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나 Jun 20. 2022

<엄마 없는 게 자랑이니?>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반에는

아는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소꿉친구들과 같은 학교를 가겠다고

가장 빈자리가 많았던 학교에 지원을 했던 탓이었다.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층이 달라서 등하교 때를 제외하고

만날 일은 잘 없었고 새로운 환경이 두려웠던 나는 위축되어있었다.


숨길 게 있는 사람은 더 요란하거나

더 수그러드는 게 보통인데,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수그러드는 편이었기에 더 그랬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사실과 집에 돈이 없다는 사실 같은 나의 결핍을 아무도 모르길 바랐다.

엄마의 빈자리는 익숙해졌지만, 자존심이 더 강하기도 했고.






담임선생님은 안경을 쓴 깐깐한 얼굴의 중년 여자였다.


학생들에게 정 붙일 요량은 없었는지,

항상 짜증스러운 얼굴로 지시사항만 깔끔하게 안내하고는 뒤돌아 서 나갔던 여자였다.


입학하고 나서 제출해야 할 서류들이

꽤나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기한에 맞게

제출했으나, 등본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무인발급기 같은 건 없던 시절이라 동사무소(행정복지센터) 운영시간에  직접 방문해야 등본을 뗄 수 있었고,

엄마가 만들어 둔 빚을 갚기 위해 하루 종일 현장일을 하는 아빠는 등본 떼러 갈 여유 따위는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11시까지 강제 야자를 하느라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고.


등본 떼러 나갔다 와도 되겠느냐는 요청에,

1학년은 야자를 뺄 수 없다는 말만 앵무새같이 반복하던 그 여자는, 결국 내 자존심을 지근지근 밟기로 작정을 한 듯했다.


입학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반에서 등본을 내지 않은 사람은 나와 두어 명 친구만 있을 뿐이었다.

안경잡이 중년 여자는 조회 시간에 한 명씩 호명하며 왜 가져오지 않는지 이유를 묻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던 나는 모기 숨소리 만한 목소리로 집에 동사무소 다녀올 시간이 있는 사람이 없다고 대답을 했고,

그 여자는 반 친구들이 모두 있는 앞에서 무심한 듯 말을 뱉었다.


"엄마 없는 게 자랑이니?

다음 주까지 가져와. "

지금 같은 성격이었다면 아스팔트 바닥에

눌어붙은 껌처럼 조곤조곤 말로 눌렀겠지만,

가정의 문제가 큰 컴플렉스였고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사춘기 여자아이는 그러지를 못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채로 간신히 대답만 했을 뿐.


엄마 없는 걸 정말 자랑삼았던 줄 알았는지,

장염에 걸려 아침 내내 화장실에 들락거리다 연락하고 지각하던 날에도 아무 말이나 뱉었다.


"거짓말하지 마.

엄마 없어서 못 일어난 거잖아.

아빠한테라도 깨워달라고 해.

너 같이 거짓말하는 애, 딱 질색이야."


가정에 모자람이 있는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아무튼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내가 아침저녁으로 보던 그 어른이 선생은 선생이었는지,

나에게 전해준 교훈은 정말이지 인생의

큰 가르침이자 기준이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무기로 삼는 파렴치한.

편견으로 사람을 편협하게 대하는 좁은 사람.

내 생각의 우물에 갇혀버리는 개구리.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비겁자.


나는 그런 어른은 절대 되지 말아야지-

라는 그런 교훈.



이전 01화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