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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니아니 May 26. 2022

#36 부모 학교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제가 올초에 계획한 것이 있었습니다. 올해 12학년인 둘째가 졸업하기 전까지 지난 10년간의 두 딸들의 대안학교 생활과 성장과 과정들을 기록하기로 한 것입니다. 물론 학교를 다니는 동안 생생한 추억은 아이들이 더 많이 가지고 있겠지만 엄마의 눈으로 보아온 지난 10년간의 기억들은 앞으로 20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대안학교 이야기들을 기록하다 보니 바로 어제 있던 일인 듯 생생하게 기억 나는 장면들도 있는가 하면 지나간 학년의 밴드나 학교의 과월호 잡지를 들추며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부모도 정말 행복했던 대안학교의 생활도 이제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그간의 감회가 새롭습니다. 2003년 봄 처음 큰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2년 후인 2005년에 아이는 인도로 이동수업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에 작은 아이가 5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어린 두 딸을 하나는 이역만리 타국에 보내놓고 막내딸까지 금산의 기숙학교에 보낸 그 해에는 정말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던 해입니다. 그 한해 동안에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었던 분들도 공동체에 함께 있는 부모님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학교와 선생님들을 위해서 매월 지역마다 모여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는 부모 공동체가 정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인도에 가있던 한해 동안에는 매주 한번씩 모여 아이들의 근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학교의 모든 아이들을 내 아이처럼 함께 걱정해주고 기도해주는 부모들 때문에 힘들 때마다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교육의 비주류라고도 할 수 있는 대안교육의 길은 많은 것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했고 무엇보다 부모의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길이었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기억 중에 하나는 입학 첫해 교사 학부모 컨퍼런스의 장면입니다. 그날 중학교 강당에 모인 학부모들을 보면서 제가 받았던 느낌은 일종의 전우애 같은 것이었습니다. 다음 세대의 교육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가슴에 품고 공립학교의 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전국에서 부모님들이 모였던 그날의 분위기와 풍경은 지금도 저의 마음속에 깊은 감동의 장면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날 느꼈던 감격이 지난 10년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녀들을 올바르게 기르기 위해 가장 먼저는 내 아이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마음에 심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총회와 컨퍼런스처럼 전체가 다 모이는 때를 제외하고는 각 지역에서 부모 모임을 통해 학교의 교육철학을 공유하고 아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했습니다.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부모인 제 자신을 먼저 돌아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녀의 양육은 곧 부모의 성장 과정이라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돌아보면 그 긴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삶을 나눌 수 있었던 부모님들 덕분입니다. 학교의 행사가 있을 때면 열 일 제치고 학교로 달려가는 부모들이 있었습니다. 운영위원회 회의를 위해 주말을 반납하고 두어 시간을 운전해 회의에 참석했던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학생 기자단 아이들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갈 때마다 마음을 열고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신 부모들도 한 분 한 분 기억합니다. 진로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면 그야말로 부모들의 헌신과 사랑의 결정체들을 눈 앞에서 생생하게 보는 듯 했습니다. 보이는 곳에서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교와 아이들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던 많은 부모들은 이 세대에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일들을 당연한 일처럼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축제 전야 때마다 전교생들과 선생님들을 위해 바비큐 파티를 열어주시는 부모님들도 김장철마다 일손을 돕기 위해 아이들이 한 해 동안 먹을 김치를 담아 주신 부모님들도 뿐만 아니라 학교 잡지를 통해 자신의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전해주시는 부모님들도 모두 교육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장본인들이었습니다.


학부모 상담주간이나 쿼터 발표회 그리고 매거진과 부모 멘토링 제도 등은 가능한 모든 부모들이 아이들의 생활과 학교의 소식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부모들의 직접적인 대면 활동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시작된 ‘별빛 특강’에서는 작년 부터 부모들이 자원하여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주고 있습니다. 기업가 정신이나 경영, IT, 진로 등 다양한 전문 분야의 부모님들의 강의가 매주 열리고 아이들은 선택적으로 자유롭게 강의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공동체에 도움이 되고자 애쓰는 분들과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좋은 교육 환경이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환경임을 알았습니다. 대안학교의 마지막 해인 올 한해가 저에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옵니다. 자녀교육을 위해 마음을 다해온 지난 시간 동안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감동과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두 아이가 각각 인도와 금산으로 떠나던 해에 입학식에서 학부모의 다짐이라는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가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 블로그에 고스란히 담긴 그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어느 해 겨울에 학교로 올라가는 길의 차량이 통제되어 학교까지 걸어서 올라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차로 운전해서 올라가야 할 산길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가던 그 시간에 그 길 위에 있는 제 자신과 매주 이 길을 오르며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 대해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큰 고민 없이 편하게 집근처 공립학교를 보낼 수도 있었는데 굳이 먼 타지에 있는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교육의 어떤 가치를 찾아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또한 부모인 저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는 동안 산위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경쟁이나 성공보다 더 위대한 가치를 배워가기를 소망했습니다. 어려운 상황도 받아들이고 인내할 줄 아는 사람으로,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도시의 공립학교를 보내면서 홀로 이런 가치들을 지켜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제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에 그 겨울날 걸어서 도착한 산 위의 마을 학교는 저의 마음 가득 안도감과 감사의 마음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대안학교의 시간들이 이제 곧 마무리되어 갑니다. 아이들은 많이 성장했고 저 역시도 여전히 삶의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안학교 이후의 삶은 아이들에게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제 안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10년전 공동체의 부모들과 함께 꿈꾸었던 비전들이 하나둘씩 눈 앞에 펼쳐지는 기적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별무리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아이들과 부모들 역시 저와 비슷한 꿈을 꾸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이제 대안학교를 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아이들을 위해 오늘도 그날 처럼 꿈꾸고 소망하기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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