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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예방법

by 한상영변호사 Aug 20. 2020

법무부에서 오랫동안 교정담당 공무원으로 일하신 분을 알고 지냈다. 언제가 그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범죄자들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고 계시는데 무섭지 않으냐”라고 그분에게 물어보았다. 그분은 “수많은 종류의 범죄자를 다루기 때문에 범죄자들이 그렇게 무섭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다른 범죄는 모르겠는데 사기범의 눈을 보고 있으면 약간 무서운 느낌이  들어요.” 아마도 사기를 친다는 것은 머리싸움을 하며 피해자의 정신, 감정의 모든 영역을 사실상 컨트롤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살면서 사기를 당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사기를 예방하는 방법은 있을까? 사기는 남을 속여서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행위이다. 사기의 키포인트는 속이는 것이다. 즉 속여서 피해자 스스로가 알아서 재산상 처분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다. 속였는데 피해가 생기지 않으면 사기 미수이다.


속이기 위해서는 두뇌 싸움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기범은 지능범이다. 경찰에서도 중요한 사기범죄는 지능범죄팀에서 수사한다. 어떻게 보면 사기죄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은 싫든 좋든 머리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했길래 그 싸움에서 지는 걸까?


김 씨는 교회 신자였다. 그녀는 새벽교회를 다니다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을 알게 되었다. 10살 정도가 더 나이가 어린 여성이었다. 새벽기도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꽤 믿음이 좋아 보였다. 서서히 두 여성은 친한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는 남편들도 서로 알고 지냈다. 그 이웃 부부는 전국에 걸쳐 부동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몇 년이 지나자 이웃 부부가 경기도의 어느 지역 부동산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귀가 솔깃했다. 이미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긴 하지만 더 돈을 벌고 싶어 투자하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 수억 원을 송금했다. 이웃 부부는 부동산을 매입하기는 했는데 소유 명의를 그들이 운영하는 회사 명의로 해 놓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이웃 부부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회사를 크게 확장 운영해서 큰 이익금을 벌어 주고, 기존의 투자금도 수익금을 더하여 갚아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믿은 김 씨 부부는 또다시 수억 원을 송금했다. 이제는 전에 투자했던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돈을 더 송금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그러다가 이웃 부부가 운영하는 회사는 부도가 났고, 그들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미국으로 도주해버렸다. 피해 금액이 수십억 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 씨 부부뿐만 아니라 A의 친모도 동일한 방식으로 사기를 당했다. 그들은 사기를 치기 위해 김 씨의 친모에게 친딸보다 더 살갑게 잘해 주었다. 가족이 모두 피해자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김 씨의 친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거의 대부분 잃었다.


일단 사기죄로 고소를 하였으나 가해자 부부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 간 뒤라서 별다른 실효성이 없었다. 미국과 사법공조를 하여 범죄인 인도를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단순한 재산범죄인 사기죄는 이에 해당하지도 않았다. 결국 검찰에서도 가해자의 소재불명을 원인으로 기소중지 처분을 내려 사건을 종결해 버렸다.


이 씨는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방통 대학에 입학하였다. 거기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평소에 자신의 아버지가 재산이 많다고 자랑하였다. 서로가 친한 사이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했다. 친구는 가게를 운영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친구는 이 씨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믿고서 빌려 주었다. 친구는 이자도 보내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친구는 가게 운영비가 필요하다며 돈을 또 빌려갔다. 처음에는 얼마만큼 갚는 척하였다. 나중에는 그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빌려가서 회수하지 못한 돈이 거의 1억 원을 넘었다.


결국 나중에 이 씨는 친구를 사기죄로 고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는 다른 동창생들에게도 사기를 쳤다. 검찰은 친구를 기소하여 형사재판에 넘겼고, 친구는 전과 없는 초범인데도 유죄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미 친구에게 남아 있는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고, 이 씨는 현재까지도 전혀 돈을 회수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위의 두 사건을 처리하면서 사실 너무 황당했다. 어떻게 오랫동안 그렇게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을까? 사기 사건은 대부분 친한 관계에서 일어난다. 서로 친하니까 사기범은 피해자의 행동과 반응 방식에 대해 너무나 잘 안다. 피해자의 감정의 미묘한 흐름까지도 잘 파악한다. 더 한 차원 높게 결정적으로 피해자의 도덕적 가치관까지 꿰뚫고 있다. 완벽한 컨트롤러(controller)이다.


사기범은 처음에는 빌린 돈을 잘 갚아 준다.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다. 그 정도의 돈은 더 큰 수확을 얻기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일정기간 이자를 잘 갚는다. 약속한 투자금도 이익금을 붙여 제때에 보내 준다. 더 큰 결정적인 순간을 노리는 것이다.


초반에 이자나 수익금을 잘 보내주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므로 거기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나 이웃 간에 돈거래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방이 이자 등을 잘 보내 준다고 해서 철썩 같이 믿는다. 그래서 가족 등의 조언이나 충고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기범은 피해자의 약점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지피지기의 수준이다. 피해자가 돈이 쪼들려 일확천금을 노리는 절박한 심정에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또 피해자가 경제적으로는 부유할지 몰라도 사회적으로 정서적으로는 궁핍하여 타인의 칭찬에 굶주려 있다는 점도 잘 안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매우 친밀하게 접근하여 감언이설로 피해자의 환심을 산다. 피해자의 자존심도 잘 살려준다.


이런 상황에서 사기범은 피해자에 대해 경제적, 정서적, 심리적으로 완벽한 컨트롤러가 될 수 있다. 지능 싸움에서 완벽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사기 피해자의 대부분은 일확천금을 노린다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려다가 피해를 당한다. 사기범이 약속하는 이익금이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욕심 때문에 사기범을 신뢰한다. 가해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피해자 스스로가 도덕과 윤리의 경계를 넘어 버린다.


사실 도덕과 윤리로 제어되지 않으면 누구나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사기 피해자를 변호하는 업무를 하는 나도 도덕의식이 마비되면 곧바로 사기범의 노리개가 될 수 있다. 전문지식도 무의미하다. 눈이 가려지면 판단능력도 작동하지 않는다. 사기범의 지능적 컨트롤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실제로 투자금 때문에 현직 경찰관이 동료 경찰관으로부터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보았다. 도덕의식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도덕과 윤리 의식이 사기 피해의 가장 큰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비도덕적,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이익을 얻으려다가 눈이 가려진다. 곧바로 사기범이 고도의 지능으로 컨트롤하는 통제시스템에 빠져 버린다. 피해자 주변에 도덕적인 부분에 대해 직언을 해 주는 자가 있다면 사기 피해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상담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부부 모두가 동시에 도덕적 불감증에 빠져서 한쪽 배우자에 대해 도덕적인 경고등을 보내지 못한 경우였다. 배우자만이라도 도덕적으로 온전하다면 사기범의 지능적인 조작행위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다.


살면서 사기를 당하지 않고 산다면 정말 다행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주변에서 사기를 당하여 패가망신을 당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완전한 사기 예방책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기 피해를 막는 마지막 보루는 바로 도덕과 윤리의식에 있다. 내가 지금 얻으려고 하는 이익이 과연 정당하게 얻어지는 것일까? 간단한 이 물음이 가장 큰 사기의 예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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