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로드스꼴라 여행 대안학교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최근에 <남미에서 배우다 놀다 연대하다> 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여행 대안학교 ‘로드스꼴라’ 아이들이 두 달간의 남미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 영어 단어 ‘로드road’ 와 학교라는 뜻의 라틴어 ‘스콜라schola’를 합쳐 만든 로드스꼴라는 말뜻 그대로 여행을 통해 배우는 학교입니다. 전세계를 배움의 장소로 삼는 여행 대안학교 아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순식간에 책 속으로 빨려 들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습니다.
이과수 폭포와 티티카카 호수, 그리고 우유니 소금사막 위에서 믿어지지 않는 대자연의 풍경 앞에 선 아이들의 감동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아이들의 글 하나하나가 특별했습니다. 지구과학과 지리, 역사와 정치 경제, 그리고 문학과 언어까지 아이들은 교과서로 배우고 외워서 머리속에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숨막힐 듯한 자연의 품에서 온 몸으로 이 모든 것들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특히나 놀라웠던 것은 아이들이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읽었던 남미의 문학들과 청소년들이 쓴 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글들 이었습니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마누엘 푸익의 <거미 여인의 키스> 와 같은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고 쓴 어느 학생의 글이 특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읽고 보았고,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발품을 팔았고, 전해 들은 이야기들이 내 안을 휘저었고, 끙끙대며 나도 몰랐던 혹은 모른 척 해왔던 나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동네 할머니와 백 년 전 살았던 소녀와 저토록 무심한 바위가 내게 이야기를 건냈다. 나는 들었고, 기억했고, 글로 썼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나와 마주해야 했고, 나를 겹겹이 둘러싼 것들을 한 거풀씩 벗겨 냈다. 이제는 질질 짜지 않고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대학에 가도, 가지 않아도, 삶은 끝장나지 않는다는 걸 안다”
- 황지은, ‘길 위의 친구들; 파블로 네루다 시집을 읽고’ 중, <남미에서 배우다 놀다 연대하다> 326
18세기에 유럽에도 이러한 여행학교가 있었습니다. 그당시에는 지금처럼 대안적이고 자유로운 개념으로서의 여행이라기 보다는 교육적 목표를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된 엘리트 교육의 양상이었습니다. 설혜심 교수의 <그랜드 투어>라는 책에 보면 역사상 최초로 ‘교육’이라는 화두를 내건 귀족집안 자녀들의 여행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근래 읽었던 책들 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책입니다. 18세기는 영국의 상류층을 중심으로 자녀들의 해외 유학이 인기를 끌었던 시기였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책 <국부론>에서 당시의 영국의 젊은이들의 해외 여행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대학교에 가지 않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점점 관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 여행을 통해 일반적으로 대단히 발전되어 귀국한다.
설혜심 <그랜드 투어> 19
당시의 영국인들은 서재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세상을 배우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국인들의 고정관점을 완전히 바꾸어준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엘리자베스 1세의 후원을 받고 그랜드 투어를 떠난 필립 시드니 경입니다. 외교와 정보 수집의 달인이었던 그는 전 유럽을 여행하면서 군인이자 정치가 그리고 문학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서재에 앉아 책으로 세상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지하 감옥에 갇힌 채 세상을 여행하는 외로운 죄수”라는 과감한 표현으로 비판했습니다. 책을 읽기만 하는 행위는 쉽게 무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죽은 자와의 대화라고 경고했던 시드니는 점차 영국 기사도의 전형적인 인물로 귀족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강조한 여행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것과 동시에 당시의 영국 사회에서는 대학 교육에 대한 불만이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의 강의실은 점점 비어갔고 상아탑으로서의 위상은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데다 진부한 교육과정으로 인해 1733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크라이스츠 칼리지 신입생이 겨우 3명에 불과 했다고 합니다.(37) 피상적이고 틀에 박힌 교육 커리큘럼에 염증을 느낀 부모들 사이에서는 사교육과 공교육의 장단점에 대한 논쟁이 자주 벌어지곤 했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현재의 교육상황과 18세기 영국의 사회가 직면한 교육의 이슈가 비슷하다는 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영국 사회의 여행 교육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엘리트의 최종 교육 단계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존 로크John Locke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그리고 루소Jean Jacques Rouseau 와 같은 지식인들도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높이 평가했고(40) 사교육의 대안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해외여행 즉 그랜드 투어입니다. 물론 여행을 통한 배움의 살아있는 교육으로서의 가치와 동시에 비용과 위험 등의 득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다양한 아이들의 상황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여행 교육의 효과를 일반화시켜 한눈에 정리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역사가의 시각으로 조명해본 세계화의 열풍과 그에 따른 여행 교육의 발달을 설명한 <그랜드 투어>는 지금의 교육을 생각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길 위에서 배우고 길이 들려준 이야기들을 글로 엮어가는 로드스콜라 학생들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는 투박하고 거칠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동시에 불가능해 보이는 배움터인 ‘길’ 위에서 자신의 진정한 내면과 마주하는 아이들의 고통과 용기에 감동이 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요즘 아이들이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 속에서 아이들이 여행하는 세상은 역동적인 온실이라기 보다는 말그대로 야생의 배움터인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생각이 교차되었고 딸 아이들이 8개월 간 인도에 가 있던 때를 반추해 보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공부하고 여행했던 8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얼만큼 내면의 힘을 기르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가져다 주는 교육의 효과는 분명 시공간을 넘어서는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동안 코로나로 하늘 길이 막힌 탓에 2년간은 인도 이동수업이 불가능했었지만 학교에서는 올해 말 다시 독일 이동수업을 위해 교장선생님이 베를린에 있는 국제학교와 협약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디 협약이 잘 되어서 더 많은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배우고 또 이야기를 모으고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끝.
참고도서 <남미에서 배우다 놀다 연대하다> 뜨인돌
<그랜드 투어> 설혜심, 휴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