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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Jun 04. 2021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오늘같이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면 한 번씩 엄마가 떠오른다.

차라리 죽은 거였으면 마음껏 사랑하며 그리워라도 했을 텐데, 한창 엄마 눈길이 필요한 나이에 사라져 버린 엄마는

나에게 사람 간의 정 떼는 방법을, 내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방법을 그리움 대신 알려주었다.


비가 오는 것도, 안 오는 것도 아닌 꾸물꾸물한 오늘 같은 날씨의 아침, 엄마는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식사했던 그릇들을 씻고 있었다.

학교에 늦어 머리도 못 감고 뛰어나가려는 나를, 엄마는 굳이 붙잡아 말을 걸었다.


“학교 잘 다녀와, 사랑해.”


대충 알겠다고, 나도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휘리릭 나가는 내 마지막 뒷모습을 엄마는 어떤 표정으로 보고 있었을까.

나는 내 자식 이틀만 못 봐도 마음이 아린데, 엄마는 어떤 표정으로 자식과 연을 끊고 살았을까.




학교에 다녀오니 식탁 위에 편지봉투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하나는 아빠에게, 하나는 나에게 주는 편지.


편지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하다, 아빠 말 잘 듣고 있어라. 아마 그런 말들이었겠지.

하지만 그 편지를 아빠가 읽던 순간의 장면은 사진처럼 머릿속에 남아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은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고, 아빠의 눈동자는 갈 곳을 모른 채 흔들렸고 이미 몇 시간 전에 편지를 읽었던 나는 소파에 앉아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갑작스럽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사라졌고 엄마의 부재와 함께 가난이 찾아왔다.

엄마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갔고, 평수를 넓혀 이사 가기 위해 매입했던 집을 팔아 돈을 가져갔다고 했다.

그리고 돈을 내라는 독촉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왔고.


아빠도 본인의 멘탈을 붙잡고 있기가 버거워 매일 밤 소주 없이는 잠에 들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자식들까지 챙기기엔 역부족이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제출하거나 은행에 가야 할 일,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까지 14살 때부터 혼자 했다. 그렇게 내 한 몸 지키기 급급한 상황에서 8살 동생의 엄마 노릇에 집안 살림까지 도맡았으니 그 시절의 나는 참 바빴던 것 같다.


학교 마치면 동생을 데리고 밥 안치고 빨래를 돌려야 했기에 함께 놀자던 친구들을 따돌리기 바빴다.

 엄마 없는 티 내지 않기 위해 바빴고

 엄마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숨기고 말 돌리기 위해 바빴다.

어떨 때는 한창 유행하는 메이커 운동화를 사달라고 말할 수가 없어 짝퉁 운동화를 찾기 바쁘기도 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은 아빠의 가난과 엄마의 부재를 숨기기에 급급했고, 그렇게 낮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집에 돌아왔을 때 찾아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무력감이, 그리고 공허함이 날 덮었다.

주위 친구들의 화목하고 유복했던 가정에 더 비교가 되어 매일 밤 잠들지 못하고 새벽까지 방황을 했다.


내 나름대로는 행복한 유년이었는데, 나와 함께한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출국하기 직전 공항에서 전화한 엄마를 붙잡는 말도 한마디 못 했다.

이따금씩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앉아 밤을 지새우는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던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고,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옆에 있고 싶은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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