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3. 팔당역에서 양평군청

31.01km 42,588걸음 06:13~18:40

by 하란

DAY3 팔당역에서 양평군청까지 31.01km 42,588걸음 06:13~18:40


오늘 일정은 오롯이 부산 종주 일정 때와 같은 길이다.

코스에 변주를 주려 지도를 요리조리 살펴봤으나, 별달리 구미가 당기는 길도 딱히 걸음을 아끼는 길도 없다. 아 그럼 어떻게 변주를 줄까. 잠시 생각하다가 양평을 가며 유난히 낮술 당기는 곳들이 많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 이번에 지나가면 또 언제 이 길을 지나가랴. 오늘은 가고 싶었던 곳들,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다 가자. 다 마시고 가자! 낮술 혹은 발걸음을 재촉한다면 아침술을 마실 생각에 발걸음이 무척이나 즐겁다.

물안개 가득한 팔당의 풍경

강변의 물안개를 바라보면 기분 좋게 걷다 보니 저 멀리 멋스러운 초가지붕이 보인다. 지난번 이곳을 지날 땐 오후 즈음이었고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보며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던 곳이었다. ‘초가집=막걸리’겠지 라고 짐작하며.

봉주르 카페. 차와 식사라고 되어있다.

시간을 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아! 너무 이르구나. 하지만 자전거 라이더가 많은 길목이니 혹 모르지 싶어 걸음을 멈추고 들어서자 직원인 듯한 분이 마당과 안을 오가며 분주히 정리하고 계셨다. 조심스레 혹시 영업하시나요 하고 물으니, 당연한 듯 ‘아직’이라 하신다.

아! 내가 너무 일렀구나. 하며 발길을 돌리려는데 ‘커피 한 잔 드릴게요’하고 급하게 잡으신다. 죄송하다 마다하니, ‘사장님께서 들리시는 손님들은 꼭 커피 한 잔 대접해 보내라고 하셨다'며 안으로 들어가 잠시 후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어주신다.

이른 아침 민폐 쟁이가 된 듯하여 커피값이라도 치르려 하니 손사래를 치신다. 감사인사를 하고 염치 불고하고 커피를 들고 아름드리나무 아래 자리 잡고 모닝커피를 즐긴다.

아!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어떤 아침보다 내 아침이 럭셔리하다.

20분의 여유로운 아침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하고 다음엔 영업시간에 꼭 오리라 다짐한다.

봉주르 카페

1킬로쯤 더 걷다 보니 능내역이다.

부산 길을 갈 땐 자전거 수첩에 인증 도장을 찍어 가며 가다 보니 인증센터 지점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곳에서 화장실과 간단히 커피 한 잔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새 바뀐 걸까 그때와는 좀 다르고 화장실도 다 폐쇄되어 있다. 또 바뀔지도 모를 일이지만 참고.

두물머리를 향해 걸어가는 길, 빈 속에 마신 커피가 식욕을 자극했는지 허기가 진다. 가는 길 간단히 국수, 막걸리를 파는 곳들이 한 두 곳 보였으나 꾹 참고 발걸음을 옮긴다. 양평까지 가는 길, 카페 봉쥬르와 함께 내 맘을 사로잡은 곳이 한 곳 더 있었으니까.

그렇게 또 한 시간쯤 걷다 보니 드디어 ‘돌미나리집’이다.

아. 그야말로 나의 술심을 자극하는 비주얼의 식당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좀 싸하다. 9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 굳게 닫힌 가게문.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 조심스레 문을 열고 여쭤봤다. 혹시 지금 식사되나요? 안된다고 하신다.

아 오늘은 왜 이리 나의 시간이 빠른 날인 건지.

잠시 바깥 테이블에서 절망을 하다. 지상 손님 모드로 다시 여쭌다. ‘혹시 막걸리만 마시면서 기다리면 안 될까요? 나처럼 이런 손님들이 왕왕 있어 한 번 해주다 보면 계속 그렇게 된다고. 11시 오픈인데 10시 반에나 가능하다 하신다. 잠시 망설이다. 다시 진상 손님 모드로 여기서 기다리는 건 괜찮냐고 여쭙고 혹시나 날 보고 사람들이 몰려들까 길에서 보이지 않는 가게 옆쪽에 자리를 잡고 책을 보며 기다린다.

그 사이 나처럼 와서 여쭤보고 포기하고 가는 사람, 나처럼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사람 등등. 그렇게 10시 반이 되자 어느덧 바깥 테이블은 한 두 개를 빼고는 모두 차 버린다.

주인아저씨께서 능숙하게 나와 순서도 반듯하니 주문을 받으시곤_선불이다_곧 테이블마다 생미나리와 초장 김치를 기본 세팅해주신다. 아. 이것만 해도 막걸리 두 병인데.

아삭한 미나리에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있으니, 곧 주문한 미나리 전과 잔치국수가 나온다. 아. 바삭한 미나리전. 아 이건 비빔국수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혼자인 게 너무도 안타깝다. 그렇다고 우리가 국물을 포기할 순 없잖는가! 담엔 꼭 하나 데리고 와야지.

지금 이 순간도 돌미나리집 이야기를 食부록으로 넣어야 하나 고민하지만, 애매하기에 여기에만 기록한다. 다만 여기는 걷기가 우선이니 더 이상의 맛 설명도 생략한다. 가보시라 직접. 분위기에 한 병. 좋은 안주에 한 병. 그렇게 아침술을 2병이나 마시고 헤롱헤롱 좋은 기분으로 다시 걸음을 옮긴다.

나의 술심을 자극하는 돌미나리집

양평까지는 폐철로를 자전거도로로 개통한 길이기에 딱히 지도를 볼 필요도 없이 편안하게 걷기를 즐긴다. 국수역 즈음에서 찻길과 합쳐져 약간 신경 써야 하지만, 난 한 번 가본 사람! 하지만 세상 최고 길치이기에 부산 갈 때 감사히 먹은 장수옻닭집을 지점으로 삼고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아 나아간다.


어느덧 장수옻닭집. 부산 길에 참 맛있게 먹었지만, 당시 전날의 과음으로 속이 안 좋은 상태였던지라 그 맛을 충분히 즐기진 못한듯하다. 이번 길에 들러볼 집 1번이었지만 일정을 짜다 보니 휴무날인 일요일에 지나는 일정이라 포기. 여전히 위풍당당한 노포의 포스를 풍기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사장님! 다음에 최상의 위장 컨디션으로 찾아올게요!

근처 편의점에서 다이어트 콜라 한 잔으로 해장과 해갈을 마치고 다시 걷는다.

약으로 먹어야 한다는 장수옻닭집과 근처의 풍경


그렇게 걷기를 한참 아신역을 지나면 남한강 자전거길과 양평 물소리길이 갈라지다 겹치다를 반복한다. 사실 어느 길로 가도 목적지인 양평에 도착하겠지만 이 즈음되면 단 백 미터도 줄이고 싶은 맘이다 보니 갈등의 연속이다.

하지만 갈등하고 고민하면 뭐하나,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어느 순간 인도도 없는 4차선 도로에 서 있는 나를 발견. 응 가본 길이라고 세상 최고 길치인 나를 잠시 망각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행히 조심조심 걷다 보니 강변가 공원과 자전거길이 보여 그리로 들어섰다. 아직 정비 중인 건지 관리가 되지 않는 건지. 다소 어수선하고 일요일 오후임에도 불구 돗자리를 들고 오는 한 두 팀 정도만 있을 뿐 한적하다. 약간의 그늘이 진 벤치를 발견하고 잠시 앉아 발을 쉬다. 그대로 눕는다.

따가운 햇빛에 눈을 떠보니 30여분을 잔 듯 오후 4시가 좀 넘은 시간. 짐을 주섬 주섬 챙기서 일어난다. 저녁에 먹을 술을 아침에 당겨 먹어서 일까, 왠지 에너지도 당겨 쓰고 시간도 당겨 쓴 듯, 하루의 모든 일과를 끝낸듯한 상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마땅한 숙소도 맘에 들 만한 식당도 없는 듯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다행히 물소리 길로 들어서 시원한 강변길을 음악을 들으며 걷는다.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한 강변에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 강변길을 산책하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나. 다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걸으니 섬으로 보이는 공원과 저 멀리 목적지인듯한 시내가 보인다. 아 섬을 가로지르면 훨씬 빠를 텐데, 섬 공원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그런 고민을 하다 지도를 세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저편으로 연결된 길이 있다고 판단하고 묵직한 다리로 계단을 내려선다.

이곳은 양평 사람들이 저녁 산책코스인 듯하다. 사람들이 많다. 이리저리 둘러볼 곳이 많은 듯했으나, 나에게 그럴 만한 체력이 없었다. 냅다 중앙의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보니 다행히 시내 강변길과 연결이 되어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걸으면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강변 주위로 화려한 외관의 식당들과 양평대교의 불빛이 꽤나 멋진 야경을 만들어낸다. 이제 양평군청을 지나 숙소까지 1킬로미터, 강변 불빛도 감상하고 그보다는 더 자주 주변 식당들도 살피며 시간의 상대성이론을 온몸으로 느낀 길고 긴 여정을 끝낸다.


부록 – 먹고 마시는 이야기 3편 ‘양평에 살어리랏다!’

사실 그날의 걸음을 끝낸 다음의 ‘먹고 마시는’ 일정이 이번 길의 하이라이트이다. 하지만 이 날은 이미 흠뻑 적시며 걸어온 걸음이라 약간 의욕이 떨어진 상태.

그렇다고 한 잔 술 없이 어찌 오늘을 마무리할 것이며 어찌 내일의 걸음을 시작할 것인가.

지도 앱을 열고 숙소와 가장 가까운 식당을 두어군 데 찍고는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본다. 어두컴컴한 골목. 분위기가 싸하다. ‘주일은 쉽니다.’

괜찮아.

오십여 미터 떨어진 다음 식당. ‘주일은 쉽니다’도 없이 굳게 닫힌 문.

괜찮아.

다음 집. 십여 미터 앞이구만 불빛 하나 없다. 젠장.

강변 길에서 메인 읍내길인 듯 한 곳까지 나왔다. 이젠 진짜 한 걸음도 더 못 걸을 지경이다. 오늘은 망작이다. 아무 데나 가서 밥 한 그릇 먹고 들어가자.

길 가에 주저앉아 지도를 보다 주변을 보다 하는데, 하필 결정장애까지 와버렸다. 그러다 도로 건너편 쪽으로 식당 불빛들이 켜진 걸 보고 무릎을 박차고 일어나 본다_무릎을 누르며,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는 모양_길을 건너 안쪽으로 좀 들어가 보니 저 멀리 가정식 백반이라 적힌 집이 보인다.

상호는 동네 포차. 좀 미심쩍긴 했지만 어쨌든 불빛에 이끌려 그리 가본다. 그런데 식당 문 앞으로 보이는 곳에 테이블이 한두 개 놓여있고, 그 앞에선 통기타 소리와 노랫소리가 한창이다. 어라. 차마 들어가지 못하고 코너를 돌아보니 다시 보이는 ‘가정식 백반’ 다섯 글자.

머뭇머뭇하고 있으니 주인인 듯한 분이 나오시는 길에 날 보고는 '들어가세요' 하신다. 얼떨결에 들어가 보니 안쪽 4~5개 남짓한 테이블은 4개는 이미 만석. 하나의 테이블은 옷과 가방이 잔뜩. 안에서 음식 준비를 하고 계신 듯한 또 다른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은 바빠 보이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분명 손님으로 보이는 분들이 ‘아 치워드릴게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한다.

쭈뼛거리며 앉아 메뉴판을 보다 '자연산 버섯찌개'를 보곤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목청껏 '여기 자연산 버섯찌개랑 참이슬 빨간 거 하나만 주세요!'를 외친다.

잠시 후 얼갈이김치와 오이소박이 도토리묵과 기본찬으로 나오고 기본찬에 소주 한 잔 하고 있는데, 술 병이 테이블 위아래로 쫙 깔리고 누가 봐도 다들 거나하게 취하신 듯한 옆자리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한다. 시끌시끌한 가운데 곁들어도 별 거 아닌 일에 시비가 붙은 듯 말이 오가다 언성이 높아지고 술꾼들의 싸움이 그러하듯 갑자기 맥락 없이 멱살잡이가 오간다.

나 빼고 모든 테이블 손님이 안면이 있는 듯 시비가 커지자 모두 일어나 시비의 당사자들을 참으로 신속하고 익숙하게 자리를 정리하신다. 그렇게 테이블이 정리되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자신들만의 술자리를 즐기신다. 그 와중에도 계속되는 통기타와 노랫소리.

어라. 이 집 봐라. 완전 내 취향이잖아!!!!

갑자기 피로는 사라지고 술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그때 뭔지 모를 데친 버섯 한 접시를 내어주시며 ‘좀 시끄럽죠, 독버섯은 아니니 드셔 보세요.’ 하신다. 몰캉몰캉한 버섯을 참기름장에 찍어 먹으니 은은하게 버섯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그렇게 뭔지 모를 버섯향과 소주에 취해 세 명은 먹어얄 듯 큼직큼직한 돼지고기와 버섯이 가득 담긴 찌개가 내어져 나왔을 땐 이미 바닥을 보인 소주.

양평으로 이사를 갈까 고민하게 만든 동네포차인 동네포차&식당

혼자 여행 다닐 때 소주만큼은 한 병을 넘지 말라던 약속이 젊은 날 첫사랑의 기약처럼 속절없이 깨진다.

그렇게 진한 버섯찌개에 소주를 적시는데 어느 틈에 뒤쪽 테이블에 합류해 계시던 남자 사장님이 뒤 돌아 생버섯을 맛보라며 내미신다.

송이다! 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리액션뿐. ‘오와 와우와 쯤 되는 감탄사와 함께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겠냐며, 냅죽 받아먹는다. 생략 가능한 송이버섯의 향. 아 올해 첫 송이이자 그 비싼 걸 내 돈 주고 사 먹을 열정은 없으니 마지막 송이이겠구나.

그렇게 두 병을 순삭 하고 있으니 계속 뒤돌아 몇 번이고 더 권하신다. 아 세 번째 이슬은, 송이 받아먹은 게 미안해 시켰다. 결단코.

그렇게 세 번째 이슬과 함께 하자니 어느덧 뒤쪽 테이블에 앉은 언니의 나밍 아웃_옆에 앉으신 분들은 다 동갑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5살쯤 많으시다고_과, 사장님 오빠분_음식을 만드시는 여사장님과 버섯을 채취해 오신 그 오빠분이란 것도 알아버림_의 버섯 강의도 이어진다.

그렇게 문 밖 통기타 소리와 왁자지껄한 시간이 이어지고 몇 분과의 연락처 교환과 버섯 산행 약속을 끝으로 자리를 끝낸다. 아마 끝냈던 것 같다.

그날 먹은 버섯이 혹시 환각 버섯이 아닌 가 싶을 정도로 뭔가 현실감 없는 술자리. 그리고 양평으로 이사를 와야 하나 하고 술꾼을 고민하게 만든 시간과 공간.

정말 열심히 들었지만, 정말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버섯 강의

돌미나리 집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북한강로 302번 길 2 미나리전 8천, 잔치국수 5천, 막걸리 4천 원

동네 포차&식당 경기 양평군 양평읍 관문길 8번 길 30-1 자연산 버섯찌개 25000원 참이슬 4천 원

양평 리버하우스 5만 원 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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