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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재판해야 할까?

by 한상영변호사 Aug 14. 2020

어느 마을에 가난한 과부가 살고 있었다. 믿고 의지할 든든한 뒤 배경도 없었다. 남편이 없으니 혼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 그러던 그녀에게 설상가상으로 억울한 일이 생겼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으로 마을의 재판관에게 찾아가 그녀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런데 웬걸! 재판관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고 문전박대했다. 재판관은 아무 권세도 없는 과부의 문제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사회적 이목도 없는 과부의 사소한 일을 해결해 보았자 재판관의 장래 출세에 별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과부가 계속해서 재판관을 찾아가도 그는 철저히 무시 전략으로 일관했다.


과부는 너무 분이 났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재산도 없고 힘없는 그녀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녀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였다. 그녀는 그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재판관을 찾아가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관은 지난번처럼 꿈쩍도 안 했다. 그녀도 만만치 않았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다음 날 아침에 재판관을 다시 찾아갔다. 


여느 때처럼 사무를 보던 재판관은 그녀가 다시 찾아오자 짜증이 났다. 하지만 계속해서 무시하면 그녀가 계속 찾아와 그를 괴롭힐 것 같았다. 고민하던 재판관은 드디어 마지못해 과부의 문제를 경청하고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다.


성경에 나오는 어느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일화이다. 그녀의 억울함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재판관의 문전박대에도 굴하지 않고 간청을 계속했을까. 그녀는 재판관을 통해 반드시 그녀의 억울함을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었다. 


재판은 억울함을 풀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당사자끼리 아무리 해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최종적으로 재판에 호소한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사람이 살면서 재판까지 가야 할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생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다. 나도 변호사가 되기 전에 억울한 일이 있기는 했으나 재판까지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변호사가 되어 타인의 재판 사건을 도와주는 일을 직업으로 하며 살고 있다. 변호사로 15년 동안 일하면서 한 사건으로 다섯 번이나 남의 재판을 도와야 하는 일이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의뢰인이 원고가 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원고가 되었다가 나중에 피고로 된 사건이다. 


당사자 사이에서 문제가 얼마나 풀리지 않으면 다섯 번이나 재판을 받아야만 했을까? 정의와 진실을 밝히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상대가 재판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어떤 악감정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것은 아닐까? 


원고가 의뢰인인 사건은 이러했다. 다섯 번 재판하기 위해 1심 지방법원, 2심 고등법원, 3심 대법원, 그리고 다시 반복하여 2심 고등법원, 3심 대법원이라는 다섯 번의 재판절차를 거쳐야 했다. 공기업 대 지방자치단체가 대결하는 사건이었다. 원고는 가장 규모가 큰 국가 공기업 중의 하나였고, 상대방은 경기도의 어느 시였다.


국가 공기업 대 지방자치단체의 사건이었기 때문에 개인 사이의 사건들처럼 감정적인 대립이 개입된 것은 아니었다. 법의 해석과 관련해서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서로가 끝까지 의문점을 갖다 보니 다섯 번이나 재판을 한 것이었다. 2012년도에 처음으로 1심 재판을 시작해서 2016년도에 두 번째 대법원 재판을 마치고 나니 4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건의 시초는 사소한 것이었다. 다름 아닌 공공시설 때문이었다. 당시 내 고객인 공기업이 경기도의 어느 지역을 대상으로 상당히 큰 규모의 뉴타운 택지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택지개발을 위해서는 사업지구 내의 토지를 협의 취득하거나 강제수용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경우 당연히 사업시행자인 공기업이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도시개발법은 사업시행자가 보상금 지급 없이도 무상으로 토지를 취득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었다. 즉 사업시행 전부터 원래 있던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시설은 보상금 지급 없이 사업시행자가 무상으로 취득할 수 있다. 대신에 사업시행자가 새로 설치한 공공시설은 지방자치단체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기존의 공공시설과 새로운 공공시설의 무상 물물교환인 셈이다. 정식 용어로 공공시설의‘무상귀속’이라고 한다.


이 사건에서 공기업은 사업지구 내에 있던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어떤 부지를  물물교환(무상귀속)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런데 상대방인 지방자치단체는 그게 아니라고 극구 반대한 것이었다. 결국 국가 공기업은 택지개발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택지 보상금을 법원에 공탁하고 그에 대한 소송을 나에게 의뢰한 것이었다. 


소송의 가액이 작지 않고 다른 공공시설에 대해서도 이 사건이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부담감을 안고 사건에 임하였다. 


이런 사건에서는 1심이 매우 중요하다. 사건을 초반부터 전체적, 종합적으로 잘 분석하여 정리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증거자료를 잘 수집해야 했다. 국가 공기업의 담당자가 협조를 매우 잘해 주었다. 그를 재판정에 증인으로 세워 증인신문도 진행했다. 


도시개발법, 국토계획법, 공유재산법, 지방자치단체 조례 등 여러 법령들에 대한 법리적인 공방을 상대방과 치열하게 다투었다. 3명의 합의부 판사도 매우 신중하게 사건을 심리하였다. 1심에서 승소하였다.


그런데 상대방이 1심 결과에 불복하고 항소하였다.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2심도 승소하였다. 상대방은 3심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느긋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기존의 2심 판결을 파기하였다. 그리고 사건을 2심으로 보내(환송하여) 다시 재판하라고 하였다. 이런 경우를‘파기환송’이라고 한다. 반면에 2심 판결을 파기하면서도 사건을 2심으로 되돌리지 않고 대법원이 스스로 최종 판결하는 경우는‘파기자판’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는 대법원에 상고한 사건인데 2심을 파기하지 않고 2심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런 경우는 2심을 파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히 ‘상고 기각’이라고 한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아 패소하자 나는 내심 상당히 당황했다. 3심 대법원에서 사건이 모두 순조롭게 종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가 일격을 당한 셈이었다. 패소 원인을 분석하고 사건을 다시 재정리했다. 대법원이 파기한 취지는 무상귀속은 맞는데 소송의 형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청구취지와 소송의 형태를 변경하였다. 


다시 시작한 2심 서울고등법원 재판에서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아 기사회생을 하였다. 그러나 상대방은 우리의 주장이 틀리다며 불복하였다. 결국 다시 3심 대법원으로 가게 되었다. 대법원은 상대방의 상고를 기각하여 원고 승소로 사건이 최종 확정되었다. 1심을 시작한 지 4년 만인 2016년 가을이었다.


법령 해석이 무엇이 맞느냐에 따라 수십억 원이 좌우되기 때문에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국가기관끼리의 다툼이기는 하지만 진실과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잘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가슴이 뿌듯했다.


다섯 번의 재판이 있었던 또 하나의 사건은 개인과 개인의 다툼이다. 앞의 사건처럼 역시 땅에 대한 분쟁이다. 한마디로 내 땅이냐 네 땅이냐의 소유권 문제이다. 감정의 골이 심하게 악화되어 사건이 언제 끝날 줄을 모른다. 현재도 진행 중이다.


문제의 땅은 조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조부는 8남매의 자녀를 두었다. 조부는 땅 부자였고 8남매 사이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한 세대를 내려가 손자 세대로 들어서자 다툼이 생겼다. 이 사건의 원고는 조부의 차남이 낳은 아들이었고 나의 의뢰인이 되었다. 상대방은 조부의 딸이 낳은 아들이었다. 즉 그들은 사촌형제 사이였다. 


조부가 남겨 놓은 땅에 서로 공유 등기를 하여 인접 지역에서 경작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툼이 생겨 결국은 공유물 분할을 합의까지 했는데도 공유물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를 해 주지 않아 내 의뢰인이 원고가 되어 2016년에 소유권 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지방법원 단독, 2심 지방법원 합의부, 3심 대법원까지 거치며 모두 승소 판결을 받았다. 2018년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이 원고가 되어 다시 사건을 제기하여 나의 의뢰인은 이제 역으로 피고가 되어 나에게 찾아왔다.


본래 하나의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면 모두 종결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 이유는 전문 용어로‘기판력’이라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 원칙에 의해 동일한 당사자끼리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시 사건을 제기할 수 없다. 동일한 사건은 전문용어로‘소송물’이라고 한다. 동일한 소송물에 대해 두 번 소를 제기하면 기판력 때문에 중복제소가 된다. 결국 법원에서 ‘소 각하’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쉽게 말해 소송할 가치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상대방이 점유취득시효를 내세우며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다시 소송이 가능했다. 점유취득시효는 한마디로 소유권이 없더라도 소유의 의사로 20년 이상 점유를 하면 무권리자라도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게 하는 권리이다. 상대방이 점유취득시효를 근거로 자기 땅이라고 다시 소송을 제기해도 이는 중복제소가 되지 않는다.  


점유취득시효는 점유라는 독립된 별도의 사유를 내세워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유 사실이나 소유의 의사, 점유기간 등을 심리할 새로운 재판이 필요하다. 대법원 판례는 점유취득시효 주장은 하나의 독립된 청구로 보고 있다. 즉 공유물 분할을 원인으로 하는 이전 소송과는 전혀 다른 소송물로 본다. 따라서 기판력이 작용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중복제소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2018년에 다시 1심 지방법원 단독 재판부에서 소송이 개시되었다. 1심은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에 대해 상대방이 불복하여 다시 2심 지방법원 합의부로 사건이 올라갔다. 지방법원 단독 재판부에서 진행된 사건은 2심 항소심은 고등법원이 아니라 지방법원 합의부에서 관할한다. 이에 대한 마지막 불복은 곧장 3심 대법원으로 간다. 


2심에서 치열하게 공방이 오갔다. 상대방은 각종 증거자료와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그렇지만 결국 상대방이 패소했다. 총 다섯 번의 재판이 되었다. 이 사건은 2016년부터 시작하여 2020년 현재까지 4년 동안 걸렸다. 다섯 번 재판하여 모두 승소하였다. 


그러나 상대방이 2심 판결에 불복할지 여부는 아직 모른다. 현재까지의 태도로 미루어 보면 아마 불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여섯 번째의 재판이 된다. 다섯 번 승소했다 하더라도 대법원으로 가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물론 지금까지 승소했으니 대법원에서도 승소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확률이고 실제 결과는 닥쳐보아야 한다. 


아직도 두 번째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변호사인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최종 승패가 확정될 때까지 심적인 부담감은 계속 남아 있다. 하물며 재판받는 당사자 본인은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할까? 


특히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상대방에 의해 피고가 된 사람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1심 재판만 1년 정도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동안 받는 심적 부담감이 너무 커서 재판이 끝나면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을 잃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런 당사자를 옆에 두고 그를 대신하여 소송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변호사는 어떨까? 당사자의 마음에 감정 이입되어 당사자와 똑같은 감정과 태도로 재판을 수행해야 할까? 15년 변호사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런 태도는 재판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송업무란 매우 냉정한 업무이다. 상대방도 법 전문가인 변호사이다. 판사는 양쪽 변호사의 의견을 중간에서 냉철하게 듣고 엄중하게 판단하는 법 전문가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호사가 의뢰인과 똑같이 당사 자화 되어 감정적인 태도로 소송을 수행하면 과연 좋은 결과가 나오겠는가? 


그런데 소송을 수행하다 보면 그런 태도를 보이는 변호사를 간혹 만났다. 의뢰인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이다. 경험 없는 변호사가 사건을 잘해보려고 그런 경우도 많다. 


변호사가 수임을 의뢰한 당사자로부터 독립적인 태도로 소송업무를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의 경우는 사건 자체의 좋은 결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의뢰인을 설득하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해야만 최종적으로 의뢰인에게도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예화에서 예수님은 천국은 이를 얻으려는 소망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자에게 주어진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과부의 사례를 하나의 예시로 들었다. 그런데 불굴의 의지도 좋지만 그 의지가 지향하는 목적이 과연 무엇인지는 더욱 중요하다. 


정의와 진실을 위한 의지인가?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생기는 분노가 포장된 의지인가? 여섯 번째 재판으로 치닫고 있는 두 번째 사건은 과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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