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5. 삼산역에서 횡성읍

34.4km 46,854걸음 05:44~16:40

by 하란

다섯째 날 삼산역에서 횡성읍까지 34.4km 46,854걸음 05:44~16:40

힘들었던 날은 그만큼 깊은 숙면을 선물 받는다.

채 열 시가 되지도 전에 잠든 듯한데, 꿈 없는 깊은 잠 뒤 눈이 반짝 떠졌다. 5시다. 잠시 지도를 들여다보다 일어나, 오늘을 준비한다.

삼산역의 첫 열차

밖을 나서니 아직 어둠이 깊다. 저 멀리 불빛을 따라 삼산역으로 간다. 길을 걷기엔 아직 어두운 듯하여 삼산역 플랫폼에 앉아있는데 기차가 들어온다. 그저 앉아있는 나를 보고 역무원이 안 탈거냐 하신다. 손사래를 치고 그렇게 기차를 떠나보내고 나니, 여명이 밝아온다. 자리를 털고 간이지만 깨끗한 역 화장실에 들렀다가 길을 나선다.

이날의 목표지점은 횡성인데 지도상 검색되는 코스는 두 가지. 자전거길을 검색하면 원주 안창을 거쳐 소금산에서 섬강자전거길과 합류한다. 총거리는 36km. 그리고 도보길을 검색하면 오크밸리를 거쳐 원주 호저면을 거쳐 가는 길. 총거리는 34km.

한 번 경험해 본 바, 오크밸리는 구룡산 자락에 있고, 2km가 짧지만 고갯길 일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짧지만 짧은 게 아닐 거란 말씀. 또 섬강 자전거도로는 강원 쪽으로 나있는 마지막 자전거도로라 한 번 가보고 싶단 마음도 있어 자전거길을 오늘의 길로 삼는다.

그렇게 강변길을 걷고 있는데 이제 강변길이 아닌 내륙 아래쪽으로 향하는 갈림길 지점이다. 분명 강변을 따라 가면 길이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하염없이 지도만 보고 있다. 이리저리 찾아보다 ‘거리뷰가 검색되면 길이 있을 것이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강변 쪽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곧 길은 끊기고 폐 철로가 연결되어 있다. 잠시 망설이다. 철로 쪽으로 다져진 샛길이 보여 철로로 접어들었다. 얼마간 철로를 따라 걷자 짧은 터널이 나오고 어마 무시한 경고문이 보인다.

“경고! 교량 내 절대 보행금지, 수시로 기관차가 운행 중이며, 무단진입, 보행 시 대형사고 발생 및 보행자는 사망할 수 있다.”

빨갛고 큰 글씨. 무단진입, 대형사고 발생, 사망.

난 보통보다도 조금 더 소심한 사람이다. 경고문을 보자 철로를 기어가는 개미만큼 심장이 작아졌다. 하지만 둘러봐도 내려갈 길이 없다. 아마도 지금은 레일바이크 길로 이용되고 있는 모양이다.

내려갈 길이 나타날 때까지 어쩔 수 없이 걷는데, 수시로 나오는 경고문 때문에 안 그래도 왠지 무서운 터널, 교각 길이 무서움과 더불어 뭔가 잘못하고 있단 맘에 불안 불안하기만 하다.

그렇게 가다 보니 강변 쪽으로 데크길이 보인다. 지도상 추론해보니 소금산 유원지의 산책로인 듯 보인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가파른 길을 굴러 내려오듯 내려와 데크길로 접어든다. 그런데 데크길을 좀 걸으니 공사 중이란 표시가 되어있다. It was like the end of the world!_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배운 표현이다. 배운 건 써먹자_뒤를 돌아본다. 나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노우’ 걸음을 옮긴다.

절벽을 따라 강 위로 놓인 데크길이다.

원래도 고소공포증인 나는, ‘공사 중’이란 단어가 데크길을 받치고 있는 어느 한 기둥에 대한 것이면 어떡하나 하는 망상증까지 더해져 한 걸음 한 걸음이 오금이 저린다. 다행히 데크는 무너져 내리지 않았고, 나도 살아서 단단한 땅을 밟는 기쁨을 누린다.

이제야 좀 여유가 생겨 주변을 둘러보자, 저기 위 산 정상인 듯 보이는 곳에 케이블카인지, 집업 시설인지 모를 공사를 하고 있고, 강변 주위로도 무슨 공사가 있는지 어지럽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 아래 깊고 푸른 물. 이 자체로도 아름다운 곳인데, 사람의 손이 더해지는 게 더하기일까 빼기일까.

어쨌든 이곳은 간현유원지로 규모가 꽤 크다. 저 위로 출렁다리도 보이고, 아이들 놀이기구며 막걸리 파는 식당들이며 주말에는 꽤나 사람들이 많겠지 싶다.

삼깅유원지

유원지를 벗어나 강변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재정비 후 근처 편의점에서 삶은 달걀, 볶음 김치 등 간식거리를 마련해 드디어 섬강자전거길로 진입한다.

섬강 자전거길은 주요 4대 강 자전거길처럼 잘 정비되어 있지 않다. 강변길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곳곳의 지방도와 가끔의 강변 뚝길을 연결해 자전거길이라고 명명해 놨을 뿐, 자전거길의 구획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안내도도 불친절하다. 유원지에서 지도에 표시된 대로 간현리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드디어 섬강과 만나는 가 했지만, 도로 옆 갓길로 걷는 것뿐.

좀 걷다 보니 저 멀리 옥수수 파는 곳이 보인다. 옥수수는 먹어줘야지. 이제 9시를 넘긴 시간. 장사 준비를 하시는 듯하다. 옥수수를 살 수 있는지 여쭤보니 지금 막 다 삶아졌다고 한다. 세 개 오천 원, 옥수수를 담아주시며 이런저런 얘길 하다 혼자 걷고 있다고 하니 잘 다녀오라시며 작은 옥수수 두 개를 더 넣어주신다. 감사합니다.

김이 펄펄 나는 옥수수를 들고 갑자기 신이 나 그렇게 강변도로를 걷다 확인차 지도를 확인하니 진작 강변길을 빠져나갔어야 한다.

어찌하리, 돌아가야지. 인생에서도 너무 즐겁거나 행복한 때는 잠시 멈춰 지금 이 길이 맞는지 확인해봐야 한다. 발걸음이 들떠 길을 잘못 들기 쉬운 때인 것이다. 아뿔싸 이미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어찌 하리, 아직은 가벼울 발거음으로 돌아가자.

노란 논과 더 노오란 옥수수

다시 제자리를 찾아 오른쪽으로 논이 펼쳐진 언덕길을 오른다. 내리쬐는 햇빛과 작은 그늘뿐인 오르막길은 걷기 힘들고, 손에 쥐고 있는 옥수수 봉지의 유혹이 강하다. 결국 그늘도 없는 논둑에 걸터앉아 노랗게 펼쳐진 논을 바라보며 그만큼 노란 옥수수를 맛나게 먹는다. 좀 더 발을 풀어주고도 싶지만 햇살이 따가워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다소 힘겹게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아무래도 자전거길로 표시되어 있어서인지 자전거 라이더 분들이 꽤나 많이 지나가신다.

확실히 오르막에선 내 한 몸 끌고 가면 되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저들의 보상은 내리막의 시원한 바람이겠지만.

오르막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고 그리하여 분명 오고야 말 내리막을 걷다 보니 오른편으로 길이 나 있다. 지도상으로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저 길을 가로지르면 될 것 같은 유혹이 강하다. 오늘의 나는 욕심은 많고 유혹에는 약해 슬금슬금 그리로 들어서 본다. 그렇게 백 미터쯤 이어진 길로 가다 보니 산길로 이어져 있다. 잠시 망설였지만 길이 있지 않은가?!

그렇게 산길로 접어들어 좀 가다 보니, 이젠 길이 끊어져 있다.

저 아래 펼쳐진 고속도로, 난감

이럴 때 하는 나와의 대화. ‘나는 돌아갈 수 있는가.’ ‘NO’

그래서 산속을 헤집고 좀 가다 보니 희미하게 사람의 발길로 다져진 듯한 길이 보인다. 나는 나름 대학시절부터 산악 동아리 에이스였던 산악인_지독한 길치였던 사실은 옆으로 재껴두고_그 사실에 의지해 산 등성이 길을 따라 가본다.

아! 길이 끊어진 곳 저 아래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가 보인다. ‘광주 원주 고속도로’ 아...

다시 산길은 더듬어 내려가다 보니 지도상 뭔가가 표시된 곳이 나온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어 그저 그곳을 향해 산길을 질러 내려간다. 밤나무가 가득한 야산이다. 여기저기 토실한 알밤들이 떨어져 있지만 볼 여유가 없다. 혹여나 겨울잠을 대비해 배를 채우러 나온 뱀이 있지는 않을까, 밤송이가 있어 이곳엔 못 오지 않을까? 내려가면 길이 있긴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길을 헤치고 내려가다 보니 저 아래 닦여진 공터인 듯한 공간이 보인다. 배수로로 내려가려니 꽤나 가파르다. 어찌어찌 미끄러지듯 개고생을 해가며 내려온 곳은 터가 닦여졌지만 잡풀로 우거진 공터이다. 개발 중인 택지인 듯하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우거진 수풀을 해치고 길로 나아가니 바로 아래 블록에 카페가 보인다. ‘카페 원주’ 산길을 헤매다 마주하니 묘하게 현실감이 떨어진다.

고생 끝의 낙

어쨌든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그곳으로 가서 시원한 야외에서 자리를 잡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신다. 그래 이거 마시려고 내가 미쳐서 그 길로 들어섰나 보다.

시원한 바람과 아메리카노로 피로를 날려 보내고 찬찬히 지도를 살펴 다시 길을 나선다. 유혹만큼, 고생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백 미터는 줄인 듯하다. 그리고 다시 섬강자전거도로로 접어든다. 이제는 강변을 따라 있는 자전거길 같은 길이다.

저 멀리 구름 위로 제트기 지나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렇게 걷다 보니 강변을 끼고 데크로 된 자전거길이 나온다. 기분 좋게 걷다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자라 있고 시원한 섬강 줄기가 보이는 경치 좋은 휴식장소가 나온다.

1시 반쯤. 편하게 짐을 풀고 점심 겸 내 사랑 옥수수를 꺼내어 든다. 그때 자전거를 타고 한 분이 멈춰 앉으신다. 잠시 머뭇하다, 옥수수 하나를 권한다. 인사와 함께 옥수수를 받아 든 나보다 약간 연배 있어 보이시는 여자분은 본인의 짐을 뒤적거려서는 블루베리즙 하나를 나누어 주신다. 나란히 벤치에 앉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사는 얘기, 아이들 얘기..

둘째 아이가 자신감이 없었는데, 중학교 때 무작정 자전거 여행을 보낸 이야기를 하신다. 가는 중에 처음 보는 대학생 여행자를 만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이러저러하다 결국 힘이 들어 완주는 하지 못했지만 그 경험 후에 아이는 자신감도 많이 가지고 본인의 인생을 좀 더 주도적으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건, 내가 뭘 해주는 게 아닌 그저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일인 것 같다고. 아이의 인생이 어떠하던 그저 응원하며 지켜봐 주는 것. 그게 다인데 그게 왜 그리 힘든지 모르겠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삼십 분이 훌쩍 넘는다. 우연히 이렇게 멋진 분을 만난 것도 행복이다. 잠시 내 안의 오지랖이 연락처를 물을까 하다가 삶의 인연법에 맡기기로 하고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자’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그렇게 기분 좋은 시간 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다 보니 강둑에 홀로 낚싯대 롤 드리우고 계신 여자분이 보인다. 방금 전의 기분 좋은 만남으로 활짝 열린 나의 맘은 망설임 없이 다가가 ‘구경해도 될까요?’하고 말을 건넨다. 약간 당황하신 듯 하지만 ‘아 네~!’하고 흔쾌히 답해주신다.

“재미있으세요?”

“아 네 재밌어요!”

“좀 잡으셨어요?”

“아뇨!(웃음)”

“저도 요새 낚시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혼자 하시는 것 보니 멋있어 보여서요!”

“아, 저 오늘이 혼자 나온 거 첨이에요. 아하하하!”

낚시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셨는데, 첨엔 혼자 가기 좀 어색해 남편분께 부탁해 몇 번 다니다가 오늘은 혼자 나오셨다고. 뭐가 됐든, 언제이든, 그저 나 하고 싶은 거 하나씩 해나가는 삶이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죽을 때 아! 해보고 싶은 건 다해봤어. 후회 없는 삶이었다! 하면 그만일 뿐.

즐겁게 낚시하시라고 인사하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잠시 겹쳐진 멋진 여자들과의 시간이 즐겁다.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보는 것.

그렇게 잠시 후 섬강 본류를 벗어나 지류로 이어진 자전거길(그냥 일반도로다)로 걷다 보니 고산초등학교가 보인다. 보통 초등학교를 거점으로 쉬면 좋은데, 오늘은 평일이라 학생들이 등교했을 것 같고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해 다리가 아프지만 잠시 더 걷다가 길 옆에 흐르는 작은 개울로 내려가 찬물에 발을 담가 열을 식힌다.

하루에 평균 30km 이상 걷다 보면 발에 불이 난 듯 열이 난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게 찬물 찜질. 그래서 물이 보이면 웬만하면 잠시라도 앉아 발을 담그는 게 좋다. 게다가 발을 담그고 앉아 듣는 또랑또랑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를 듣노라면, 아 지금 이 순간.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걷다 보니 다시 본류에 합류하고 이제 4km 정도 걸으면 저 멀리 보이는 곳이 횡성읍이다. 그렇게 본류가 접하는 곳에 집이 한 채 있는데 집 안팎으로 개가 여러 마리 보이고 이어 나를 향해 짓기 시작한다. 꽤나 덩치가 큰 개들이기에 당연히 줄이 묶여 있겠거니 했으나 발걸음이 멈칫거린다.

아니나 다를까 묶여 있는 듯 보였던 개 중 한 마리가 몇 번의 몸부림에 줄이 툭하고 끊어내고는 나를 향해 달려온다. 너무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멈칫하다 순간 뛰면 안 된다는 생각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멈춘다. 다행히 달려오던 개도 십 미터 앞쯤에서 멈춰 나를 주시한다.

어쩌지 어쩌지 하며 십 년 같은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데 뒤에서 차 한 대가 온다. 나는 목청껏 ‘도와주세요’를 외쳤다. 다행히 들으셨는지 저 앞에서 멈춰 선 차가 후진으로 내게 다가왔다. ‘개 때문에요. 차 좀 태워주세요’ 하고는 차에 올라탄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나보다도 더 놀라신 듯한 운전자분께 상황을 설명하니 개 때문인지는 모르고 진짜 놀라셨다고. 한 백여 미터쯤 가서 그 집이 안 보일 때쯤 감사인사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 개가 나를 공격하려는 의도였는지 반가워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장 위험하고 아찔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부산 종주할 때도 종종 한적한 시골길에서 뛰어나오는 개들 때문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날 숙소에서 쉬며 가장 먼저 한 일이 유튜브에서 개가 공격할 때 대처법을 찾아 본 것이다

-움직이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팔을 흔들거나 다리를 움직이는 등 공격으로 보일 행동을 하지 않는다.

-개가 관심이 사라졌다면 천천히 조심해서 벗어난다

-공격을 받기 시작했을 땐 몸을 말고 목덜미를 보호한다(목덜미가 보이면 공격 욕구가 상승한다고)


꼭 유튜브에서 한 번씩 찾아보고 길을 나서시길, 특히나 나처럼 개를 무서워하시는 분은 필수이다.

그렇게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저기 멀리 보이는 횡성읍을 향해 나아가는데 섬강을 건너 읍으로 진입하는 횡성교는 도저히 가까워지지 않는 느낌이다. 그러다 도로 아래 강변에 공사용인지 놓여 있는 징검다리가 보인다. 오늘의 나는 왜 이러는지. 횡성교를 가도 그리 많이 돌아가는 건 아닌데, 나도 모르게 강변으로 내려가고 있다. 다행히 이번 일탈은 크게 위험하지 않고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횡성읍에는 모텔이 6~7개쯤 있는데 야놀자에 예약 가능한 곳은 2군데 정도. 그중 깔끔해 보이는 곳은 7만 원으로 다소 가격이 높다. 일단 가서 정하자 싶은 마음에 예약을 없이 일정을 진행했다.

그리고 횡성 하면, 한우. 한우 하면 횡성.

난 뻔하디 뻔하고 틀에 박힌 사람이기에 숙소보다는 한우 맛집 검색에 공을 들였었다. 그리고 찍어둔 식당을 향해 열심히 가는데, 그리 무리한 여정은 아니었음에도 잦은 일탈로 인한 험난한 여정이었던 탓이었을까 지칠 대로 지친 나의 다리는 1킬로 남짓한 거리가 멀고 또 멀다. 정말이지 현대 물리학의 꽃인 ‘상대성이론’을 매일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들이다.

담에 횡성을 간다면 내가 갈 곳은 이곳이다

가는 길 초등학교 앞 떡볶이집에서 아이들이 컵떡볶이를 들고 가는 모습엔 정말 한우를 버릴 뻔했다. 어찌어찌 도착한 식당. 왠지 분위기가 싸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주인 내외로 보이는 분들이 계셨고, 식사 가능하냐 여쭈니 쌩한 어투로 5시부터 영업이라 안된다고. 지금 시간 4시 반. 전혀 여지도 없는 말투에 문을 닫고 나왔다. 잠시 밖에서 기다릴까 생각도 했지만, 나 혼자인 걸 보고 그다지 받기 싫은 맘이었던 듯한 생각에 나도 잠시 맘이 상해 일단 발길을 돌려 숙소를 찾기로 한다. ‘안된다’는 말을 조금만 부드럽게 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근처에 있는 오래된 모텔을 지나는데, 한우집에서의 박대가 맘에 상해 있던 나는 오늘의 불쾌 수치가 가득이 되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는 시설이 좋아 보였던 그리고 가격이 다소 비싼던 곳으로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린다.

새로 지은 듯 깔끔하고 준 호텔급의 시설이다. 체크인을 하며 사장님께 소고기 식당을 추천받는다. 고기가 참 좋은데, 사장님이 혼자 하셔서 다소 늦을 수 있는데, 일찍 가면 괜찮을 거라 하신다. 일단 배에 뭐라도 들어가야 살 것 같아 짐만 풀고 나와 식당을 찾아갔다.

아, 꺼진 불, 잠겨진 문. 간판에 쓰인 번호로 전화를 해본다. 오늘따라 혼자 일을 하셔서 준비가 늦으시다고, 5시 반쯤 가능한데 괜찮으시겠냐고 물으신다.

친절한 말투에 사르르 녹은 내 맘은 그깟 30분쯤이 된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는 만세공원에서 열심히 운동 중이신 할머님 옆에서 허리도 풀고 다리도 주물러 가며 기다린다.

자꾸만 자꾸만 예정된 길을 벗어난 날.

그래서 예정되지 않은 풍경을 본 날이다.


부록 – 먹고 마시는 이야기 5편 ‘마음의 안정을 위한 작은 플렉스’


만세공원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며 마치 첩보원처럼 앞에 있는 식당의 동향을 살핀다. 사장님께서 식당에 오신 듯은 한데 아직 불을 안 켠 걸로 봐서는 준비가 안되신듯하다. 내가 간다고 해서 그런가 잠시 밖을 살피시는 듯도 했으나, 바로 들어가기가 뭣해 한 십 분 정도 더 동향 파악 후 식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아 아까 전화하신 분이냐며 물으셔 맞다고 하니 밖에 계신 걸 봤는데 혼자 셔서 아닌 줄 알았다고 한다. 혼자 먹어도 되냐고 하니 잠시 망설이시다 괜찮다 하신다.

아무래도 어느 곳이고 고기상은 한 명은 부담스러우신가 보다.

아 먹고 싶구나

자리에 앉으니 오늘은 치마살과 부챗살이 좋다 하시고 기본 200g이고 100g에 22000원인데 괜찮으시겠어요 한다. 잠시 버퍼링이 걸렸다가 이내, 가격이 비싼데 괜찮겠냐는 말이라는 걸 알아듣고는 실소와 함께 괜찮다고 말씀드린다. 한 번 더 괜찮냐 하시기에, 괜찮다고 안심(?)시켜 드리고 300g을 부탁드린다.

사실 2인분 먹으려 했는데, 저리 말씀하시니 못 시키겠다! 어찌 보면 무시를 당했다 생각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내가 다행히 그 정도 돈은 있어 그저 돌아가서 친구들한테 풀 재미있는 썰 하나가 생겼다 싶다. 그리고 사장님이 워낙 진지하게 걱정되는 얼굴로 물으셔서!

잠시 후 깔끔하게 상이 세팅되고 불이 들어오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혼자 하셔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원래도 일 손이 느리신 듯. 시켜둔 소주와 맥주가 식을까 걱정이 될 때쯤 나온 불에 고기를 두 점 올리고 엄근진 하게 소맥을 따른다. 빈 속을 짜르르 훑고 지나가는 소맥과 그 뒤의 기름진 고기 한 점.

깔끔한 궁합의 셀러리 장아찌와 소고기

다소 특이한 건 셀러리 장아찌가 나온다. 다시 소맥으로 입을 가신 뒤 셀러리 장아찌와 한 점. 오늘은 쌈은 생략. 셀러리 장아찌를 더 청하며 맛있다고 하자. 샐러리인 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다며 기분 좋아하신다.

그렇게 소금에 한 점, 셀러리 장아찌에 한 점 기분 좋게 먹고 마시고는 적당히 알딸딸하고 기분 좋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간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돈은 알뜰하게 쓰게 되어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소 후진(?) 숙소에서 잠자리를 청해야 할 때도 있다.

때론 ‘여행’이란 단어가 그 모든 구차함을 낭만으로 바꾸어 주기도 하지만, 가끔 내 맘의 남은 낭만 포인트가 없고 기분의 수위가 위험하다면 과감히 돈을 쓰자. 기분 비용은 자칫 무너질 수도 있는 여행의 낭만 발란스를 지켜주기도 하니까.


횡성 참한우 강원 횡성군 횡성읍 만세공원길 5 소고기 100g 22000원(그날마다 가져오시는 고기와 가격이 다른 듯)

호텔 사월애 강원 횡서군 한우로 267 7만원

keyword
이전 05화DAY4. 양평군청에서 삼산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