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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새 Sep 23. 2022

4. 새벽 3시

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로 정한 날짜는 3월 2일이었다. 임용일은 3월 1일이었으나, 삼일절은 국가공휴일이기에 실질적 임용일은 3월 2일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한 나 또한 3월 2일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뜻밖에 반을 배정받고 집으로 가는 길 어린이집 단체 톡방에 초대되었다.  어색하게 "안녕하세요~"라며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만1세 배정이라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으며 겨우 인삿말을 나누고 잠시라도 쉬려는 찰나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2월 20일에 어린이집 오티날이니 그 전날과 당일 원으로 와주세요. 2월 26일부터 28일까지는 신학기 준비하겠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3월 2일까지는 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니...뭔가 내 방학을 갑자기 빼앗긴 기분이었다. 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취업하기로 했고 나는 일개 직원이니 까라면 까야했다.


원장님이 말한 날에 오티를 위해 원을 방문했다. 다행히 내 파트너 선생님은 원감선생님으로 경력이 많으셔서 딱히 생 초짜인 내가 오티를 준비할거는 없었다. 그렇게 어찌 어찌 오티를 마치고 2월 25일이 되었다. 한밤중 잠에 들려고 할때 원감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


"선생님 내일은 편한 옷 입고와요~^^"


속으로 굳이 왜 이런 말을 톡으로 보내시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름 편하게 청바지에 검은티를 입고 갔다.

그런데...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26일 내가 원에가서 한 것은 청소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청소 청소 청소였다.


만1세반 그 작은 곳에 뭐 이렇게 청소할게 많은 청소를 해도 해도 끝나지 않았다. 교구장을 다 닦았다 싶으면 바구니를 닦아야했고 바구니를 다했 싶으면 장난감을 닦아야했다. 난감이 끝났다 싶으면 원 공용공간을 청소해야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애들이 기저귀를 차고 있었기에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오래 청소를 한 날이었다.


26일 청소를 마치자 온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때마다 입에서 피곤함이 깃든 한 숨이 푹푹 세어나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졌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이미 아침이었다. 어제와 같은 실수를 막기 위해 가방에 검은색 고무줄바지와 검은색 긴팔을 챙기고 원으로 출근했다. 청소가 끝났으니 이제 숨 좀 돌리나 했더니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그 작은 교실은 무슨 마법의 공간처럼 끊임없이 할 일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장난감을 채우고 아이들이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장난감 자리를 표시하고 아이들의 이름표를 만들어 서랍장에 붙였다.


그렇게 하다보니 이미 해는 져있었다. 간단히 원장님이 사주신 저녁을 먹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이름을 표시하고 작품집을 만들고 아직 아이들이 글자를 모르니 그 이름 옆에 하나하나 아이들의 사진을 붙였다. 아이들의 사진을 붙이는 동안 아이들이 이름과 얼굴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그렇게 8시가 되서야 나는 집에 갈 수 있었다. 


대망의 셋째날 그 날은 반의 환경을 구성하는 날이었다. 환경구성이라고 하면 청소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어린이집에서의 환경 구성은 반을 이쁘게 꾸미는 일을 말했다. 아이들이 꾸밀 게시판을 꾸미고 영역을 표시하고 모빌을 달아 반을 꾸몄다. 하다보니 욕심이 자꾸 들어서 하나 하나 만들다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밖은 어두워진지 오랜데 내가 계획한 환경구성은 반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빨리 해야한다는 마음이 들 수록 손은 더욱 둔해지는 기분이었다. 하나 하나 만들어내는 뿌듯함과 예뻐지는 반에 대한 만족감에 도취되어 한없이 만들기를 했다. 저녁 10시쯤 되자 다른 반 선생님들이 하나 둘씩 퇴근하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와 파트너 선생님은 퇴근하지 못했다. 둘이 계획한 환경 구성을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선생님들이 모두 퇴근하고 적막해진 어린이집은 어딘가 으스스했다. 그래서 일부러 노래를 크게 틀고 선생님과 하염없이 가위질과 글루건질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각도 무뎌질 쯤 전화가 왔다. 핸드폰 화면에는 "어마마마"라고 적혀있었다. 그제야 시간이 1시에 다가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머! 선생님 어머님이 걱정되서 전화하셨나보다. 얼른 마무리하고 우리가요."

"아! 네네!!"


엄마의 전화가 와서야 시간이 흐른것을 깨달은 파트너 선생님이 이야기 해주셨다. 우리는 계획한 모든 것을 마치치는 못했지만 서둘러 반을 정리했다. 나는 반을 정리하면서 엄마의 전화를 끊고 톡을 남겼다. 


'이제 정리하고 있어.'

'걱정했잖아. 아빠가 데릴러 가고 있어. '

'응'


그렇게 30분 정도 반 마무리를 하자 때맞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아버님 오셨나보다. 우리 이제 가요."

파트너 선생님이 내 어꺠를 토닥이며 말씀해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린이집의 우리반 불을 껐다. 어린이집 현관을 열자 그 곳에 엄마, 아빠가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파트너 선생님과 부모님과 어색한 인사를 한 후 나는 엄마, 아빠와 자동차로 파트너 선생님은 남자친구분이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아빠 차에 올라타 문을 닫자 피로가 급격히 몰려왔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이제야 취직을 했다는게 일을 한다는 것이 실감났다. 나는 집가는 길 내내 눈을 감고 있었다. 엄마가 무슨 말인가 하려고 뒤를 돌았으나,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엄마와 이야기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야지~"


엄마의 말에 눈을 떴을때는 우리집 주차장이었다. 핸드폰을 켜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나의 선생님으로서의 삶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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