리 신청하고 쿠폰을 받아 즐겁게 직업체험을 하는 것을 보면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한동안 패션과 디자인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둘째가 한 해에 선택한 부스는 전부다 패션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네일아트, 미용, 패션디자인의 부스를 쭉 돌면서 완성해낸 작품을 보면 그렇게 행복해 할수가 없었습니다. 축제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먹거리입니다. 체험 부스에서 봉사하는 부모님들 외에 다른 분들은 모두 먹거리 부스에서 음식장만에 여념이 없습니다. 산해진미가 한자리에 다 모인듯 하고 지역별로 부모들이 메뉴를 미리 상의하기 때문에 겹치는 메뉴가 단 한가지도 없습니다. 아이들은 500원 에서 천원 정도면 부모님들이 만든 맛과 영양 가득한 음식들을 사먹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모여진 수익금은 다시 학부모 장학회에 기부하고 아이들을 위해 의미있는 곳에 쓰여집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정한 스케줄을 따라 직업체험 부스를 상기된 표정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동안 어릴적 집업 체험을 위해 잡월드 안을 뛰어다니던 기억이 겹쳐지면서 진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전국의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모든 강연과 실습과 음식들은 그분들의 표정과 눈빛 속에 담긴 사랑의 실체였습니다. 단순히 직업의 종류를 배우는 곳이 아닌 부모님들의 삶의 모습을 배워가는 현장에서 아이들은 ‘나’로부터 어떻게 ‘우리’가 만들어지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노력해 가야하는지를 배워갔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훌륭한 어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유연한 사고력을 기를 뿐만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대안학교의 부모로 살아온 지난 10년 간은 삶에서 진정으로 가치로운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해준 시간들이었습니다.
참고 BMR Magazine Vol.2 2017 Summer p.48 도서출판 별무리
공동체 안에 훌륭한 어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협력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이들에게 유연한 사고력을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최고의 교육이 된다는 것은 대안학교의 부모로 살아오면서 배우게 되었다.
별무리학교에서도 일 년에 한번 이에 버금가는 진로 축제가 열린다. 진로 체험 부스를 준비하는 분들은 모두가 별무리의 학부모님들이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부모님들이 자신들의 직업 분야를 소개하며 강의를 해주시기도 하고, 직업 현장에서 마주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아이들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해 오시기도 한다. 이 날에 학부모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어떻게 직업 속 삶의 현장에 적용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 시켜가고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간증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일찍부터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던 큰 아이와는 달리 작은 아이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직업에 관심을 가져왔다. 진로체험을 할 때마다 관심사별로 이곳저곳 체험해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가 일찌감치 한 가지 꿈을 정하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도 좋지만, 아이 나름의 진로 탐색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과정임을 둘째를 보면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미래를 준비해 나가는 아이에게 진로를 빠르게 결정하도록 부모가 종용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아이가 어느 곳으로 관심사가 확장되는지 잘 관찰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성경적 가치관으로 세상을 변혁해 나가는 롤모델을 제시해 주는 것은 직업교육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인 것 같다. 공동체 안에 훌륭한 어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협력하고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아이들에게 유연한 사고력을 가지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최고의 교육이 된다는 것은 대안학교의 부모로 살아오면서 배우게 되었다.
최근에 큰 아이와 함께 <에이트> 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공 지능에게 대체되는 않는 아이들을 만들기 위한 교육의 핵심으로서 “공감 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강조하고 있다. Knowing(지식) 위주의 직업교육을 뒤로하고 이제는 어떤 Being(존재)이 되어 어떤 Doing(일을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지를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나’만 생각하던 관점에서 ‘우리’를 바라보게 하는 관점으로의 전환이 별무리의 진로교육의 핵심이다. 진정한 진로교육은 우리 아이가 좋은 직업을 갖도록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걸어가는 법을 고민하며 배워가게 하는 데 있다.
별무리에 주신 선물과 같은 하루
올해 별무리 교육의 키워드는 "함께"이다.
지난 6월 6일 이 키워드를 구현하기 위해 별무리 공동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진로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공기택 선생님의 강의 "가치를 이끄는 삶"을 시작으로 부모님들의 진로체험 부스와 먹거리 부스 그리고 다양한 진로 체험의 현장이 별무리학교에서 출제처럼 열렸다.
교사와 부모가 멘토가 되는 학교, 아이들의 진지하고도 행복한 눈빛,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부르신 소망의 빛을 우리는 그날 "함께" 보았다.
직업탐방은 축제처럼
발췌: BMR Magaine Vol.2 2017 Summer p.48<도서출판 별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