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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선생 Oct 08. 2019

결혼 3년 8개월, 나는 성공했다. 우리 집은 망했다.

5년간 5억 벌기 첫 번째 이야기

2016년 1월.
결혼을 했다. 지적이고 아름다운 여자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가끔은 또 싸운다. 즐겁게 보내는 시간은 우리 둘에 집중하고 있을 때고, 싸울 때는 결혼 제도 하에서 파생되는 여러 문제들을 다룰 때다. 20세기 말의 사고를 갖고 있는 나와 21세기의 사고를 갖고 있는 아내는 서로 대화를 하며 조율할 수 있다. 다만, 21세기 여성과 19세기 사람들이 결혼을 통해 가족으로 묶이면 어려움이 발생한다. 이는 앞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어쨌든, 아내와 나는 그렇게 산다.

부모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에서 우리는 반반 결혼을 했다. 각자 7년간 번 돈을 탈탈 털어서 억이 넘는 큰돈을 덜덜 떨며 빚을 내서 집을 샀다. 산꼭대기 좁은 아파트였지만 신혼집으로서 아쉬움이 없었다. 돈을 조금이라도 절약하겠다며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수많은 결정을 하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우리 품이 들어간 소중한 집에서 재밌게 3년 여를 살았다. 만원 마을버스에 몸을 싣고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집이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4년 동안 우리는 정말 아끼며 살았다. 각자 15만 원의 용돈만을 받고, 외식을 최소한으로 하며, 차는 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남들이 신혼 때는 분위기도 내고 살라고 해도 웃고 말았다. 함께 소소하게 하루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다. 지금도 그렇다.

2019년 8월.
우리는 부부로서 인생의 큰 결정을 했다.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서울 중심부의 깨끗한 아파트다. 강남 2세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이상한 홍보를 하는 동네. 4년간 1년에 5000만 원씩 빚을 갚았고, 우리가 살던 집값이 (개인에게는) 다행스럽게 올랐으며, 전에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빚을 겁내지 않았던 결과다. 더 이상 마을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 직장까지 몇 번이고 환승하지 않아도 된다. 출근길 엘리베이터에서 10분이나 기다릴 필요도 없고, 조금이지만 한강이 보인다. 맞다. 나는, 우리 부부는 경제적 성공의 길에 진입했다.

우리집..

2019년 9월 말.
10월 초 입주를 앞두고 부푼 마음과 긴장된 마음만 가득했다. 모든 일이 잘될 것만 같았다. 출근을 하려는 데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에 절대 전화를 하지 않는 아버지. 가족을 많이 힘들게 해서 밉지만, 안쓰러움도 갖게 하는 사람. 심장이 두근거렸다. 목이 잔뜩 잠겨 전화를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생각이 나 고통스럽다.

우리 아버지는 굴절 스카이 사다리차를 몬다. 그 거대한 3.5톤 스카이차가 고속도로에서 전복이 됐다는 전화다. 차는 반파되었고, 아버지는 천운으로 외상은 없다고 했다. 감사한 일이다.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지 , 아니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계산적인지 잠시 후 다시 깨달았다. 아버지가 무사하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데, 차에 껴있는 빚이 생각났다. 1억 8천짜리 차다. 엄마와 아빠는 이제 노인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다. 집도 담보 대출이 남아있다. 차는 산지 고작 3년밖에는 안됐는데... 이런 차는 사고 위험 때문에 자차 보험을 들어주지 않는다.

감사함. 그리고 걱정..

앞이 깜깜했다. 엄마를 통해서 앞으로의 계획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는 예의 그 평소의 무계획처럼, 차는 폐차시키고 젊을 때 하던 샷시 공사 일을 나가겠다고 했단다. 아.. 진짜.. 제발 쫌. 엄마에게 매달 주던 생활비는 앞으로는 줄 수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말이다. 엄마의 한숨 소리가 전화가 너머로 전해졌다.

어떡해야 하나...
난 이미 빚이 정말 너무 많은데...
빚이 없어도, 아내 몰래 부모님을 도울 수도 없는 건데...

2019년 10월 5일.
어제 나는 이사를 했다. 정말 멋진, 중산층들이 선망하는 그 집으로. 행복했다. 그러나 행복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다른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엄마가 말했다.
"니 계좌로 200만 원 보냈어. 그래도 이사 가는데 엄마가 니 면이라도 세워줘야 하잖아. 엄마 걱정은 하지 마."
아.. 진짜... 엄마도... 제발... 이러지 말라고..
제발 내 인생 걱정하지 말고, 엄마 인생에만 집중하라고 했다. 다시 돌려받을 엄마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맡아 놓는다고 했다. 엄마가 얘기하면 언제든지 다시 줄테니까 일단 받겠다고 고맙다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엄마도 돈 있다고 하는 엄마 목소리에 가슴이 찢어졌다. 너무 슬픈 날이었다.

2019년 10월 6일.
하루 동안 집을 많이 정리했다. 이제 이사는 머리에서 지우고 앞으로를 계획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고 있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부부의 돈이 아니라 내 돈. 엄마 아빠를 지원해줘도 되는 가욋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돈을 꼭 벌 생각이다. 무슨 일이 할 생각이다. 합법의 테두리라면. 방과 후 학교든, 유튜브든, 블로그든, 연수 강사든, 영어 책을 쓰든, 그게 뭐가 됐든 중요하지 않다. 면이 팔리는 건 겁이 나지 않는다. 손가락질이 두려운 사람이지만 상관없다. 천 원이든 만원이든 중요하지 않다. 내게는 돈이 필요하다. 브런치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래도 시작해본다. 가난이 인간을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스물다섯 해가 넘도록 지겹게 경험했다. 내 부모님을 그 공간 속으로 몰아넣는 일.. 더 이상은 싫다.



<현재 잔액>

200만원(엄마가 준 이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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