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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의 함정

(부동산 매매계약시 주의할 점)

by 한상영변호사 Aug 28. 2020

소송을 하다 보면 디테일한 부분에 의해 사건의 결말이 결정적으로 좌우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첫 케이스는 매매계약서에 사소한 조항 1개를 잘 기재하여 승소한 사례이다.


어떤 사람이 살던 집을 매도하고자 하였다. 다행히 매매계약이 체결되었다. 매수인은 부동산 개발업자였다. 매수인은 여기저기 부동산을 매수해서 건물을 신축한 후 분양해서 이익을 남기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매수인은 계약금만 지급하고 중도금과 잔금을 제 날짜에 지불하지 않았다. 매도인은 계속해서 내용증명을 보내 중도금, 잔금을 빨리 지불하라고 재촉했다. 


매수인은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소유권 이전등기를 해 주면 이와 동시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매매잔금을 지불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런 경우를 ‘동시이행 항변’이라고 한다. 


서로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서로가 서로에게 내용증명을 각자 10회 이상 보내면서 상대방의 의무 이행을 독촉했다. 그러다 결국 매도인이 매수인의 계약불이행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제해 버렸다. 그리고 억대가 넘는 매매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 했다.


그러자 매수인이 매매계약 해제가 부당하다면서 몰취 한 계약금을 반환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나의 고객은 매도인이었고 피고였다.


동시이행 관계에서는 서로가 이행할 의무를 동시에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해제를 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는 매수인이 과연 동시이행 항변을 할 입장이 되느냐가 쟁점이었다.


그런데 매매계약서의 특약사항 중에 ‘매수인은 잔금 시까지 추가 대출을 받지 않기로 한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이 조항에 의하면 잔금 시까지 추가 대출을 받아서 매매대금을 지불하면 된다는 매수인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매수인은 대출이 아니라 자기 자금을 마련해서라도 매매대금을 준비해야 했다. 결국 자지 자금도 없이 매매계약을 한 셈이 드러났다. 매수인은 매매대금을 납부할 능력이 없음이 밝혀졌다. 


결국 법원은 매수인의 이행능력이 불능 상태라고 보고 매도인이 계약을 해제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계약금을 위약금으로 몰취 한 것도 정당하다고 판결하였다. 


최종적으로 내 고객인 피고의 승소 판결이었다. 매매계약서에 기재된 특약의 사소한 한 조항 때문에 승소한 사례였다.


반대로 사소한 부분이 결정적 원인이 되어 패소한 경우도 있다. 형제 사이의 재산 다툼 사건이다. 결국 형이 재산을 빼앗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형제간에도 돈 문제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형제가 지방 도시에서 세차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임대보증금이나 사업자금은 형이 대었고, 세차장 운영은 동생이 직접 직원들을 고용해서 하였다. 손님이 많아지고 세차장이 매우 잘 되었다. 형제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러다 건물 주인이 빚을 많이 졌는지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게 생겼다. 형이  건물을 주인으로부터 아예 직접 매수하기로 했다.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매매대금도 형이 다 지불했다. 


그런데 형은 이미 다른 부동산을 여러 채 소유하고 있어서 건물을 형의 명의로 등기하는 게 곤란했다. 그래서 매매계약서 매수인 란에 동생 이름을 기재하고 소유권을 동생 명의로 등기했다. 동생 허락을 받고 동생 이름을 빌린 것이다. 결국 이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건물 주인은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직접 나타나지는 않았다. 대신에 금융기관에 다니던 주인의 여동생이 주인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계약을 진행했다.


세차장 운영은 여전히 잘 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동생에게 욕심이 생겼다. 동생은 세차장이 자기 소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형제 사이도 많이 나빠졌다. 형은 건물의 소유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형이 원고, 동생은 피고가 되었다.


나의 고객은 형이었다. 이 사건은 명의신탁이 쟁점이 되었다. 형이 등기명의를 동생에게 부탁한 것이다. 형은 명의신탁자이고 동생은 명의수탁자가 된다.  


그런데 명의신탁을 한 것 자체에 대해서는 쌍방 간에 별다른 다툼이 없었다. 핵심 쟁점은 매도인인 건물 주인이 매매계약을 형과 체결했느냐 아니면 동생과 체결했느냐였다.


만약 건물 주인이 형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인정된다면 형은 건물의 소유권을 찾아올 수 있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원칙적으로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법에 의해 무효가 된다. 부동산은 누구든지 자기의 이름으로 직접 등기해야 하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이름을 빌려 준 동생의 등기가 부동산실명법에 의해 무효가 된다. 


동생 등기가 무효가 되면 건물의 소유권은 다시 원래의 주인 명의로 돌아온다. 그러면 형이 어차피 건물 주인으로부터 매수계약을 한 것이므로 건물 주인으로부터 등기를 이전받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명의신탁을 ‘중간생략 명의신탁’이라고 한다. 원래는 형이 자신의 명의로 등기해야 하는데 이것을 생략하고 형을 건너뛰어서 동생 명의로 등기하였다고 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동생은 자기가 건물 주인과 직접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형과 동생 간에 명의신탁을 한 것에 대해 건물 주인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만약 동생 말이 맞는다면 상황은 역전된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만약 건물 주인이 형이 아니라 동생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고, 형과 동생 간의 명의신탁 속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고 보자. 그러면 건물 주인 입장에서는 형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으므로 형에게 등기를 넘겨줄 이유가 전혀 없게 된다. 


그리고 건물 주인은 어차피 명의신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고, 이미 건물을 동생에게 매도해 버렸기 때문에, 구태여 동생으로부터 등기를 다시 돌려받을 이유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부동산실명법에서도 예외적으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한다. 다시 말하면 설사 명의신탁 계약이 무효가 된다 하더라도 이미 동생에게 넘어가 버린 소유권 등기는 그냥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매도인 선의 계약명의신탁’이라고 한다. 동생이 매매계약 자체를 형을 대신해서 체결한 것이므로 ‘계약명의’까지 명의신탁한 것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과연 건물 주인은 누구와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인가? 형과 체결한 것인가, 동생과 체결한 것인가? 명의신탁 사실을 알고 있는가, 모르는가? 


매매계약서 서류상으로만 보면 매수인 란에 동생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형의 이름은 매매계약서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형이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만난 사람은 건물 주인이 아니라 그의 여동생이었다.


따라서 서류로만 보면 형이 불리했다. 형 입장에서는 자신이 건물 주인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건물 주인을 증인으로 불러야 하나 나올 형편이 안 되어서 금융기관 직원이던 그의 여동생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증인신문에 나온 여동생은 자신이 오빠인 건물 주인을 대신해서 형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사실은 인정했다. 매매계약 체결 후 증인이 형과 함께 건물 주인인 오빠 집에 가서 오빠와 인사를 시켜 주고 “이 사람이 매매계약을 한 사람이다”라고 말한 사실도 인정했다. 


그런데 증언 중에 결정적인 부분이 있었다. 건물 주인인 오빠가 자기 집에 찾아온 사람이 구체적으로 형인지 동생인지는 잘 알지 못하였다고 증인이 진술한 것이다. 


문제가 복잡해졌다. 건물 주인이 형을 분명하게 알고서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건물 주인은 형과 매매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라 매매계약서 매수인 란에 이름이 기재된 동생과 매매계약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계약서에 이름도 기재되어 있지 않은 형과 매매계약을 한 것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법원은 매매계약서 서류를 기준으로 판단하였다. 건물 주인은 동생 하고만 매매계약을 체결하였고, 형과 동생 간의 명의신탁 사실도 몰랐다고 보았다. 그래서 매매계약을 체결한 동생이 건물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원고 패소 판결이었다.


이 사건의 패소 원인은 증인의 사소한 말 하나에 있었다. 건물 주인이 자기 집에 여동생과 함께 찾아온 사람이 형인지 동생인지를 정확하게 분별하였다는 점만 입증되었다면 원고가 승소하였을 것이다. 


결국 형은 건물의 소유권을 다시 찾아오지 못하게 되었다. 단지 건물을 살 때 형이 지불한 돈에 대해서만 동생으로부터 부당이득으로 다시 반환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사소한 디테일에 의해 재산 분쟁의 결론이 달라진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디테일의 함정이 있을 수 있다. 사소하지만 삶의 본질적인 것과 연관된 문제라면 그 디테일은 조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많은 정치인과 연예인들이 대외적으로는 큰 성공과 인기를 얻었다가도 사소한 디테일의 실수 때문에 쇠락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거대한 저수지의 둑도 바늘구멍만 한 틈이 시작이 되어 무너질 수 있다는 격언이 있다. 겉으로 남에게 보이는 화려한 성공보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디테일에서 성공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승리자가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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