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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나 Aug 06. 2021

<밥 한숟가락 만큼의 약> ep.03

자가면역질환인 cidp를 병원에서 다루는 방법은 '대증치료'이다.
말이 치료지, 실상은 증상을 억누르는 것에 불과한 약물투여라고 보면 된다.

원인을 낫게 할 약이 없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약물로 증상만 조절할 뿐이라는 것.

우주에 사람이 발을 딛고, 사람이 산과 바다를 평지로 바꾸어버릴 수 있는 시대에 살면서, 치료할 약이 없는 병이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싶었다.

처음 시도했던 치료는 면역글로불린으로 특정 면역을 떨어뜨리는 것.
가장 부작용이 적고 효과가 크다고 알려져 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별 효과가 없었다.

두 번째로 시도했던 약은 소론도정, 즉 스테로이드제였다.
다행히 스테로이드는 나에게 잘 맞았고, 어느 정도 손발의 감각과 근력을 돌아오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스테로이드는 장기적으로 쓸 수 없는 약이었다.

장기 사용의 대표적 부작용으로는 각종 감염증, 내분비계, 소화기, 정신-신경계, 근골격계, 체액-전해질, 녹내장과 백내장을 포함한 눈의 문제, 혈액, 심장, 피부 등의 계통에서 수많은 질병들을 낳는 것이었다.

대표적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부작용이 너무나 많았고, 나 또한 장기간 넘어가게 되자 혈액검사와 골다공증 검사를 하라는 의사의 조언을 듣게 됐다.

스테로이드를 장기적으로 쓸 수 없어서 서서히 바꾸었던 세 번째 약물은 면역억제제.

가장 먹기 힘들었던 약이었다.

내 몸의 전체적인 면역을 떨어뜨리는 약으로, 대표적 부작용으로는 ‘암’이 있었다.
암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약을 먹기 시작했고, 손발을 거의 정상인처럼 쓸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나는 수시로 아프기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고열에 시달렸고, 각종 감염에 시달렸다.
응급실도 툭하면 실려갔고, 수시로 각양각색의 병원들을 드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내가 한 번에 먹었던 약과 영양제들이다.

면역억제제와 스테로이드제,
약에 의한 손상을 막기 위한 위장약, 골반염을 앓고 있어서 먹기 시작한 항생제와 소염진통제, 염증에 좋다는 오메가 3와
손떨림을 잡아준다는 마그네슘(병의 증상 중 하나였다),
정상적인 면역기능을 돕는다는 아연과 비타민D.

예전 같으면 열 알 정도의 알약은 그냥 털어 넣고 물 한 모금 마시면 끝났을 것을,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약을 한 알씩 입에 넣고 물을 반 컵씩은 마시고서야 약을 넘길 수 있었다.

그것도 중간에 몇 번은 목에 걸려 켁켁 거리기도 부지기수였고.

고르고 골라 꼭 필요한 것만 챙겨 먹는데도 약과 영양제가 밥 한 숟가락의 양이었고,
삼키고 나면 기분이 그렇게 나쁠 수가 없었다.

-간에 무리가 가서 또 다른 병에 생기는 건 아닐까, 안 그래도 면역력도 한참 떨어뜨리는 중에 있는데.
병증을 억제시키고자 다른 병을 키울 수 있는 약을 먹는 게 맞는 건가,
암에도 걸릴 수 있다는데.
약을 밥보다 더 잘 챙겨 먹어야 하는 이 날들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

죽기 전에 낫기는 낫는 걸까. -

등등의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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