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별빛 특강
대안학교 10년차 엄마의 리얼체험기
고등학교에서 코로나 기간 중에 진행되었던 ‘별빛 특강’은 그 이름 만큼이나 아이들의 꿈이 빛나는 시간입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학교의 모든 학부모들이 한날 한곳에서 진로 축제를 열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세계와 소명에 대해 소개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면 지난 2년 동안에는 시간차를 두고 ‘휴먼 라이브러리’나 ‘별빛 특강’ 과 같은 강연회를 통해 교사와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와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봄 몇주간에 걸쳐 진행된 ‘별빛 특강’ 시간에는 대학에 입학한 선배들이 모교를 방문해서 후배 재학생들에게 대학생활을 소개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관심있어 하는 창업대학인 몬드라곤 인터내셔널 재학생들과 코치들이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과 심도 있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 밖에도 네이버의 IT 개발자이자 프로그래머, 심리상담사, 미래 학자 등 다양한 직업의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미래의 직업 세계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고등학생 아이들은 별빛 특강이 진행되는 주간에 저마다 자신이 관심 있는 특강 주제를 따라 강의 신청을 하고 특강을 들었습니다. 강연회에 참여한 아이들은 단순히 강사의 강의를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아이들 스스로 준비한 질문도 하고 미리 인터뷰할 내용들을 준비해서 강사의 보다 깊이 있고 진솔한 이야기들을 함께 공유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소감문으로 작성해서 학교 매거진에 기고합니다. 이런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는 강연회에 참여한 학생 자신 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영감을 주며 특히 후배들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되는 선순환이 됩니다.
올해 몬드라곤 인터내셔널에 합격한 5기 졸업생 H는 고등학교 때부터 기업 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년 별빛 특강을 위해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기업 공동체인 MTA 인터내셔널 과정 학부생들과 코치들이 학교를 방문했던 날 H는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인터뷰 준비를 했습니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대학은 대표적인 창업대학으로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는 대학입니다. 현재 개교를 준비중인 레인 제주 별무리도 스페인 몬드라곤 대학의 기업경영 형태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스페인 몬드라곤 대학에는 여러 학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MTA는 기업과 경영을 배우는 경영학과에 해당됩니다. MTA의 학생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기업경영 프로젝트를 하고 실제로 창업을 해서 수익을 내는 방법을 배웁니다. 이 대학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책속에 존재하는 일반화된 지식이 아니라 창업의 현장을 통해 배우는 살아있고 유동성 있는 지식을 체득합니다.
MTA 재학생들의 인터뷰에서는 자신들의 학업 뿐만 아니라 삶의 철학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배움에 대해 그리고 대학에서 창업을 배우는 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자신들의 존재 이유에 대해 느끼고 생각하는 부분을 인생의 후배들인 고등학생들에게 가감없이 전하며 배움이라는 것이 결국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별빛 특강의 시간을 통해 다양한 강연자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가치들을 끌어올리고 진로와 연결시키는 일을 스스로 해나가는 법을 배웁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결정하는 일이야말고 진정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일이며 오랜 시간 고민하고 탐색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에 자신의 내면의 깊은 목소리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로를 탐색했던 H는 이듬해 MTA 인터내셔널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9월학기 입학을 앞두고 현재는 모교인 별무리학교에 돌아가 인턴쉽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후배들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배의 그런 모습은 후배들에게도 고스란히 동기부여와 영감을 제공하는 본보기가 됩니다.
“사실 우리가 어디서 일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제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요, 또한 저는 다양성이 보장되고, 열린 마음으로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전 세계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삶이 제가 꿈꾸는 미래 직업 환경이고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다양한 지역에서 해보고 싶어요.” - 몬드라곤 재학생 Eukene
인생 선배들의 인터뷰 내용을 들은 아이들은 가슴속에 벅찬 꿈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로라는 것이 단순히 특정 전공 분야를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 다는 것을 배운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가슴 뛰는 삶을 통해 어떻게 세상에 유익이 되는 삶이 될지를 마음 깊이 고민하는 아이들은 매일 의미있는 한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아이들이 진로를 찾고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도 결국에는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해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안다면 교사나 부모들이 어떤 교육환경을 아이들에게 제공해 주어야 할지 해답이 보여지는 듯 합니다.
책속에 있는 죽은 지식을 머리속에 넣고 성적을 잘 받아 안정적인 직업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금의 교육현실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몇 해전 많은 부모들 사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책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에는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십계명’이라는 것이 소개됩니다. 아이들에게 더 높은 보수와 더 안정적인 직업을 찾도록 종용했던 많은 부모들에게 보수가 적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가라고 가르치는 거창고등학교의 철학은 잔잔한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처럼 적지 않은 파장을 안겨주었습니다. 물론 그 책을 읽었던 사람들이 직업 십계명에 모두가 동의하고 방향전환을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많은 교육자들과 학생들이 배움에 대한 생각과 진로에 대해 적어도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곧바로 인생의 행로가 결정된 것이 아닌 것을 대부분의 부모들은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더 넓은 환경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직업세계와 인생의 진로에 대해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젊은 시절 끝없이 고민하고 실패하고 때로는 선택했던 길을 다시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그런 경험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삶의 지혜와 교훈이 된다는 것을 저는 믿고 있습니다. 두 딸 아이들에게 제가 가끔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길게 보고 꾸준히 노력하자”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빨리 결론을 내야할 것만 같은 사회속에서 아이들은 충분히 심사숙고 하지 않고 성급한 결론으로 뛰어들어가 버립니다. 빠른 결과를 내지 않으면 조바심이 생기는 것은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들 역시 마찬가지인것 같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가지 않는 아이들에게 재수생 삼수생이라는 꼬리표를 붙이여 아이들을 몰아붙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제 스무살도 안된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의 진로와 목표를 어떻게 모두 알 수 있을까요? 이런 저런 시도와 실패가 이십대에 이루어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저는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에게 길게 보라고 말합니다. 마음껏 시도하고 고민하고 실패하라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 자신이 그런 아이들을 진심으로 격려하고 실패를 받아들이며 오히려 축하해 줄수 있는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고 BMR Magazine 2021 Summer No. 17 도서출판별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