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나는 얼마 전까지 오피스 밀집가에서 테이크아웃카페를 하나 더 운영했다. 그러다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작년연말에 가게를 닫았다. 현재도 여전히 운영하고 있는 할아버지카페는 오래된 동네의 등산길 초입에 있다. 주말 말고는 사람이 별로 없는 조건인데도 근 7,8년을 성황 했다. 그에 비해 내가 운영하던 카페는 회사원들이 득시글 거리는 오피스가 한가운데 있었는데도 장사가 너무 안 되었다. 나는 장사가 안 되는 이유를 가게를 접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가게를 개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운영하던 가게에는 아침마다 진한 향수 냄새를 풍기며 명품백을 메고 오는 여자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커피에 대해 유난히 말이 많았다. 그만큼 커피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그만큼 장사가 잘 되리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웬걸. 초반에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지만, 근처에 저가커피점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부터 가게의 매출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게에 들르는 손님들로부터 커피가 비싸다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우리 집은 가게에서 직접 로스팅을 했다. 그럼에도 커피값은 우리 가게가 테이크 아웃전문점인 것을 감안해서 무척이나 저렴하게 받았다. 우이동 가게의 절반값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비싸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주변 카페를 샅샅이 뒤져서 맛을 보며 다녔다. 커피 맛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장사에 잔뼈가 굵은 나임에도 이렇게 어수룩한 인간일 수가. 나는 스스로에게 혀를 끌끌 찼다. 솔직히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작 우리 가게에 이득을 가져다주는 손님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이웃하고 있는 대기업의 사원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정말 1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점심 혹은 아침에 들러 커피를 사가는 손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충성스러운 고객은 한 두명일뿐, 매출에 변화를 줄 수는 없었다. 대부분은 회사 건물 안에 자리한 사내카페를 이용하고 있었다. 복지차원에서 운영하는 카페이니, 가격은 저렴하고 품질도 제법 괜찮았다. 회사 밖을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러면, 나머지 고객층은 누구인가?
나는 그들에 대해 지나치게 기대가 높았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녀와 그들의 정체를 안 순간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그들에게 우리 집 커피값은 쓸데없이 비쌀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만족도도 채워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우리 가게 주변의 대기업을 제외한 오래된 건물에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나 또한 야심 찬 계획을 가지고, 아무개 단체에 계약직으로 일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최저의 임금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커피맛이 아니라, 커피의 용량과 값싼 가격이었다. 그 밖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초라함과 주눅을 막아줄 멋들어진 포장과 인테리어였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안 나는 마치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말해준 이웃 건물의 복덕방 친구에게 마구 역정을 냈었다. 그럼, 그 사람들이 메고 다니던 명품가방은 뭔데! 커피 맛도 모르면서 잘난 척은 왜 그렇게 해댔대? 그리고 친구는 온 건물이 떠나가라 언성을 높이는 내 입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를 썼다.
가게를 정리하고 한동안은 그쪽으로 머리도 수그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장사를 2년 가까이했는데, 그 간에 우리 가게를 찾던 그 알량스러운 손님들의 갑질(?)이 생각나서 자다가도 한 번씩 발길질을 해대곤 했었다. 직장인은 연봉으로 그들을 말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솔직히 그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어딜 감히! 네 깟것들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그들로부터 능멸(?)을 당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윤 씨의 탄핵심판이 길어지면서 우리 할아버지카페의 매출도 곤두박질쳤다. 거기에 가게 하나를 접으면서 생긴 손실에 대해 후폭풍이 몰아쳤다. 하루하루 버티어 나가는 것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사람은 역시 입장이 바뀌어봐야 철이 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가게를 오픈할 때부터 경솔했다. 우리 가게를 찾아올 손님들에 대해서 한 번도 이해하려거나 배려하지 않았다. 그저, 내 가게에서 파는 커피만 맛있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래왔듯이 각박한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핵심보다 그 주변의 것들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상처를 예로 들면 곪고 터진 부위 보다 그 주변이 더 아픈 것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커피는 맛을 즐기고 시간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 마시는 음료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카페인이었다. 하루 종일 졸지 않고, 쏟아지는 업무를 실수 없이 처리하기 위해서 마시는 부스터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나처럼 남루한 자신을 스스로에게 들키지 않도록 애쓰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사실들을 진즉 알았더라면 조금 더 따뜻하고 마음 씀씀이가 깊은 카페 주인이 되지 않았을까.
에이, 잘 망했다.