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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Jul 23. 2021

<손, 발이 움직이지 않는 병> ep.01

25살 여름의 어느 날, 양 새끼발가락의 감각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당시 군사교육기관에 있었던 나는, 하루 종일 딱딱한 전투화를 신었기 때문에-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누가 전류를 흘려보내는 것처럼 양 발이 저려왔고 뒤이어 손바닥도 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대전에 있는 어느 통증의학과 의원에 찾아가 진료를 받았는데, 모르톤 중족 골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괜찮아질 거라고 했지만 낫지 않아서 꽤 큰 병원 축에 속하던 국군 지구병원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모르겠다는 의사의 소견이 되돌아왔다.


더 이상 교육을 빼먹을 수 없어 그 상태로 교육을 수료했고 자대 배치를 받은 후에는  다리를 절기 시작했다. 나는 다리를 저는 사실을 몰랐는데, 뒤에서 내 걸음걸이를 보던 주변 사람들이 말해주어 알게 됐다.


놀란 나는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했다. 디스크를 의심하며 한 달 뒤에 촬영 일정을 잡아주었지만,

많은 군인 환자들이 그렇듯 바쁜 부대 일정으로 결국 못 가게 되었다.


우리 부대는 특히나 장교 수가 적은 부대였기 때문에, 당직사령 근무의 텀이 굉장히 빨리 돌아오는 편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많을 때는 세 번씩 꼬박꼬박 밤을 새우고도 그 다음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과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평일 중간에 휴가를 내야지만 갈 수 있는 타 지역의 종합병원을 쉽게 갈 수는 없었다.


당직근무이거나, 훈련이거나, 작전이거나, 과장님 근무이거나(과장님 대리로 내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기 때문) 하는 일과 속에서 갓 부임한 신입 소위에게 평일 중간의 휴가는 사치이기만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치이며 보내던 중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신호가 찾아왔다.

손발의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마취주사를 맞은 것처럼 물건을 집어 들어도 손에 뭐가 만져지는지 감각을 느낄 수가 없어졌고

타이핑에 점점 오타가 늘기 시작했다.


결국 무리하게 휴가를 내고 일산의 백병원에 입원해서 여러 가지 검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손발에 전기자극을 주는 검사를 진행하고, 등에 관을 꽂아 척수액도 뽑았다.

그러고 나서 받은 진단명은 “만성 염증성 다발성 탈수초성 신경병증(약칭 CIDP)”.

뒤이어 의사는 자가면역질환에 희귀 난치병이라는 소견을 내어놓았고, 진단을 내린 본인조차도 신기하게 나를 바라봤다.


다시 부대로 복귀해서 치료를 명목으로 휴가를 신청했고 당직근무로 밤을 새운 다음날에야 면역글로불린 주사를 맞기 위해 입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복귀한 날에는 역시나 당직근무 투입이 이루어졌고.


그렇게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맞았는데도 불구하고, 가장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잘 난다는 면역글로불린은 안타깝게도 나에게 맞지 않았다.


그리고 증상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손잡이 없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없었고,

젓가락을 쓸 수 없어 포크를 휴대하고 다녔다.

정말 심할 때는 손가락으로 마우스 클릭이 어려워 손목으로 클릭을 했고,

글씨를 쓸 일이 있을 때는 펜을 쥐기가 어려워 주변 병사들에게 부탁을 했다.

심지어 화장실에 한번 가면 바지 지퍼를 올리지 못해 낑낑거리기 일쑤였다.


갑자기 찾아온 장애를 받아들일 수 없어 내가 믿는 신에게 원망을 돌렸고,

힘들게 견뎌 얻은 첫 직장을 잃고 말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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