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처럼
"왜 영어공부를 해? 이제 편하게 살아도 되잖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공부할 영어책부터 구입한 나에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남편이 말했다.
듣기 평가하듯이 말고 영작하듯이 말고 술술 생각하는 대로 영어가 툭 튀어나오면 좋겠다. 지난 5년 동안 영어 때문에 아이들 학교에서 원어민을 만나면 얼마나 기가 죽었던가. 영어를 제2 외국어로 사용하는 같은 환경의 학부모를 만나면 괜찮은데 영국인이나 미국인을 만나면 이랬다. 얼굴에 만연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듣기 평가만 하다 돌아오길 여러 번이다.
BTS며 기생충으로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그 절정기의 한복판에 유럽에 살고 있었다. 어깨가 얼마나 으쓱 올라가던지 말해 무엇할까. 한국말을 귀신같이 알아듣고 한 마디라도 건네고 싶어서 다가오는 외국인들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반가웠다. 연예인들이 외출하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파리, 영국처럼 대도시는 물론 한적한 소도시에서조차 K-문화는 널리 퍼져있었다. 여행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한국 좋아요."를 듣는 일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왔는지, 중국인인지 헛갈려하고 한국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BTS 최고다.
간결하고 우수하고 게다가 컴퓨터나 휴대전화에서도 편리하게 쓰이는 한국어가 세계공용어가 되기에 딱인데 아직까진 영어니까. 어느 나라에서 뭘 하든 준비된 자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이다. 다국 전 모임에서 알게 된 독일인이 자기 딸이 BTS 팬이라며 한국어 과외를 부탁해 왔다. 내 실력을 잘 알기에 아쉽지만 지인을 연결해 준 적이 있다.
집에서 영어책과 애니메이션으로 영어를 익혀온 아들들은 외국으로 전학 오며 훨훨 날아다녔다. 영국인 담임 선생님이 그동안 어떻게 영어 공부를 했는지 물어볼 정도였다. 원어민 학생보다 영어 성적이 더 좋았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게 하려고 만화를 틀어주었고 그 틈에 나는 집안일을 하느라 바빴다. 두 아이가 화면을 보며 깔깔깔 웃고 만화 속 주인공들의 말을 자연스럽게 따라 했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 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자그마치 5군데의 도서관을 들려서 영어책을 대출했다. 그때 내 취향의 책도 한 권쯤 빌려볼걸. 좋아하는 영화 <줄리 & 줄리아>를 보며 영어 듣기를 하고 있다. 혼자서 보니 감흥도 덜하고 바로 써먹을 곳도 없고 엄청 더디다. 요즘도 엄마표 영어가 성행 중이니 딱 하나만 얘기해 주고 싶다. 집안일은 잠시 밀어 두고 아이들과 같이 앉아 즐기라고 말이다. 나를 위해 한 끼 정도는 외식이든 밀키트에 맡기자. 아이들만큼 영어 좀 하게 되면 무엇을 하게 되든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