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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새 Sep 24. 2022

5. 안녕? 잘부탁해

3월 1일에 힘들어서 잠만 잘 줄 알았으나, 오히려 다음 날 출근한다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찍어온 아이들이 사진과 이름을 반복해서 보고 또 봤다. 원장님과 만날  때 한번 본 게 다였지만, 우리반이라는 생각이 들자 뭔가 굉장히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10명의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만 익히다가 밤이 되었다. 잠에 들어야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설렘과 떨림 그리고 무서움이 덮쳤다. 


'혹시나 지각하면 어쩌지? 애들이 내가 커서 무서워하면 어쩌지?'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제 정말 자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든 것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잠을 자야 내일 일할 수 있음을 알았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감기 기운도 없는데 시판용 감기약을 먹었다. 그곳에 있는 수면유도 성분을 이용하자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다행히 나의 생각이 적중했다. 감기약을 먹고 눈을 뜨니 이미 아침이었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화장을 했다. 첫 출근일이니 검은 슬렉스에 블라우스를 차려입었다. 준비를 모두 마친 시간은 오전 7시 30분이었다. 8시에 출발해도 늦지 않았지만, 혹시나 혹시나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 빨리 집을 나섰다. 뭔가 직장인으로 집 밖으로 나서자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20살이 넘어서면서 사회가 인정한 어른이긴 했으나, 뭔가 직장인이 되서 내 밥벌이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자 진짜 어른이 된거 같았다.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어깨가 쭉 펴지고 발걸음이 당당해졌다. 버스를 타고 원으로 향하는 길 내내 속으로 '안녕? 내가 너의 선생님이야~ 안녕? 안녕?'이라고 하며 안녕의 137가지 버전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했다. 내 머릿속에 아이들은 3살의 귀염뽀작한 아이들로 내가 안녕? 인사하면 방긋하고 웃어주었다. 


드디어 버스에서 내려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이제 내 직장이라고 하니 어색하고 낯선 기분보다는 익숙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전 당직을 하신 선생님들이 미리 보일러를 켜놓으셔서 원안은 따뜻했다. 이미 원에는 나보다 먼저 등원한 아이들이 3명이나 있었다. 


"안녕하세요~" 당직 선생님에게 인사를 건넨 후 나는 우리반으로 들어갔다. 반에 있는 교사 장에 앞에 섰다. 

교사장에 붙은 ***선생님 이라는 글자가 이제는 어색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교사장의 문을 열고 겉옷과 가방을 내려놓은 후 아이들의 얼굴이 붙은 바구니와 서랍장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8시 50분이 되자 선생님들이 모두 출근하셨고, 유아반에서 아침 회의를 했다. 회의라고 해봤자 그냥 아침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그렇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반으로 들어왔다.


9시가 되자 심장이 쿵쾅 쿵쾅 뛰기 시작했다. 영아반이었기에 신입원아 적응 프로그램을 진행해야했다. 미리 준비한 프로그램 활동을 반에 세팅하고 아이들과 부모님이 오시길 기다렸다. 


"띵동~"


드디어! 우리반 벨이 울렸다. 나는 반에서 열림 버튼을 누르고 현관으로 갔다. 그곳에는 어머님과 남자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안녕? 영준아?"


나는 반갑게 아이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가 엄마의 뒤로 숨었다. 다행히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어제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길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님 이리로 오세요"


파트너 선생님이 어머님과 아이를 반으로 안내했다. 아이들이 울거나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울거나 하지 않았다. 아이들 10명과 부모님 한분씩이 모두 반에 들어오자 작은 반이 사람들로 복작거렸다. 기존에 원에 다니던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한데 섞여서 엄마, 아빠 혹은 할머니 , 할아버지와 반에 있는 장난감과 환경을 탐색했다. 


"재아는 블록을 가지고 노는 구나~ 우와 우리 연준이는 뭐를 가지고 노나? 엄마랑 요리놀이하네"


파트너 선생님은 어머님이 있으심에도 능수 능란하게 아이들과 상호작용을 나누고 계셨다. 나는 그에 반해 어머님과 아버님들이 아이들과 이야기 하는데 어디에 끼어들어야할 지 몰라 멀뚱 멀뚱 서있었다. 몇 번 말을 시도했으나, 아이가 엄마쪽으로 몸으로 돌리는 것을 보고 금방 주눅이 들었다. 파트너 선생님은 눈짓으로 나에게 '선생님 이야기 해요~'라고 이야기 하시는 거 같았으나, 도무지 할 수 가 없어서 그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아이와 같이온 어머님,아버님, 할머님, 할아버님이 아이를 데리고 하나 둘 반을 빠져나가셨다. 그런데 몇몇 아이의 어머님과 할아버님이 파트너 선생님과 바쁘게 눈빛 교환을 하고 계셨다. 


'뭐하시는 거지?'


눈빛 교환의 의미는 오래 지나지 않아 밝혀졌다. 


"엄마 이제 회사 갈게! 영준이 좀있다가 보자~"

"안녕~"


기존에 재원했던 아이들의 어머님들이 할아버님들이 아이들을 두고 반을 하나 둘 떠나셨다. 그나마 저렇게 말하신 부모님이나 할아버님은 나은 편이었다. 몇몇 부모님은 말없이 유령처럼 스르륵 문 밖으로 사라지셨다. 


부모님은 모두 떠나고 재원하는 아이들이 반에 남았다. 잠깐의 정적 후 

"쓰으 읍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영준이가 눈물을 가득 머금은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으아앙아아!!!!!!" 하는 울음 소리가 터져나왔다. 


영준이의 울음이 스타트 신호였다는 듯 남아있던 5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울음을 터트렸다. 파트너 선생님은 짧게 한 숨을 내쉰 후 자리에 앉아 한 팔에 한 아이씩 안아 달래시기 시작했다. 


나도 영준이에게 다가가 영준이를 안아올렸다. 아이의 무게가 생각보다 많이 나가 깜짝놀랐다. 그바람에 아이를 떨어뜨리뻔 한 나는 아이를 안은 채로 자리에 앉아 아이를 달랬다. 한 팔에 하나씩 아이를 안고 남은 아이 한 명은 파트너 선생님이 자신의 다리위에 올리셨다. 아무리 아이를 안아서 달래도 아이들의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안아주고 괜찮다고 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수만번 그린 "안녕?"하는 인사와 그 인사를 보고 방긋 웃는 아이는 없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우는 아이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우는 소리에 귀가 무뎌졌을 때 문이 열리고 점심식사가 반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우는 아이들이 밥을 보고 울음이 잦아들었다.밥을 줘야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한 시간 가량의 우는 소리로 인해 몸과 귀가 피로해져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맘같아서는 애들이고 뭐고 다 두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선생님 밥 세팅 좀.. 아 일단 애들 좀 받아줄래요? 내가 밥은 세팅할게요"


나는 사실 파트너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셨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파트너 선생님이 데리고 있던 3명의 아이를 내 쪽으로 밀어둔 후  아이들의 밥을 세팅하러 가셨다. 파트너 선생님과 떨어진 아이들은 세상이 떠나가라 울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멍했던 귀와 정신이 더욱 아득하고 멍해졌다. 


어찌저찌 점심식사가 준비되었다. 파트너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 명씩 데리고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기고 책상에 앉혔다. 파트너 선생님이 일을 하는 것을 보니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나도 우는 아이를 달래며 손을 씻기고 책상에 앉혔다. 


"오늘은 일단 애들 밥을 먹여준다고 생각해요."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른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들의 목에 턱받이를 하나씩 해준 후 밥을 먹였다. 좀 전까지 울던 아이들이 맞는지 참새처럼 넙죽넙죽 잘 먹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뭔가 귀엽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는데 자기들만 남아 어린이집에 있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다먹이고 어찌어찌 낮잠 이불을 깔았다. 그리고 아이들을 눕혔다. 


반에 불이 꺼지자 아이들이 더욱 극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울고 또 울고 울었다. 도대체 언제 이 울음이 그칠까? 하는 의문이 머릿 속에 가득했다. 생각해보니 점심조차 먹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이미 아이들의 울음 소리를 소화하느라 온 몸의 진이 빠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멍한 채 기계적으로 아이들이 가슴부분을 토닥였다. 파트너 선생님의 손길에 아이들의 울음이 하나씩 잦아들고 아이들이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선생님 많이 힘들죠?"


파트너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웃어보였다. 


"오늘은 내가 키즈노트 쓸테니 선생님은 좀 쉬어요. 애들 가고 나서 내가 알려줄게요. 그래도 다행히 오늘은 다 일찍 데려가신 댔어요~"


나는 작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후 아이들의 서랍장에 기댔다. 온 몸의 진이 모두 빠져나간거 같았다. 빨리 집으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시계는 야속하게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직 퇴근까지는 4시간이나 남아있었다.귀에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천천히 내 주위의 자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아이들은 천사라는 말이 진짜구나 싶었다.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았다. 작은 눈과 조그만 코 그리고 작은 입과  꼬물거리는 손과 발까지 너무도 귀여웠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진짜 이 아이들이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오늘 제일 먼저 만난 영준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 했다. 


"안녕? ***선생님이야 잘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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