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에 소풍을 갔다. 소풍 장소는 산 밑자락을 굽이쳐 흐르는 최상류 냇가였다. 어린 걸음으로 학교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냇가 한쪽으로 많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널찍한 자갈밭이 있었다. 자갈밭 군데군데에는 다발을 이룬 풀숲들이 흩어져 자라고 있었다.
물이 흐르는 산속 청정 자연에서 어린 학생들은 도시락을 까먹고 즐거운 게임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이 즐겁게 놀고 있는 동안에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자갈밭 여기저기에 종이들을 숨겨 놓았다. 보물찾기 종이였다.
종이에는 이것을 찾아낸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여러 종류의 선물들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 학용품 종류였다. 그 시절에는 학용품 구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드디어 보물찾기 시간이 돌아왔다. 소풍의 제일 하이라이트 시간이다. 선생님의 간단한 안내가 끝나고 ‘보물찾기 시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 학생들이 ‘와아~’ 소리치며 일제히 자갈밭을 향해 뛰어간다. 먼저 찾는 사람이 임자다. 왁자지껄 자갈밭을 뒤지는 학생들의 모습은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보물찾기 종이는 자갈 밑, 바위틈, 풀 섶 여기저기에 숨겨져 있었다. 먼저 찾은 학생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종이를 들고 선생님께로 갔다. 나도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뒤 졌다. 혹시나 여기에 있을까? 선생님이 숨겨 놓았을 법한 돌멩이들을 발로 차보고, 수풀들을 손으로 쓱 흩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물찾기 종이는 나에게 보이지 않았다. 벌써 시간이 흐르고 처음의 들뜬 기대감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내가 찾을 법할 만한 곳에 숨기지 않은 선생님이 약간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보물찾기 종이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 찾기에 성공한 학생들만 따로 앞에 모였다. 선생님은 종이를 확인하며 거기에 기재된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때로는 선물을 주기 전에 학생에게 노래를 시키기도 했다.
보물 찾기에 성공한 같은 동네 남자 친구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한참 유행하던 가수 남진의 노래였다. “저 푸른 초가집에, 구름 같은 집을 짓고~~ 님과 함께 같이 산다면~~”.
애송이 같은 초등학생이 애 늙은이 다 된 듯이 초가집에 구름 같은 집을 짓고 애인과 살고 싶다는 가사를 큰 소리로 노래 부르자, 나이 많은 선생님들이 함박 웃으며 엄청 재미있어했다.
소풍 때 선생님이 보물찾기 종이를 꼭꼭 숨겨 놓은 것처럼, 상가 분양자들이 상가의 허물을 정말 꽁꽁 숨겨 놓은 사건이 있었다. 그 허물은 상가의 하자, 흠이었다. 수억 원, 수십억 원의 돈이 오가는 상가 분양시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상가의 허물 찾기에 실패하여 큰 손해를 입었다.
먼저 분양 방식을 보자. 분양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시행사가 건물을 다 지어 놓고 분양받을 사람을 모으는 경우는 ‘후분양’ 방식이다. 반대로 건물을 짓기 전에 미리 분양받을 사람을 모집하는 경우는 ‘선분양’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시행사는 선분양 방식을 선호한다. 시행사는 분양사업을 하긴 하지만 자체에 재산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형식적인 Paper Company이기 때문이다.
시행사는 사업자금이 거의 없기 때문에 ‘선분양’ 방식으로 분양계약을 하여 일단 사람들로부터 건축자금을 모은다. 그 자금으로 시공회사에 지불할 공사비에 충당한다.
계약금은 분양받은 사람들이 직접 내지만, 중도금이나 잔금은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시행사가 중간에서 주선해 준다. 그래서인지 선분양 방식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후분양 방식은 다 완공된 건물을 보고 분양계약을 하기 때문에 건물에 무슨 허물이 있는지 살펴볼 기회가 있어서 문제가 덜 심각하다. 그런데 ‘선분양’ 방식은 완공된 건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분양계약을 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내가 상담한 사람들도 선분양 방식으로 상가를 분양받았다. 분양대금이 10억 원을 넘는 경우도 많았다. 수십 명이 분양을 받았다.
분양계약을 체결한 후 2년 정도 지나서 상가 건물이 거의 완공되었다. 이제 준공시점에서야 처음으로 자신들이 분양받은 상가의 각 호수를 방문해서 확인했다.
물론 준공 전에 공사 중에 건물을 확인해 보려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공사현장에 와 보니 차단벽이 높게 설치되어 있었고 공사 관계자들이 안전상 출입할 수 없다고 해서 그때까지 확인을 못했던 상황이었다.
준공시점에 상가를 확인한 사람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상가 호수마다 엄청난 크기의 돌출 기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돌출 기둥이 얼마나 큰지 성인 2명 정도가 두 팔을 완전히 벌려야 가까스로 안을 수 있었다. 돌출 기둥이 상가 건물의 출입문 정문을 가로막은 경우도 있었다.
분양받은 사람들은 상가를 임대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그곳에서 장사를 하여 영업을 하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크게 자리 잡고 있는 돌출 기둥 때문에 큰 피해를 입을 게 뻔하였다.
분양받은 사람들이 시행사에 찾아가 항의하고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상가는 도저히 분양을 받을 수 없다며 분양계약을 해제해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용증명도 보냈다.
그러나 시행사 직원들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분양계약서를 보라고 했다. 돌출 기둥은 분양계약을 할 때 이미 다 설명한 것이고, 분양계약서에 돌출 기둥에 대한 내용이 상세하게 다 기재되어 있다고 했다.
분양 계약할 때 시행사 직원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이렇게 집단 분양을 할 때는 시행사가 분양업무를 직접 하지 않는다. 시행사로부터 분양업무를 위임받아 그 일을 대행하는 별도의 전문회사가 따로 있다. 이런 회사를 ‘분양대행 회사’라고 한다.
분양대행사에 소속된 사람들이 여기저기 광고나 홍보활동을 하며 분양받을 사람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이들은 한건 분양에 성공하면 그 분양가액을 기준으로 일정 비율의 실적 수수료를 시행사로부터 지급받는다. 그 액수가 직장인의 연봉
보다 더 많다. 그래서 분양대행 직원들은 분양계약을 유도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사람들은 분양계약서를 읽어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거기에 돌출 기둥에 대한 내용이 깨알 같이 모두 기재되어 있었다. 이미 시행사는 이 모든 상황을 다 예견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철저히 예비해 놓은 것이다.
분양계약서는 깨알 같은 글씨로 쓰인 수십 개의 조항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젊은 사람들도 그 많은 계약조항들을 다 읽어 보고 계약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60~70대가 많았다. 이들이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읽어 보았을 리 만무했다.
시행사는 생각보다 더 완벽하게 분양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서 끝 부분에 “이 모든 내용을 모두 다 이해하고 읽어 보았다”라는 문구를 피해자들이 다 수기로 기재하도록 했다.
피해자들은 그 문구에서 말한 ‘이해했다는 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도 모르게 분양대행사 팀원들이 쓰라는 대로 ‘이해하고 읽어 보았다’는 문구를 그대로 기재했다.
이제 피해자들은 분양계약서상에 토지신 탁사가 상가 매도인으로 기재되어 있는 점에 착안하여 재산이 충분한 토지신탁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분양계약서 어느 조항인가에 ‘토지신탁사는 매도인으로 되어 있더라도 상가의 하자에 대한 모든 책임은 신탁사가 아니라 시행사가 진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물 샐 틈 없는 완벽한 허물 감추기였다. 피해자들은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졌다.
법에 호소해서 싸워보아야 누가 맞는지 결론이 나올 상황이 되었다. 그렇지만 소송의 승패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법으로 가서 피해자들이 의지할 것은 약관규제법이었다. 분양계약서는 다수의 불특정 사람들과 체결하기 위해 시행사가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약관에 해당한다.
약관에 해당한 분양계약서에서 돌출 기둥에 대한 조항이나 신탁사는 하자책임에 대해 면책된다는 조항이 약관규제법에 위배되어 무효가 되느냐가 법정공방을 통해 결론이 나와 봐야 하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이런 사례가 또 하나 있었다.
사건의 내용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상가가 아니라 관광지역의 멋진 펜트하우스 분양 건이었다.
시행사가 환경 좋은 관광지역에 펜트하우스를 신축해서 분양한다고 해서 ‘선분양’ 방식으로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펜트하우스는 3개의 단지로 구성되어 있었고 피해자는 그중 어느 한 단지의 건물을 분양받고 계약금을 지불했다.
단지 주변에는 천이 흐르고 있었다. 각종 커뮤니티 시설이나 편의시설은 이중에 1단지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다른 단지 거주자들은 1단지로 가기 위해서는 천 때문에 다리를 이용해야만 했다.
조감도나 모델하우스에서는 단지끼리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건축공사가 거의 완공될 무렵에도 다리를 건설하지 않았다.
분양받은 사람들이 왜 다리를 건설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니까 조감도를 다시 보라고 했다. 조감도를 보니 맨 아래 하단 쪽에 “상기 조감도는 이해를 위한 것으로서 계획도이며 시공 중에 내용이 변경될 수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피해자들은 꼼작 없이 당할 상황이었다. 다리가 건설되지 않으면 다른 단지 사람들은 1단지의 커뮤니티 시설 등을 전혀 이용할 수 없어 앉아서 피해를 볼 상황이었다.
결국 앞에서 본 사례와 동일한 방식으로 피해를 입었다. 시행사가 서류상으로 완벽하게 허물을 감춘 것이다.
분양계약서에 피해자들이 “모두 이해했다”는 문구를 기재하게 한 것도, 토지 신탁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고 시행사가 모든 책임을 부담한다 라는 것도 앞의 사례와 똑같았다.
피해자들은 거의 전 재산을 지불하고 상가나 펜트하우스를 분양받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완전히 동떨어진 지역에서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피해상황이 발생한 것인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분양자들은 분양건물의 허물을 완벽하게 숨긴 채 자신들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조항을 분양계약서에 완벽하게 작성해 놓았다.
거액을 투자하여 분양받을 경우 분양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반드시 의문을 갖고 주의하지 않으면 누구나 꼼짝없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앞에서는 온갖 좋은 말을 다 하더라도 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좇는 사람들이 선량한 사람들을 노린다.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
분양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마치 보물을 찾아내듯 분양계약서의 모든 내용을 샅샅이 뒤지며 꼼꼼하게 확인해 보아야 한다. 피해자들의 돈을 노리고 숨겨 놓은 악의적인 조항들이 보일 것이다. 반드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