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꼰대말고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세요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어느 회사 부장님의 슬픈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말단 사원 시절부터 사내 회식 문화를 당연히 여겨왔던 부장님이 하루는 직원들에게 퇴근 후의 스케줄을 묻게 됩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하나같이 모두 선약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혼자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마침 카페 옆을 지나다가 통유리 안쪽의 사람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가 약속이 있다는 자신의 직원들이었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우스갯소리인지 실제로 있는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세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세대담론의 시작은 소위 X-세대(X-generation) 라고 불리던 1970년대생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10대의 자녀들을 둔 부모세대가 되었지만 X-세대의 10대 시절은 그야말로 기성세대들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세대였습니다. 어디로 튀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대라고 해서 X-세대라고 불렀고 소위 ‘야타족’ ‘오렌지족’ 같은 신조어들도 만들어 낸 장본인들입니다. 배꼽티를 입고 돌아다닌 혐의로 경찰에 적발되어 재판을 받는 뉴스가 보도되더라도 과다노출 패션을 포기할 수 없었던 세대가 지금의 부모세대입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교복이 없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매일 같이 학년 주임 선생님이 아침 등교길에 교문 앞에서 학생들의 복장 단속을 했습니다. 가슴에 영어가 써진 옷은 안 되고 운동화 말고 단화도 신으면 안 되고 빨간색을 비롯한 원색 계통의 색의 옷을 입어도 안 되고 치마나 바지 길이는 무릎 아래까지 와야되고 머리카락은 귀밑 2센티를 넘겨서는 안되는 것들 등등 언뜻 기억나는 복장에 관한 규칙만 해도 열가지 이상은 되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옷을 사주셨는데 앞에 작은 글씨로 영어가 쓰여 있었습니다. 새옷을 너무 입고 싶은데 아침에 그 옷을 입고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너무 고민이 되었습니다. 고민끝에 선생님이 교문으로 나오는 시간보다 조금만 빨리 들어가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가슴에 영어가 쓰여 있는 새옷을 입고 등교를 했습니다.
교문 앞에서 학년 주임 선생님이 멀리서 부터 저를 손짓으로 부르더니 학교에 못들어가게 하고 문앞에 서있도록 했습니다. 다른 날보다 일찍도 등교한 날이라 전교생이 벌서고 있는 저를 쳐다보며 모두 교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악명 높았던 학주 선생님은 수업중에도 전교생의 신발장을 다 조사해서 규칙에 어긋난 구두나 단화를 신고온 학생들을 색출해 냈습니다. 수업중이고 쉬는 시간이고 상관없이 학주 선생님이 이 신발 주인 나와 라는 한마디가 떨어지면 복도로 나가서 수업이 끝날 때가지 신발장 앞에서 무릎꿇고 벌을 서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돼는 억압과 통제를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세대입니다.
X세대인 부모라면 그때의 기억들에 많은 부분 공감할 것입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세대담론이 현재는 MZ세대까지 흘러왔습니다. MZ 세대는 부장님이 회식 하자고 해서 고분고분 따라가지 않고 부장님이 혼밥 하지 않도록 돌아가면서 밥친구 당번을 서지도 않는 세대입니다.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X세대 부모들은 자신들의 10대 시절과는 또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MZ세대 자녀들 앞에서 적잖게 당황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들이 다들 그렇겠지라고 단순히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부모 자식간에 이해의 폭을 넓혀야할 다양하고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놀라울 만큼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X세대인 지금의 부모 세대가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를 따라 부르며 위로받고 공감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면 지금의 MZ 세대는 자신에게 학교가 맞지 않다고 생각될 때 가차없이 학교를 떠납니다.
학교밖 청소년이 되는 것도 소속된 공동체가 당분간 없다는 것도 이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듯해 보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남다른 생각을 수용하고 대안을 찾아 줄 수 있는 부모들이라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라떼’를 찾는 부모들이라면 세대간의 갈등은 불가피하게 되고 맙니다. ‘라떼는 말이야’ ‘꼰대’ 와 같은 말들이 MZ세대의 공감대를 넘어 안티꼰대의 시대정신으로 까지 고착화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걸리지 않았습니다. 영탁이라는 트로트 가수의 ‘꼰대라떼’라는 노래가 인기를 얻고, 유명 커피전문점에서 부랴부랴 출시한 ‘꼰대라떼’라는 음료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면 지금의 세대간의 갈등을 한마디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아마도 ‘꼰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2019년 9월 23일에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에서는 KKONDAE(꼰대)를 ‘오늘의 단어’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를 설명하기를 ‘an older person who believes they are always right (and you are always wrong)’ 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한마디로 자기는 항상 옳고 상대방은 항상 틀리다고 믿는 나이든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웃지 못할 사실은 아래 댓글들입니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우리 아빠’ ‘우리집 남편’ 이라는 댓글들이 대다수 였습니다. 우리나라 학생들 사이에서는 권위적인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을 비하하는 은어로 ‘꼰대’라는 단어가 자주 쓰입니다. 꼰대라는 단어 하나로 그야말로 대동단결입니다.
그러면 실제로 지금의 MZ 세대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전혀 듣기 싫어하거나 공감하지 않을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어른들의 조언을 필요로합니다. 정말 아무도 간섭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고만 한다면 아이들은 오히려 불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융통성 있는 질서감각과 언제든 확장가능한 울타리를 누구보다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꼰대’라는 단어로 대동단결 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그 이유는 어른들이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질문해봐야 하는 문제입니다. 딸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는 점은 아이들이 성장의 시기마다 대화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를 키울 때의 부모의 화법과 이제 성인이 된 딸 아이들과 대화하는 방식은 근본부터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변화의 차이를 어른인 부모가 빨리 깨닫지 못할 때 갈등이 시작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 경우는 큰 아이와의 대화 보다 막내아이를 대할 때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눈에는 늘 어린아이로만 보이던 막내 딸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 이르자 그동안 해오던 잔소리가 갑자기 무색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딸 아이와 제가 대화의 패턴을 가만히 보니 어느순간 당황스러울 만큼 엄마인 저 혼자만 말을 하고 있거나 저의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부터는 내가 혹시 꼰대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딸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는 바램 이전에 먼저 대화가 통하는 어른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고수하고 자기의 생각이 옳다는 착각을 고치지 않는다면 지금의 아이들 세대와의 깊이 있는 대화는 그만큼 힘들어 질 것입니다. 이전 부모 세대로 부터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지금의 부모 세대가 아이들과 마음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만큼 노력도 필요하고 공부도 필요합니다. 고정관념의 생각의 틀에서 깨어나오지 못한다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꼰대의 부류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도서 <트렌드코리아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