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6. 횡성읍에서 둔내면

28.61km 40,289걸음 06:55~15:17

by 하란

여섯째 날 횡성읍에서 둔내면까지 28.61km 40,289걸음 06:55~15:17



꽃보다 고운 할머님이 계시던 골목길

눈을 뜨니 6시가 좀 넘은 시간이다. 밖을 보니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중. 괜히 이불속에서 꿈적 꿈적거리다 늦게 나왔다.

판초를 뒤집어쓰고 비를 맞으며 걷는다. 비가 거세어지면 문제겠지만 이 정도 비는 괜찮다 싶다.

횡성읍을 벗어나는 길 작은 집들이 몇 채 붙어 있는 골목이 나오는데 집 앞마다 꽃잔치가 가득이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있으려니 저 앞집에서 나오신 할머님이 사진 찍고 있는 나를 보고는 가만히 가던 길 멈추고 기다려 주신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니 꽃보다도 고우신 할머님 사진도 한 장 남길 걸 싶다.


저 멀리 산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고 그렇게 아침 길을 걷는다.

이제 길은 거의 차가 다니는 도로라 주변 풍경을 살필 여유가 많지는 않았다. 비 오는 날이라 멀리서 차가 오면 가만히 멈추어 차가 지나가길 기다리며 걷느라 걸음이 다소 더디다.

그렇게 한 시간쯤 쉬엄쉬엄 걷는데 도로 확장 공사를 하는 듯 길가가 소란스럽다.

문제는 이제부터는 6번 국도를 따라 걸어야 하는데, 도로 상황이 생각보다 너무 좋은 게 문제다. 평창 올림픽의 영향인지 도로들이 넓게 잘 포장되어 있다. 차와 함께 걸어야 하는 상황인데, 좋은 도로 상태는 차들의 과속을 의미하기에 걷는 사람에겐 좋지는 않다.

모든 좋고 나쁨은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

잠시 작은 길로 돌아갈까 고민해 보지만, 어제의 과한 일탈이 생각나 오늘은 그저 지도에 표시된 대로 가자, 하고 결심한다.

그렇게 6번 국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는데, 공사 구간을 지나니 다행히 차량 통행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다이소에서 구입한 판초는 키 작은 나에겐 발목까지 오는 길이라 입고 걷기가 거추장스럽고 좀 답답하다.

이 도로를 따라 버스가 다니는지 버스 정류장이 계속 있어 거추장스러운 걸음을 버스 정류장을 거점으로 자주 쉬며 길을 나아갔다.

그런데 이날은 유난히 허기도 졌다. 보통 아침 점심은 간식 정도로 걸으며 간단하게 먹고 저녁에 집중하는데, 유난히 밥 생각이 났던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비와의 감정적 반응으로 인해 밥과 함께 반주 한 잔이 고팠던 게 아닌가 싶다.

인내선을 넘어버린 식욕에 가는 길에 있는 식당을 검색해보니 용둔길 근처와 정금초등학교 근처에 식당들이 있다. 용둔길 근처에는 막국수가 유명한지 용둔막국수, 광암막국수, 봉평메밀촌 등 작은 시골마을에 막국수 집만 세 개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막국수이고 막국수에 막걸리 한 잔 생각에 군침이 돌지만, 막국수는 여정을 끝내고 속초 인근에서 하려 맘먹고 있는지라 어찌할까 고민하는 사이에 그만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오락가락 하는 비에 맞춰 판초를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며 정금리로 들어선다.

담에는 꼭 들러보고 싶은 정금쉼터

일단 찍어 놓은 곳은 정금쉼터라는 염소탕집과 큰터손두부집.

그야말로 지역 맛집 포스를 풀풀 풍기는 정금쉼터로 먼저 가보았는데, 슬쩍 안을 보니 어르신 한 분이 가게를 정리하고 계신다.

오늘은 왠지 결정에 소심한 날.

망설이다, 손두부집으로 간다. 이 집도 영업 중이라는 간판은 걸려 있으나, 인기척이 없다. 평일의 오전이라 손님이 없어 그런 듯하다. 사실 전화해 볼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렇게 소극적이 되는 날이 있다. 그렇게 그날의 맹렬했던 식욕에 반해 소심했던 나는 식당들을 다 지나쳐버리고는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 보면 참, 구석구석 사람들이 깃들어 있구나 싶다.

꽤나 가파른 언덕길, 황재, 황고개길이다.

20대에는 산을 다니면 오르막길이 힘들고 지루하고 그저 급하다. 그렇게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어찌나 편한지 날을 듯 뛰어내려오곤 했는데, 40대를 넘기니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언젠가는 도착하는 오르막은 힘들지 않다. 정상에 서고 나서 내려오는 자칫 발을 헛디뎌 다칠 수 있는, 내리막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락가락 하는 비를 맞으며 이젠 차도 드문 드문 다니는 고갯길을 그저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어디선가 계곡물소리가 들려 아래를 바라보니 저 아래로 계곡이 흐르고 그 옆으로 전원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참 곳곳에 사람들이 사는구나 싶다.

그렇게 이젠 뭘 먹겠다는 생각도 포기한 채 걷고 있을 때 카페 간판이 하나 보인다.

이 인적 없는 고갯길에 왠, 싶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주린 배에 커피라도 채워 넣어야 하는 생각에 간단히 검색해보니 빵 맛집이다. 가보자.

그렇게 조금 더 가다 보니 ‘이엘하우스’란 간판이 보이고 큰길을 벗어나 그곳으로 향하자 저 아래 거짓말처럼 앵두 조명이 반짝이는 건물이 보인다.

넓은 정원에 자연스레 피어있는 야생화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 보다 더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실내. 그리고 가게를 가득 채운 고소한 빵 냄새. 오전의 빗길 도보가 이것을 위했나 싶다.

치아바타 샌드위치와 커피를 맛있게 먹고 와인과 먹을 빵을 사고는 가게를 나섰다. 이 산길을 걸으며, 아니 이 일정을 생각하며 내가 빵을 먹을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역시 인생을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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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우아한 브런치 타임

편히 맘과 몸의 허기를 모두 채우고 다시 나서 걷다 보니 어느덧 해발 500미터 황고갯길 정상이다. 마치 등산하다 정상에 오른 듯 괜히 뿌듯하다.

비도 그치고 기분 좋게 고개를 내려오니 배추밭, 무밭이 보이기 시작한다.

속초에 살 때 평창쪽을 지날 때면 엄청난 넓이의 배추밭을 보곤 감탄해마지 않다가 어느 순간 배추밭이 보이면 아 평창 즈음이구나 했던 기억이 있어, 아 평창에 다가가는구나 한다.

수확이 끝난 어느 무 밭은 윗동이 잘린 무들이 가득하다. 무 보단, 시래기가 더 잘 팔리나 보다.

뭐든 시대가 변한다지만, 어쨌든 무의 입장에선 기쁜 일일까 슬픈 일일까. 아니면 저 무는 그저 시대가 변했구나 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을까.

나의 쓸모라는 건 내 주변인의 쓸모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걸까.

무밭, 배추밭을 보며 그렇게 다만 쓸모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주천강이 보이고 식당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근처에 웰리힐리 스키장이 있고 평창올림픽 때 KTX 둔내역이 들어섰기 때문일까, 지리적 위치나 면소재지 치고는 규모가 큰 식당들이 많다.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인 저녁을 위해 식당들을 검색하다 보니 꽤나 유명한 한우집들이 많다. 한우를 오늘 먹었어야 했나. 음. 다음번엔. 다음번엔?!

그렇게 쭉 욱 뻗은 주천강변을 따라 숙소를 향해 걷는데 거리가 꽤나 한산하다. 아무래도 주말 관광객들 위주의 도시라 평일의 모습이 한산한 듯하다. 길도 잘 닦여있고, 강변에 체육공원도 있고 KTX를 이용하면 교통도 괜찮다. 나중에 이런 조용한 소읍에 한 번 살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숙소에 도착하자 4시가 채 안된 꽤 이른 시간이다. 체력도 아직 남았지만 면온까지 가긴 좀 무리인 듯하다.

답은 간단하다. 내일 좀 더 걷지 뭐.


부록 – 먹고 마시는 이야기 6편 ‘인생은 소주처럼’

우연히 찾아든 ‘이엘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건강해 보이는 빵들이 가득하고 보이는 것처럼 건강하고 기분 좋은 빵 냄새가 은은이 감돈다.

이런 곳에서 배낭을 메고 들어선 자체가 일반적이지는 않은가 보다.

잠깐의 오고 가는 이야기에 정동진을 향해 걷고 있다 이야기가 나오고 옆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고 계시던 나이 지긋하신 남자 손님들은 안 그래도 아까 차를 타고 오면서 나를 보았다고 너무 대단하다며 한 두 마디씩 던지신다.

순간 뽈개지는 얼굴. 다니다 걷는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나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먼저 건넨다. 나는 그저 시간이 있고, 그래도 여행 경비가 있어 한가로이 걷는 것뿐인데, 그게 뭐라고 대단하다는 건지 부끄러울 뿐이다.

삶의 이런저런 모습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 경중을 따질 건 아니지만 굳이 경중을 따진 다면 배낭이 아닌 삶의 둘러 매고 오늘의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들의 무게가 훨씬 크다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의 이런 반응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에는 메밀소바 메뉴도 있었던 듯한데 지금은 치아바타 샌드위치만 주문 가능하다 하신다. 하프가 안되고 홀 샌드위치만 되는데 괜찮냐고 하시는데, 하프 따위 내 옵션에 없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단 커피를 내어주신다고 한다. 판초를 입고 있어 땀을 꽤나 흘린 탓에 일단 야외로 간다. 예쁜 들꽃과 시원한 초록의 배경을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곧 반으로 잘린 커다란 샌드위치와 푸짐한 샐러드가 한쪽에 가득 담긴 접시를 내어 주시고 따뜻한 커피도 다시 한 잔 주신다.

와! 건강한 맛은 맛없는 맛이라는. 암묵의 공식이 깨어진다.

신선한 야채와 담백한 빵. 너무 인위적이지 않은 소스, 그리고 푸짐한 양까지.

샐러드와 샌드위치 반 조각을 먹자 허기졌던 배가 꽉 찬다. 잠시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저 마시고 쉬다가 남은 샌드위치 포장을 부탁드리고 담백해 보여 와인이 생각나는 빵들을 찬찬히 보다가 무화과 통밀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담에 차 가지고 와서 싹 쓸어가 맛봐야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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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을 끝낸 시간은 아직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점심의 든든한 식사로 인해 허기가 많이 지진 않았다.

워낙 유명한 소고기 집이 많아 오늘도 소고기 한 점 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워낙 뼛 속까지 한식 파인 나는 점심의 ‘양’ 식사로 인해 매운 음식과 소맥 한 잔이 간절하다.

오늘은 이른 시간 동네 백수처럼 놀아야지 하고는 동네 포차를 하나 찍어 가본다.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좀 기다리지 뭐,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늘은 장사를 하지 않으신다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주말에만 활기를 띄는 곳일까. 아니면 코로나의 영향을 받은 것일까, 문 연 식당이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많지 않은 옵션에 근처 백반집으로 들어가 찌개와 메밀 모주를 한 병 시킨다.

잠시 후 김치, 무나물, 버섯조림, 어묵조림, 나물무침, 멸치 고추 조림 등 밥반찬과 두부찌개나 나온다. 원래 술 한 잔 하고 공깃밥은 물리려고 했는데, 밥을 물릴 수가 없는 상차림이다.

그렇게 모주를 한 잔 했는데, 아 내 입엔 너무 달다. 어찌할까 하다. 오늘은 가볍게 먹자 싶어 밥과 찌개 모주를 천천히 먹는다.

그때 갑자기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잔뜩 흥분하여 이야기를 한다. 이런저런 얘기로 일단 진정시키고 다시 수저를 드는데 딸이 울고 불고 전화를 또 한다. 보통 남매가 싸우면 다혈질인 오빠를 피해 동생이 참곤 했는데,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딸이 이번엔 참고 넘어가지 않아 싸움이 커진 모양이다. 한참을 달래고 어르다. 안 되겠어 가게 밖으로 나가 아들과 딸에게 번갈아 전화를 해가며 이야기한다. 삼십여 분의 난리통을 겪고 겨우 전화를 끝냈다. 집으로 가야 하나, 심란한 마음이 든다.

딱히 마음 쓰일 일도 거칠 것도 없지만,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은 항상 배낭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가지고 들어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믿는다.

복잡한 맘으로 가게에 다시 들어오자 아주머니께서 대충 알겠다는 눈빛으로 요새 아이 키우기 힘들지요 하신다. 이미 식어버린 찌개, 모주 뚜껑을 닫아 버리고 소주 한 병을 청한다.

쓰디쓴 소주가 내 쓴 속을 훑고 내려가며 달랜다. 그리고 말한다 가끔은 삶이 쓰기에 그 보다 더 쓴 소주가 필요하기도 한 것이라고. 그리고 쓰지만 단 소주처럼 삶도 가끔은 쓰지만 또 단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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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엘하우스홈브레드 강원 횡성군 둔내면 경강로 3892-22, 유기농 통밀빵 등

우리식당 강원 횡성군 둔내면 경강로둔방10길 19 손두부찌개 8천원

태기산장모텔 강원 횡성군 둔내면 경강로둔방11길 8 40,000원

- 시설은 오래된 모텔이지만, 깔끔하게 관리하신다는 느낌이 든다. 자전거라이더분들도 많이 이용하시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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