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km 50,997걸음 06:17~19:31
둘째날 서울 이촌한강공원에서 남양주시까지 37.7km 50,997걸음 06:17~19:31
다시 광흥창역으로 가서 걸어야 하나 딱 10초 정도 고민했다. 나는 그 정도의 정확한 성실함 따위는 없다. 뭐 그날의 걸음을 끝내고 나서 술 마시러 돌아다니는 걸음은 추가로 걷고 있으니 이 정도 점프는 상쇄되고도 남는다는 논리도 마련되어 있었고, 뭣보다 이건 나의 興行, 즐거운 여행이지 도전이 아니니 오버하지 말자.
숙소에서 나와 한강 방향을 대충 가늠하고 몇 걸음 걸으니 할머님들이 몇 분 보인다. 경험상 이젠 지도는 필요 없다. 할머니 꽁무니만 쫓아가면 된다. 보통 이 시간에 나오시는 어르신들은 강변으로 운동하러 가시기 때문이다. 역시나 무사히 이촌한강공원에 안착한다.
이른 시간인데도 운동하는 사람이 많다. 서울 사람들은 참 열심히 사는구나 싶다. 뭔가 운동도 더, 혹은 너무 바쁘고 치열하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물이 차가울 것 같은데 웨이크보드를 시원하게 강변을 가로지르는 사람도 보인다. 선수일까. 레저일까. 활기찬 아침 풍경에 고무된 나도 살짝 서울 시민인 척 열심히 걷는다.
부산 갈 때의 둘째 날 상태에 비하면 최상이었지만 발의 피로도가 상당해, 멈추는 순간이 잦아진다. 그래 천천히 가자. 아예 맘 편히 먹고 3킬로미터 정도 걷고 잠깐씩 발을 풀어주며 여유 있게 걷는다. 강 이쪽의 우거진 풀과 꽃 넘어 보이는 강 저쪽의 빌딩 풍경이 묘하게 어우러진다. 구름 저편 어딘가 해가 떠올랐는지 하늘 군데군데 비쳐 내리는 햇살과 강변의 풍경 그리고 함께 어우러진 사람들을 보며 한 시간쯤 걷다 보니 서울숲 자전거 진입로 표지판이 보인다.
2시간 반 정도에 8km 정도 걸었다. 이 정도면 괜찮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바람막이 옷을 가방에 집어넣고 서울 숲을 통해 갈 수 있는지 지도를 가늠해본다. 거리는 좀 돌아갈 지라도 서울숲 속 길로 가고 싶다. 서울숲 수도박물관 쪽 편의점에서 아침 식사도 하고. 어제저녁에 너무 많이 먹었는지 아침부터 허기가 진다. 음식을 먹을수록, 그리고 사랑을 할수록 더 고프고 허기진다. 이상하지만 그렇다. 대체로.
보행전망로를 걸으니 아래로 사슴 무리가 보인다. 동물원에 온 듯 들뜬다. 동물원 언제 어디서고 어린 시절을 끌고 온다. 그때의 들뜸까지. 가을을 맞을 준비를 살짝 하고 있는 서울숲길을 기분 좋게 가로질러 지도상 목적지인 편의점에 도착했는데, 아무래도 숲 관리시설 건물 안에 있는 듯하다. 오늘은 토요일. 문이 굳게 닫혀있다.
아. 안 아프던 발도 갑자기 아프고 배는 더 고프다. 보통 아침 정도는 가뿐히 걸러도 될 체력의 소유자 이건만, 한 번 먹을 거라 맘을 먹으니 안 먹으면 큰일이 날 듯하다. 근방을 열심히 검색해 편의점을 찾아 먹거리를 간단히 사고 다시 한강변으로 들어선다. 강변 근처 계단에 앉아 간단히 요기하고 신발을 벗고 발을 좀 풀어준 뒤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얼마 후 왠지 ‘공원’보다는 유원지가 왠지 더 어울리는 뚝섬유원지가 나온다. 여기서 쉴 걸. 널찍한 잔디밭과 확 트인 강변 풍경이 좋다. 사람은 정말 한 걸음 앞을 모르는 군. 어쨌거나 그냥 지나치긴 아쉬워 잔디에 판초를 펼치고 잠시 누워본다. 이 글을 읽고 걸을 누군가여, 서울숲도 좋고 조금 더 걸어 뚝섬유원지에서 아침을 해도 좋을 일.
자전거길과 산책길 아래로 강변길이 또 있어 그리로 내려서 걸어본다. 오리배와 카약 윈드서핑 등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멀리 아버지와 아직 어려 보이는 아들이 패들보트를 타는 모습이 예쁘다. 나에게도 당신들에게도 따사로운 주말의 한때이다.
저 멀리 롯데타워의 모습이 보인다. 아 강남이구나. 여긴 강북이지만 강남쯤에 왔구나 생각한다. 성화를 형상화한 올림픽대교의 모습도 보인다. 저 횃불 모양의 조형물을 설치하던 헬기가 추락해 탑승해 계시던 분들이 돌아가셨단 얘기를 들은 생각이 난다. 올림픽대교는 계속 저 자리에서 그분들을 떠올리게 하고 추모하게 하겠지.
강해지는 햇살과 약해지는 내 체력. 다소 힘겹게 걸음을 옮기자니 동서울터미널과 수원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 고향집에 가려 버스를 타기 전 참새방앗간처럼 들리던 테크노마트도 보인다.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괜히 반갑다. 저 앞 천호대교가 보인다. 부산 갈 때 발의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광나루 한강공원에서 2일 차 일정을 마무리했다. 단 한 걸음 더 옮기기도 버거웠던 그때, 천호대교까지만 가면 된다고 천호대교인지 알고 가보면 잠실대교, 다음 다리인가 하고 가보면 잠실철교, 그래 바로 저 다음 일거야 하니 올림픽대교. 아, 잊히지도 않는다. 그땐 5시쯤 해가 뉘엿뉘엿 질 즈음 도착했었는데, 지금은 오후 2시. 음 뭐든 한 번 하면 느는구나!
그때도 광나루를 지나니 급격히 풍경이 한가로워졌는데, 강북도 마찬가지였다. 강남보다도 여유로운 풍경의 북로였는데 천호대교를 지나니 자전거도 사람도 뚝 끊긴 듯하더니 어느덧 서울과 구리의 경계를 지난다. 아 서울 바이 바이. 즐거웠어.
구리 한강공원에 도착해 드디어! ‘한강’ ‘라면’을 먹을 생각에 다리 아픈 것도 잊고 매점으로 뛰어갔는데, 아아, 앞에 얘기했듯이 망했다. 다시 얘기하지만 지금 하고 싶은 건 지금 하자. 지금 먹고 싶은 것도 지금 먹자. 지금 보고 싶은 사람도 지금 보자. 지금. 바나나 우유를 하나 사들고 매점 뒤편 데크에 판초를 깔고 잠시 누워본다. 좋구나.
‘좋구나’ 하고 생각하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니 1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한 껏 늘어진 몸을 일으켜 세우고 짐을 정리하고 걸음을 옮긴다. 오늘 팔당까진 갈 생각인데 지금 페이스로는 팔당에 ‘파’까지도 못 갈 듯하다. 맘먹고 속도를 내어본다. 시속 5km 정도의 빠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를 쭉 걷고 작은 공원에 다다랐다.
금방이라도 불이 날 것 같은 발을 주무르며 좀 쉬고 있자니, 맥주가 급 당긴다. 뒤쪽 카페에서 맥주를 팔까 고민하며 지도를 살펴보는데 카페 바로 위쪽에 고깃집이 보인다. 오늘 종일 나를 뒤흔들던 허기가 내 멱살을 잡고 그리로 이끈다. 와우! 천막이 쳐진 반 야외 좌석들이 보인다. 그래 지금 미루면 나중은 없다. ‘한강’ ‘라면’의 교훈! 여기 모둠구이와 ‘카스처럼’ 요! 고기를 불판에 올려놓을 무렵 두 세 테이블 빼고 비어있던 자리가 모두 차 버린다. 이거 봐! 잘했어 나 자신! 혼자 ‘카스처럼’을 다 처리하고 나니 취기가 꽤 오른다. 기분은 그것보단 좀 더 오른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하늘, 취기에 힘입어 발걸음이 나는 듯하다. 어두워지니 꽤 많던 라이더와 산책러들은 사라지고 십여분 간격으로 자전거, 어쩌다 한 두 명 정도. 술기운이 없었으면 좀 무서웠겠는걸, 술기운이 없었다면 좀 힘들었겠는걸.
하늘을 찌를 듯한 텐션 유지를 위해 음악까지 꺼내어 들었다. 하필 재생된 음악이 평소에 조깅할 때 듣던 음악들이다. 취기와 습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나의 발이 뛰기 시작한다. 오 마이 갓! 비록 1킬로미터를 채 가지 못하지만 뛰다 멈추다 또 미쳐 뛰다 멈추다를 반복하다 보니 저 멀리 팔당대교가 보인다.
멈추어 다리 위 불빛과 검은 도화지 위에 비친 불빛의 그림자를 감상하다 곧 핸드폰을 꺼내어 들고 셀카 삼매경에 빠진다. 비록 단 한 장도 건질 사진은 없었지만.
그리고 저어~기 멀리 팔당역이 보인다. 그리고 항상 그러하듯 눈에 보이는 목적지는 발에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않는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의사분이 얘기했던 것 같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지식인데 복잡한 얘기였지만 요약하자면 알코올을 분해하는 유전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빠르게 분해하고 하나는 천천히 분해하는데, 한국인의 대다수가 빠르게 분해하는 유전자는 없다는 얘기. 나는 있다. 분명히. 웬만큼 술을 마셔도 2~3시간 정도면 깬다. 그래서 내가 끊임없이 술을 부어 넣는지도 모를 일. 어쨌든 술기운은 가시고 가려져 있던 피로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금방 쓰러져도 날 이해할 수 있겠다 싶을 즈음. 팔당역이다.
예정에 없던 술과 고기는 먹었지만, 걸음을 마친 후의 나만의 만찬을 지나칠 순 없는 일이다.
부록 – 먹고 마시는 이야기 2편 ‘생각보단, 하지만 후회 없음’
‘한강 라면’에 대한 미련으로, 그리고 종일 배 속 거지를 동행 삼아 다닌 날이라서, 또 직전의 강행군으로, 맥주 한 잔 생각은 예쁜 카페에서의 가벼운 맥주가 아닌 고깃집에서의 묵직한 술 한 잔을 원했으리라. 게다가 한강뷰라니! 그렇게 찾게 된 곳인 ‘더숯불’.
대부분의 맛집이 그러하듯이 많은 손님에 지친 불친절까지는 가지 않지만 친절에도 접근치 않는 직원들의 응대와 많은 사람들이 쓰다 보니 다소 지저분한 소스통 외에는 모두 십 점 만점에 십 점! 고기와 술 외에는 모두 셀프. 귀찮을 법도 하지만 바쁜 집에서 직원 부르다 밤새는 것보단 좋다. 그리고 직접 농사를 지으신 듯 푸짐한 쌈채와 채소들, 그리고 버섯이 무한으로 제공된다는 것도 최고! 특히나 한강뷰가 보이는 야외 자리 갬성은 썩은 고기도 맛나게 먹을 듯한데 고기의 질 또한 좋다! 바비큐 세트의 구성도 좋고 가격도 나쁘지 않다. 다만 소시지는 맛이 없다. 어쨌든 한강을 바라보며 고기에 소맥을 마시니 아 여기가 천상인가 싶다. 게다가 낮술! 근처 가실 일 있으면 들리셔라! 다만 꽤나 유명한 맛집인듯하니 식사 시간대는 피해서 가실 것을 강권한다.
팔당댐은 차로 두 번 발로 두 번째이다. 앞 선 세 번의 방문 때 가장 먹고 싶었지만 왠지 ‘먹연’이 닫지 않던 음식 두 가지가 ‘닭발’과 ‘초계국수’이다. 오늘의 걸음을 계획하며 그중 술과 좀 더 어울리는 ‘닭발’을 찍어 놨고, 그중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팔당 닭발집! 한 걸음도 못 걸을 것 같더니 팔당역에서 닭발집으로 향하는 길은 가볍기 그지없다.
어둑어둑한 길 저 멀리 나를 부르는 손짓! 8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혹여 문 닫는 것은 아닐까 하고 들어섰다. 다행히 술을 마시는 팀이 한 팀이 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받고는 갑자기 닭발에서 급선회해서 불 오징어볶음을 시켰다. ‘아주 맵게요!’를 외치며! 기본찬은 무짠지와 당근, 그리고 빨간 자태를 뽐내며 오징어볶음과 데친 콩나물 굵게 채 썰은 깻잎이 함께 세팅된 접시가 나왔다. 맵다. 여기 계란찜이요! 여기 쿨피스요! 아 너무 맵다. 전작으로 고기를 먹은 게 내 속을 보호하기 위해 잘한 일인 것일까? 아님 맛있게 즐기는 걸 방해한 요인이 되었을까? 어쨌든 나름 엽떡도 항상 매운맛으로 시켜 먹는 나인데, 맵기는 그 정도였던 것 같은데 그날 따라 유난히 맵다. 컨디션이 안 좋아 맵 공격에 취약했던 걸까? 어쨌든 맵 공격을 막아내는라 소맥을, 계란찜을, 쿨피스를 때려 넣다 보니 어느새 배가 부르다. 심지어 소맥이 안 들어갈 정도이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남기고 가게를 나왔다. 기대치가 너무 컸던 것일 수도 있고 이러저러한 요인들이 음식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됐을 수 있으나 어쨌든 그때는 ‘생각보단’. 하지만 몇 번이나 오려고 찍어 놓은 곳을 왔다는 것, 원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 내게는 ‘후회 없음’으로 남았던 곳.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리고 하필 단식 중인 오늘 그때 남긴 불 오징어가 무지하게 아쉽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아직 팔당 ‘닭발’도 ‘초계국수’도 못 먹었네! 다음엔 최상의 컨디션으로 다시 만나주겠어!
1차 더숯불 경기 남양주시 고산로 126번길 33-6 바비큐세트 38,000
2차 팔당원조불닭발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로 155-5 불오징어볶음 17000 계란찜 5000
숙소 힐사이드모텔, 무난하다 팔당역쪽은 선택지가 많지 않아 도심역으로 이동. 역 바로 근처에 있어 동선이 좋다. 강변에 있는 리버모텔이 뷰랑 시설이 좋다고 하는데 난 밤 늦게 도착해서 뷰보단 만원 싼 곳을 선택.
ps 담에 리버모텔 예약해서 저 코스 그대로 가봐야지. 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