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작년에 조금 한적한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집 주변에 차가 별로 다니지 않고 사람들도 붐비지 않는다. 산자락에 위치하여 산 공기가 상큼하게 몸을 감싸는 느낌이다. 산책하기 정말 안성맞춤이다.
이곳에 이사 온 후 심금을 울리는 특별한 광경을 목격했다. 노부부가 산책하는 모습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이 되면 부부가 함께 산책을 나온다. 나이는 70대 전후로 보였다.
다른 시각에 또 다른 노부부가 또 산책을 나온다. 그들도 앞의 노부부와 비슷한 또래처럼 보인다.
이들 노부부는 보통의 정상적인 부부와는 상황이 달랐다. 첫 번째 노부부는 남편의 몸이 불편했다. 아마 뇌졸중 같은 병으로 한번 쓰러지셨다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이 부부는 남편이 후유증으로 몸의 한쪽이 불편하여 남편의 재활운동을 위해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 남편이 잘 걷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가 남편 옆에 나란히 붙어 산책을 한다. 아내가 남편의 흔들리는 듯한 불안정한 자세를 붙잡기 위해 살며시 남편의 바지춤을 붙잡고 같이 걸어간다.
부부의 표정에 어떤 찡그림도 없다. 묵묵하게 앞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가끔 서로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무엇인가 속삭이며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다. 남편은 아내가 붙잡아 주는 그 손길에 의지하여 평안한 산책을 즐긴다.
또 다른 부부는 앞의 부부와는 반대로 아내 쪽이 몸이 불편하다. 앞과 비슷하게 뇌졸중의 후유증인 것 같다. 아내의 걸음걸이가 여간 쉽지 않다. 아내가 남편의 바지춤을 꼭 부여잡고 느릿한 걸음으로 남편을 따라간다.
이 부부는 이 모습으로 산책을 한지가 오래된 것 같다. 남편은 아내가 남편의 바지춤을 잘 붙잡을 수 있도록 아예 두꺼운 혁대 비슷한 특수 장비를 허리춤에 둘렀다. 뜨거운 햇볕을 막기 위해 챙이 달린 둥근 모자를 머리에 쓰고 산책을 한다.
이들 부부는 이사 온 초기부터 매우 신기하게 느껴졌다. 산책하는 동안 팝송을 흥겹게 틀어 놓고 부부가 함께 걷는 것이다. 몸이 불편한 노부부의 걱정과 한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그렇게 유쾌하고 신나게 산책하는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20대 중후반에 결혼했다면 부부로 산지 40년은 넘었을 것이다. 젊었을 적 건강한 몸으로 자녀 낳아 키우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세월이 빠르게 지나갔을 것이다. 부부 중 어느 한쪽의 몸이 약해지고 병들어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부부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몸이 성한 배우자는 기꺼이 몸이 불편한 배우자가 기댈 수 있는 지팡이가 되어 주었다. 세월이 흘러 갈수록 더 깊게 쌓여가는 부부의 사랑과 신뢰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 이혼이 흔한 현상 중의 하나가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OECD 국가들 중에서도 매우 높은 편에 속한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1990년대 후반의 IMF사태로 인한 국가 경제 파탄이 가정에까지 여파가 간 것 같다. 살기가 팍팍해지다 보니 서로를 돌보는 것을 포기하고 가정을 깬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여기에 이혼소송이 예전보다 쉬워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변호사 숫자가 많아지며 이혼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도 덩달아 많아졌다.
지하철을 이용하다 보면 이혼소송 전문가라고 홍보하는 광고도 심심찮게 보인다. 어떻게 보면 배우자를 적대시하고 부부관계에 문제 있으면 언제라도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으라고 조장하는 듯한 광고도 있다.
그러나 부부로 맺어진 가정은 문제가 있다고 곧바로 해체해야 하는 관계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삶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가치가 되는 것이 가정이고 부부이다. 부부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가정을 깨는 것이 아니라 이를 회복시켜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제 궤도에 올라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변호사의 역할은 그런 가정회복과는 거리가 먼 측면이 많다. 가정에 문제가 있을 때 변호사는 보다 확실하게 이혼사유를 찾아내 이를 상대방에게 공격하는 역할을 떠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재산분할 같은 문제도 가정 회복이라기보다는 이혼 후의 사후 처리 절차에 불과하다.
개업 후 이혼 사건은 수임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 가정이 소중하면 남의 가정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타협하고 화해하려 하다가도 변호사가 개입하면 이미 법적인 단계로 들어가 편이 갈라져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이혼 사건을 수임하지 않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수임해야 할 두 건의 특수한 케이스가 있었다. 집에서 거의 내 쫓겨나 동사무소 보호소에 기거하던 70대 후반의 남성 노인이 거주할 집 마련을 위해 생존권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이혼과 재산분할을 의뢰한 건이었다.
또 한 건은 결혼 초에 남편의 심한 폭력으로 집에서 쫓겨난 60대 후반의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이후 40년 이상 남편을 만난 적도 없었고, 이미 다른 남성과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고 살던 중 성인이 된 그 자녀의 호적 정리를 위해 사건을 의뢰했다. 폭력 전과범인 남편은 이혼 소송 중 교도소에서 병으로 사망하여 자동으로 이혼소송이 종료되었다.
이 두 건을 제외하고 이혼 사건은 아예 수임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 변호사 업에서 은퇴하고 삶을 정리할 때가 오면 나 자신이 후회할 것 같았다. 남의 가정을 얼마나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느냐고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면 말이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동네 어른들이 지게를 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지게에 나뭇가지, 곡식 가마니, 살림 도구 등 수많은 짐들을 실었다. 그냥 가볍게 싣는 정도가 아니라 혼자서 도저히 지게를 지고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실었다.
옆에서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지게를 도저히 혼자서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그런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지팡이만 있으면 그 지팡이에 의지하여 거뜬히 그 무거운 지게를 지고 벌떡 일어났다. 지팡이의 힘이 그렇게 셌다.
부부로 살아가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몸도 노쇠해진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느 한쪽이 아프고 무력해질지 모른다. 그때 옆에서 힘들고 아픈 배우자를 지탱해주고 버텨주는 지팡이와 같은 동반자가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도 두 쌍의 노부부는 배우자의 바지춤을 붙잡고 행복하게 걸어간다. 남편과 아내가 영원한 사랑과 신뢰로 꽉 붙들어 매었다. 배우자는 기꺼이 상대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을 위한 지팡이가 되겠소! 나를 붙잡고 힘차게 걸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