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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루시아 Jun 11. 2023

내 사랑하는 아이를 생각하며

다시 일상으로 발을 내딛는 중



창 너머 담쟁이넝쿨이 손을 흔든다. 가만히 앉아 주일을 즐기는데 카페 별채에 앉은 손님은 우리 가족뿐이라 내 집인 것처럼 주변을 살핀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나지만, 나만큼이나 딸아이도 기쁘게 웃는다. 온전히 저에게 집중하며 대화를 하고 웃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휴일에 자모회 회원들과 자녀들이 함께 친목 도모 겸 야유회를 다녀왔다. 엄마들의 다과 모임에 아이들을 끼운 모양새였지만 모두가 즐거웠다. 그 어떤 날보다 새파랗게 높은 하늘이 우릴 반겼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도 흥이 넘쳤다. 그렇게 이른 저녁까지 먹고 산책 삼아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깔깔대며 저들만의 수다 타임을 즐겼다. 엄마들도 저녁 상차림 해방이 반가워  헤어짐을 늦추며 더디 걸었다. 가장 어린 주일학교 아이가 감사하게도 나를 큰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 내 아이는 다른 동생과 잘 어울리며 놀기에 그 꼬마 아가씨와 보도블록을 걷는 내내 흰 돌 까만 돌 밟기를 했다. 안아달라 보채지도 않고 긴 길을 그 놀이에 열중하며 제법 오래 걸었다. 딸아이도 어릴 적에 함께 잘 했던 거라 예전 생각이 나서 속으로 웃었더랬다.

아이가 세 살 되던 해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렇게 바깥 일에 지치고 나를 달래가며 지내느라 아이에게 조금 소홀했던 건 사실이다. 아이보다 내가 먼저 지치는 날이 많아서 아이의 원껏 데리고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주변을 돌아보는 것 같지만 워낙 나를 중심에 두고 사는지라 오히려 가족들에게 소홀했을지 모르겠다. 느닷없이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즐거운 반나절을 보내고 온 아이가 아빠를 보자마자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기 때문이다.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동생하고만 그렇게 놀아줘서 한이 됐단다. 글쎄, 열 살짜리 꼬마가 한이라는 말을 이렇게 쉽게 해도 되나 싶다가 서운했겠다 생각이 들어 이내 사과를 하고 안아 주었다.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아 엄마가 이제 곧 일을 쉴 테니 네가 방학하면 아침 산책을 함께 하며 원 없이 그렇게 놀아보자 이야기했더니 금세 다독여졌다. 내 안을 돌보려 시작한 바깥일에 결국 내 안이 곪아서야 일을 쉬게 되었지만 쉬면서 해야 할 우선순위 목록이 이렇게 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꽤 오래 ‘나’와 긴 고민을 거듭해왔고 그 고민은 현재 진행중이다. 아이의 성장과정과 마찬가지로 꼬마 어른인 내가 자라고 있는 과정인 걸 알기에 달게 받아들이며, 내게 정말 소중한 것이 무언지 알고 그것들을 지키는 데 더 애를 써야겠다.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내 가족과 충분히 눈 맞추고 엄마를 너무 좋아하는 우리 집 꼬맹이에게 넘칠 만큼의 사랑을 주어야겠다. 언제나 사랑이 고픈 우리, 이제 다시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 내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 힘찬 발걸음으로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걸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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