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주를 해보자 했을 때 횡단을 예상치 못했고, 글로 좀 남겨볼까 하는 마음은 종주 때부터 있었지만 어찌하다 이렇게 횡단기를 쓰고 있다 보니, 내 글은 어디쯤에 있나 하는 고민이 된다.
종주를 할 때의 남기자 하는 마음은 ‘순수 기록’으로서의 의지가 좀 더 강했던 듯하고, 횡단을 하고는 자기 기록에 더해 '타인에게 읽힘'이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차이의 이유는 단순하다.
요즘은 누구나 여행 전 인터넷 검색을 하고, 몇 번의 검색으로 마치 이미 다녀온 것과 같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천에서 시작해 그 끝을 부산으로 하는 종주는 자전거뿐만 아니라, 도보도 상당히 많은 경험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나보다도 훨씬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많은 글들이 있다.
그런데 횡단을 해볼까 하고 검색을 했을 땐 정보가 거의 없었다. 브런치에서 매거진으로 발행되고 작가 블로그에도 등재되어 있는 '58살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라는 글이 내가 찾은 유일한 글. 물론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나의 검색력으로는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작가님의 글은 '여행'보다는 '도전'에 방점이 찍혀 있어, 나 같이 여행에 좀 더 치우치는 사람에겐 다소간의 무리가 있었다.
하여 단순히 정보제공 차원에서 '희소성이 있겠다'라는 게 '읽히는 글'을 쓰자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횡단에 대한 글이 워낙 없으니 나 같은 초보자의 글도 전자책 정도는 팔리지 않으려나 하는 아주 얕은 맘도 조금은.훗.
그리하여 이 글이 정보제공에 충실한 글이냐 하면 그건 또 애매한 부분이다.
나 또한 종단을 할 때 한 두 개의 블로그를 참고해서 보며 나름의 준비를 했지만, 사실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의 글인 여행기를 본다는 건,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대리만족과, 가보려는 길에 대한 정보 획득의 목적으로 나눠지지 않나 싶다.
정보 획득 이란 측면도 어떤 길이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들었는지, 준비물은 무엇인지와 같은 실질적인 정보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전체 여정을 가늠해 보는데 좀 더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특히나 아 이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한 번 해볼까 했던 마음의 작은 씨에 확신을 주어 결심이라는 새싹을 틔우는 것에 그 목적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때문에 앞으로 이어질 나의 횡단기는 꼭 필요하거나 알면 좋은 최소한의 정보가 조금, 그리고 대부분은 '음 나도 한 번 가볼까.‘하는 마음에 약간의 불을 지피고 싶은 글일 뿐이다.
나이 40을 넘은 여자가, 혹은 여자도,할 수 있구나 하는 것. 그리고 내가 간 길을 보고 당신의 길을 가늠해 보는 것. 그것이 나의 횡단기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건 책 한 권 뿐인 짐싸기
1. 가벼운 짐 싸기
나는 예민하고 멘털은 마른 낙엽 같고 완벽주의 성향도 좀 있는 다소 피곤한 타입의 사람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굳이 그렇게 할 필요 없는 것들에 ‘오버’ 하기도 해서 직원들의 원성과 험담을 생성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부여한 스트레스에 짓눌려 살기도 하고, 그야말로 ‘쓸데없이’ 피곤하게 살아왔다. 그러다 회사를 그만두고 급격히 완화되긴 하였으나 여전히 무슨 일을 앞두곤 예민하게 안달복달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내가 여행에 있어서는 남들이 보기에 세상 ‘쿨’하다. 어딘가로 여행을 가기로 맘을 먹었다면 해외여행이든 국내여행이든 준비는 일주일 안에 끝낸다. 일주일 짜리 여행이라면 오고 가는 차편과 이틀 정도의 숙소만 정한 채로 떠나는 일도 다반사다.
나는 왜 여행 준비에 있어 유난히 관대하고 느슨한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니 이유는 대충 2가지로 요약된다. 여행 준비에 대한 스트레스로 여행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기 싫다는 것과, 여행은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해도 그대로 되지 않더라는 경험상의 깨달음이랄까.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어느 여행이건 두 발을 애용하는 나는 ‘짐은 최소화’가 첫 번째 원칙이자 유일한 원칙이기에 최소한의 것만 챙기면 되므로 여행 준비의 한 단계는 이미 간소화돼있는 것이다.
원래도 딱 필요한 것만 챙겨가는 타입의 사람이지만, 이렇게 장기 도보여행을 할 땐 배낭 무게 백 그람 이백 그람이 엄청난 차이가 난다. 특히나 30킬로 이상 넘어가면 다리도 다리지만 어깨와 허리의 피로도 상당한데, 그때 배낭 무게의 차이란 여행 전반의 컨디션에 무시 못할 영향을 미친다.
배낭
종주 때는 25리터 노스페이스 배낭으로 다녔는데, 횡단 때는 배낭을 바꿨다. 용량은 같지만 최대한 가벼운 걸로, 그리고 방수 기능이 있거나 방수커버가 있으면 된다. 어깨와 허리를 받쳐주는 받침대가 들어간 배낭은 기능성과 무게를 놓고 봤을 때 단연 무게의 단점이 더 크다.
운동화
방수 기능이 있고 발이 편한 것으로. 나는 두 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 방수 기능이 없는 운동화를 신었다. 방수 기능은 내가 날씨 예언자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챙기자. 종주 때는 보통 2켤레 이상은 필요한 듯한데(난 한 켤레로 버텼지만 그만큼 힘들었음) 처음부터 여벌을 가지고 가는 것보단, 쿠팡 등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던가, 여정의 중반에 이르러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때 마련할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신발은 미리 준비해서 일주일 정도는 신고 다니며 발에 맞추는 게 좋다. 횡단 때는 한 켤레로 충분할 듯하지만, 발의 피로도에 좀 더 민감한 사람이라면 일주일 정도 지나 신발의 상태와 발의 컨디션을 보고 판단하시길.
발 용품
종주 대비 짐이 20% 정도 줄었으나, 50% 정도 보강된 것이 발 용품이다. 다리의 능력을 과신하지 말자. 그리고 걷기 여행의 80%는 내 다리에 달려있다. 해줄 건 다해주자. 무릎보호대 , 발목보호대, 깔창 필수. 나의 경우 무릎보호대는 무로 것을, 깔창은 쿠팡에서 1만 원대 라텍스 깔창, 발목 보호대는 다이소에서 구입했는데 모두 무난했다.
옷
옷은 계절에 따라 그 준비가 다르겠지만, 가능한 최소화 하자. 난 여벌 옷 1벌, 여벌 속옷과 양말 1벌만 준비하고 그날그날 세탁하고 말린다. 봄에 떠난 종주와 가을에 떠난 횡단은 습도의 차이가 커서 같은 시간을 들여도 마르는 정도가 달랐다. 하지만 드라이어로 말리고 덜 마르면 옷핀(옷핀이 여러모로 유용하다, 우비 고정시키는 용도 등등)으로 배낭에 매달고 다니고 하면 되니, 가벼운 흡한속건 소재의 여벌 옷과 속옷을 최소한으로 준비하는 걸 추천한다.
상비약
가장 큰 복병은 물집이다. 물집이 잡히면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에 꿰어두고는 상처 밴드를 붙여주곤 했다. 물집엔 답이 없으니 가능하면 컨디션 조절로 물집 없이 다니자. 종주 때는 엄청나게 고생했는데 횡단 때는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 가볍게 하나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워낙 타고난 건강이 튼튼해서 이렇다 하게 약을 준비하지는 않았는데, 여행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것이 배변인지라, 혹 배변이 원활하지 않으신 분은 유산균을 준비하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피로 해소 겸 입 심심을 달래기 위해 비타민 캔디 같은 건 괜찮았다. 그 외는 아픈 범위는 내 예상 밖일 테니 약국을 털어가지 않을 거라면 큰 의미는 없다 본다.
우비
종주 때는 양우산은 준비했다가 도착해서 부산에서만 쓰고, 방수 돗자리로 어찌어찌 비를 피하고 다녔다. 횡단 때는 다이소에서 판초를 하나 사서 돗자리로도 쓰고 비 오는 3일 동안 잘 쓰고 마지막 날 장렬히 떠나보냈다. 다이소 것으로도 커버는 가능하지만 좀 더 좋은 것으로 판초를 하나 준비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호신용품
나는 작은 크기의 최루 가스액 분사기를 하나 사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한 번도 쓸 일은 없었지만 그 작은 것이 주는 위안이 크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나타나는 사람이 가장 공포스럽다.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날 땐 항시 연락 가능한 사람에게 30분마다 위치 전송을 하고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으면 전화하게 하는 것도 좋다. 그리고 갑자기 아무도 없는 곳에 나타난 사람이 좀 무섭다면 통화 중인 상태로 걷자. 한 손엔 최루가스 분사기를 꼭 쥐고.
보조배터리와 충전기
이 둘은 생명줄이다. 종주 때는 인증 도장을 찍느라 같이 구입한 지도를 가끔 봤지만, 횡단 때는 네이버 지도만으로 충분했고, 포기 못할 것 같은 책도 횡단 때는 밀리의 서재에 가입했다. 오디오북이 가끔 지루한 길을 걸을 때 좋았다. 종주 때 한 장 넣어가지고 온 카드를 잃어버렸었는데, 모바일 뱅킹 덕에 아무 문제없었다. 아무래도 사진을 많이 찍게 되니 충전만으로는 부족하다. 가볍고 용량 큰 보조배터리를 준비하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다 없어도 된다. 핸드폰과 보조배터리 충전기만 있으면 어쨌든 살기는 산다.
필수인 것은 이 정도이고 나머지는 최소화. 가능하면 최소화 하자.
2. 코스 정하기
나는 양평까지는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고 양평에서부턴 가능한 짧은 거리로 도보길을 검색해서 갔다. 일반적으로 도보길은 국도나 지방도를 우선 안내하고 자전거길은 강변길과 같은 작은 길을 안내하는 경우도 있으니 목적지를 정하고는 도보길과 자전거길 그리고 참고로 자동차 길까지 검색해보고 비교해 보는 것이 좋다. 전반적으로 이렇게 가겠다는 루트만 정하고 하루의 세부 일정은 전날 확정하는 것도 괜찮다.
3. 걷기
걷는 건 하루 30~40킬로미터 정도가 적당하다. 평소 많이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시작 일주일 전에 자신의 한계치가 어딘지 한 번 걸어보고 떠나기 전까지 가볍게 걸어 다리를 좀 단련시켜 놓으면 좋을 것이다. 그전부터 준비할 수 있다면 더 좋고.
첫날 무리하면 안 된다. 첫날은 부족하다 싶게 다리 컨디션을 살피며 걷자. 첫날의 과한 의욕으로 무리를 해 다리 상태에 영향이 간다면 전체 일정에 큰 무리가 간다. 종주할 때 첫날의 오버페이스로 발바닥에 온통 물집이 잡혀 삼일째까지 거의 걷지를 못했고 전체 일정이 늘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난 급할 건 없었지만. 해 뜨고 시작하고 해지기 전에 끝내자. 번화가가 아니라면 특히 해지기 전에 걷는 건 피하자. 최소한의 조심이다.
자 이제 뒤의 부록으로 붙은 글을 읽고, 당신만의 여행을 가늠해 보아라. 그리고 결심의 싹이 텄다면 당신만의 여행을 준비해라. 그리고 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