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가을날 신선놀음
매서운 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여름
언제쯤 찬바람이 불까... 그 시간이 올 것 같지 않았지만
계절의 섭리는 언제나 그렇듯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5월부터 9월까지 너무나 길었던 열기에 대한 보생인지 하늘을 더욱더 푸르고 바람은 유난히 시원합니다.
가을의 한 주말
집에 있으면 핸드폰과 티비의 유혹에 빠지기 쉬운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습니다.
이 가을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한강 공원으로요.
아침 일찍 나오니 주차장이 한가합니다.
텐트와 접이식 의자, 그리고 먹을 것 한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집터를 찾습니다.
아이들이 도와주니 짐을 나르고 텐트를 설치하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터를 잡고 주변을 구경하며 어슬렁 거립니다.
제일 중요한 화장실과 편의점 위치도 파악하고
아이들이 뭐 하고 노는지도 살핍니다.
남편과 저는 우선 맥주캔 하나씩 따고 가져온 과자와 함께 가을을 즐깁니다.
탐색이 끝난 아이들은 자신만의 놀거리를 정하고 몰입합니다.
조금 뒹굴거리다 스케치북을 꺼냈습니다.
처음엔 의자에 앉아 그리다가 텐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 풍경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햇살이 점점 텐트 앞으로 비추자 이젠 텐트 옆에 서서 그립니다.
아이들도 놀이가 재미없었는지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립니다.
맥주 기운이 살짝 돌면서
바람은 살랑대니
그리기 딱 좋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펜을 이리저리 놀리며 한강 저너머 알지 못하는 건물을 그립니다.
앞에 있는 텐트도 그리고
지나가는 연도 그림에 붙잡아봅니다.
스케치가 얼추 끝나자
한강 라면이 떙긴다는 가족들 성화에
펜을 잠시 내려놓고 편의점으로 향합니다.
라면에 닭강정까지 든든히 먹고 자리로 돌아옵니다.
아이들은 잔디밭으로 뛰어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배부름에 겨운 남편은 텐트 안에서 단잠에 빠졌습니다.
작은 팔레트를 꺼내 재빨리 채색을 합니다.
한낮과 다르게 서늘해진 바람이 느껴지니 이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텐트들도 떠났습니다.
구름의 모양도 바뀌고
바람의 온도도 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